초등학교 4학년까지 감나무 과수원집에 살았었다.
산 중턱에 집이 있었고 집보다 위쪽으로 감나무밭이었는데, 산밑에서 집까지 올라가는 길은 두번 굽이진 길이었다.
첫번째 굽이에서 두번째 굽이 사이의 구간이 꽤 길었는데, 길 오른쪽은 졸졸졸 흐르는 계곡이라기엔 민망한 물길이 있고 숲이 우거졌고, 왼쪽은 탱자나무가 빽빽한, 항상 그늘져 컴컴한 길이었다. 길 끝에는 키 큰 미류나무가 서 있고 그 나무를 끼고 돌면 우리집이 보이는, 밝고 따뜻한 햇빛이 쏟아지는 길이 나온다.
학교마치고 혼자 그 길을 오를때 왠지 털이 쭈뼛쭈뼛 서고 긴장이 되어서 항상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미류나무를 향해 뛰듯이 걸어다녔다.
미류나무만 돌아서면 걸음이 느려지고 쪼그려 앉아 개미집을 후벼판다던지 장난을 하며 천천히 올라갔다.
그시절 나는 중학생인 언니오빠가 항상 늦게 오니까 혼자 산을 누비며 놀았다. 산속 무덤이 내 놀이터요 개구리, 벌레들이 내 장난감이었는데 지금은 그것들을 징그러워하는 내숭을 탑재한 어른이 되었다.
어쨌든 좀 어두컴컴한 길이라고 무서워할만큼 겁많은 아이가 이니었는데 그 길 만큼은 기분이 참 이상했다.
어느 초여름 오후, 산아래까지 친구들과 까불거리며 와서 집으로 올라가는데 그 길을 들어서자마자 찔레꽃 향기가 진동을 했다.
코를 찌르는 듯 한 향기.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나고 햇빛이 들지않아 어둡고 서늘하고. 평소와 다르지 않은데 뭔가 또 달랐다. 털이 쭈뼛 서는걸 느끼며 걷는데 아, 왠지 조용하다 했더니 새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조금전 쭈쭈바를 사먹었던 가게에서 들었던 빙글빙글. 그런데 내 노래 중간에 가는 목소리가 들리는것 같았다.
노래를 멈추니 아무소리도 안들린다. 새소린가? 하고 다시 노래를 불렀다.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갑자기 곁눈으로 하얀게 움직이는게 보였다. 놀라서 돌아보니 찔레꽃이 흔들리고 있었다. 개구리가 건드렸겠지. 하고 더 빨리 걸었다. 뛰다시피 걸었는데 미류나무는 가까워지지 않았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큰소리로 빙글빙글을 부르며 있는 힘껏 뛰었다.
바람도 안부는데 찔레꽃이 자꾸 흔들려서 탱자나무쪽으로 붙어 뛰다가 가시에 긁혔다. 미류나무. 미류나무만 보며 뛰었던 것 같다.
미류나무를 짚었다. 갑자기 따뜻한 햇빛, 눈부심, 집 마당에 빨래를 걷는 엄마가 보였고 엄마에게 손을 흔들었다. 방금 겪은일은 금새 까먹고 개미집을 후벼팠다.
그날일은 한참 후에, 스무살이 넘어서 엄마와 어릴적 과수원 살던 시절 얘기를하다가 생각이 났다. 엄마께 말했더니 그 길이 어른들도 무서워하는 유명한 길이라고 했다. 옛날에 흉한일이 있었고 귀신봤다는 사람도 심심찮게 있었다고.
와..엄마. 그땐 왜 말안해줬어? 나 맨날 노래부르면서 뛰어서 올라왔는데.
그때 니가 알았으면 혼자 다녔겠나. 엄마가 매일 마중나가야 했겠지.
지금도 찔레꽃만 보면, 그 향기를 맡으면 왠지 서늘해진다.
컴컴한 동굴같던 그 길이 떠오른다.
그러면 나는 키 큰 미류나무나무를 생각하고, 마당에서 빨래걷던, 지금은 안계신 엄마를 생각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