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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는 좀비가 아니다
게시물ID : panic_729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널븐연못
추천 : 15
조회수 : 8758회
댓글수 : 19개
등록시간 : 2014/09/23 06:48:03
TV, 상영관, 게임, 책. 사람들이 쉬기 위해 애용하는 모든 매체들엔 좀비가 있다.



밤이 되자 무덤에서 손부터 불쑥 튀어나오는 좀비부터 생체실험실에서 인간보다 더 강하게 나타나는 좀비들까지 요즘 액션/호러물의 정점에는 좀비가 있다고 해도 무색하지 않은지 벌써 꽤 돼었다.



갈수록 잘생겨지는 뱀파이어와는 다르게 생긴건 혐오스럽게 짝이 없는 썩은 시체일 뿐인 좀비가 이토록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난 그것을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좀비를 좀비가 아니라 사람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느 누가 자기를 갈구는 상사의 대갈통에 구멍을 내주는 상상을 해보지 않았을까? 슬쩍 스친 어깨에 멱살을 잡는 술취한 아저씨를 화염방사기로 지져버린다거나 날 괴롭히는 일진을 소방도끼로 찍어버리는 잔인한, 그러나 매우 만족스러운 상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니, 딱히 원한이 없더라도 K-2 한정을 가지고 조선시대로 돌아가 몰려오는 일본군들에게 난사하는 상상은? 여포가 되어 적토마를 타고 달리며 적의 머리를 추풍낙옆처럼 댕겅댕겅 날려버리는 상상은?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어두운 판타지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반사회적인 이미지들을 용납할만한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도 내가 위에 써놓은 장면들을 상상하며 불쾌감에 표정을 찡그리고 반대버튼을 찾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니, 대다수겠지.

그렇지만 미디어는 해냈다. 사람들의 은밀한 욕구에 도달했다.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아닌, 좀비라는 '가상의' 생명체로. 사람과는 모든 것이 같지만 딱 하나, '자아'가 없다는, '인간'과는 무언가 다르다는 생명체를 자르고, 짖이기고, 불태우고, 날려버리면서 우리 내면의 은밀한 상상을 채워준다.

처음엔 네크로맨서의 주술에 움직이는 인형에 불과했던 좀비가 점점 사람과 닮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콜로세움에서 로마인들은 검투가들을 인간이 아닌 노예로 규정했고 우린 좀비를 만들어 냈다.

좀비는 사람이다. 좀비가 아니다.




images.jpg

이것에서


zombiehorde.jpg


이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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