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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두 사람
자전거 두 대가
나란히 꽃길을 지나갑니다
바퀴살에 걸린
꽃향기들이 길 위에
떨어져 반짝입니다
나 그들을
가만히 불러 세웠습니다
내가 아는 하늘의 길 하나
그들에게 일러주고 싶었습니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불러놓고 그들의 눈빛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내가 아는 길보다
더 아름다운 길을 그들이
알고 있을 것만 같아서
불러서 세워놓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정호승, 새점을 치며
눈 내리는 날
경기도 성남시
모란시장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천 원짜리 한 장 내밀고
새점을 치면서
어린 새에게 묻는다
나 같은 인간은 맞아 죽어도 싸지만
어떻게 좀 안 되겠느냐고
묻는다
새장에 갇힌
어린 새에게
황금찬, 길
언덕에는 미운
꽃들이 피어 있었다
나는 언덕길을
전설처럼 걸어 내리고 있었다
누구나
한번은 오고
가는 길이라는데
왜 오늘 이 길엔
나 혼자뿐일까
가는 길은 모두
이렇게 적막했을까
이젠 외롭지 않다
구름과 같이 가고 있다
김형영, 오늘 부는 바람
오늘 부는 바람
어제 같지 않구나
마루에도 마당에도
골목에도
골목에 이는 먼지에도
버스에도 사무실에도
일을 끝낸 퇴근길에도
퇴근하는 어깨에도
만나는 친구에도
헤어지는 뒷모습에도
낮에도 밤에도
일어서야지
봄같이는 못 일어서도
일어서는 척은 해야지
몇 번이고 다져보는
마음 한구석에도
오늘 부는 바람
어제 같지 않구나
박남수, 소곡(小曲)
구름 흘러가면
뒤에 남는 것이 없어 좋다
짓고 허물고, 결국은
푸른 하늘뿐이어서 좋다
한 행의 시구
읽고 나면 부담이 없어서 좋다
쓰고 지우고, 결국은
흰 여백뿐이어서 좋다
평범한 사람
남기는 유산이 없어서 좋다
벌고 쓰고, 결국은
돌아가 흙뿐이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