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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화상경 그리고 일본 재야 역사학자 이야기(추천부탁-_-)
게시물ID : history_88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풍림화산2
추천 : 4/8
조회수 : 1005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3/05/06 21:19:26

포도시 님이인물 화상경 관련 기사를 링크 하셔서 한번 적어봅니다. 아래 링크를 읽어 보시고 제 글을 


읽으시면 될 듯 합니다 


 

 


www.pressian.com>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81126150215&Section=04


 


1834년 신사의 흙을 캐다가 발견되어 스다 하치만 신사에 보관되어진 이 거울에는 


아래와 같은 문장이 세겨져 있습니다.


 


癸未年八月日十大王年


해석 1. 계미년 8월 10일 대왕의 해 , /해석 2 계미년 8월 日十 대왕의 해 


男弟王在意柴沙加宮時


해석 1. 남동생 왕이 오시사까 궁에 있을 때에 / 해석 2. 오오또 왕이 오시사까 궁에 있을 때에  


 

斯麻念長寿


 

사마가 장수를 염원하며


 

遣開中費直穢人今州利二人等


 

개중비직과 예인 금주리 2인등을 보내어 


 

取白上同二百旱作此竟


 

백상동 200근을 가지고 이 거울을 만들었다. 


 

 


 

이 금석문에는 백제왕 무녕왕의 이름인 斯麻가 세겨져 있고 거울을 받는 사람인 


 

남제왕.. 남동생을 일본어로 하면 오오또가 되는데 이것이 마침 


 

무녕왕이 백제왕을 하던 시절 일본의 천황 케이타이 (繼體)의 이칭 


 


오도노오키미( 男大迹王 )와 연결이 되기 때문에 백제 무녕왕이 남동생왕인 


 


 


일본 계체 천황에게 준 거울로 해석이 되곤 합니다. 


 


 


즉 해석 여하에 따라서 일본의 계체 천황이 무녕왕의 동생이라고 해석되어 질 여지가 


 

있는 거울인데 흥미가 있는 분은 이와 관련한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쉽게 내용들을 접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결론은 너무나 단순화 시켜서 생각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보다는 인물 화상경에 대해서 남동생왕 운운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일십대왕에 대한 이야기를 한 재야 일본 사학자의 의견을 소개해드릴까 하는데요 


 

한국도 강단 사학계와 재야 사학계가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듯이 일본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이 사람의 책 중 상당부분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보고 있지만 처음 한일 고대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 책으로부터 였고, 그리고 일본의 황국 사관의 맥을 현대의 일본 사학계가  


 

계승하고 있다는 비판정신을 기초로 쓰여진 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역시 지금도 읽을만한 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각설하고


 

 


 


 


 

한국에서는 백제에서 건너간 일본천황이란 책이 유명한 이시와따리 신이치로 씨는 


 

맨 첫문장 


 

 


癸未年八月日十大王年을 보통 계미년 8월 10일 대왕의 해.. 라고 해석하는 것을 


계미년 8월로 끊고 계미년 8월 日十 대왕의 해 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리고 저기 나오는 日十을 동가라 라고 해석하여 이시와타리 신이찌로 씨가 


당시 열도의 통치자라고 추청한 백제 곤지 왕자의 공식 명칭이 


동가라 대왕이었으며 이를 日十대왕


이라고 표기하였다고 추론하였습니다. 


물론 너무 나갔다고 생각하는 것이 풍림화산 생각입니다만 


그러나 역시 무녕왕 즉위 다음해인 502 년 외교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무녕왕에 의해서 당시 열도의 男弟王에게 보내진 이 거울에서 대왕의 이름을 생략하고 


그냥 대왕년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날짜를 적었다면 십일이라고 하지 굳이 


일십이라는 표기를 할 필요는 없겠지요.  


이 거울의 이름이 인물 화상경이 된 것은 거울에 인물이 그려져 있기 때문인데 


그 인물의 숫자가 아홉입니다. 아홉 다음은 열..


무엇인가 日十이라는 이름에 대해서 이 거울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요 


8월 십일이라고 쓸 것을 8월 일십이라고 쓴다거나 대왕의 이름을 적지않고 


그냥 대왕년이라거나 한다는 어색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8월 십일 대왕년이라고 


해석하는 배경에는 아마도 이 당시 502년도에 日十 대왕이라고 칭할만한 사람이 


백제 혹은 열도 어느 쪽에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열번째 태양이라고 하는 상징은 일본서기에 그 흔적이 있는데요 


일본 경행 천황의 태자인 일본 무존이 열도의 동쪽을 정벌 하는 이야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날 밤 시자에게 묻기를 니히바리 ( 新治 ) 쯔꾸바 ( 築波) 를 지나서 몇일이나 자게 될까 ?


라고하자 모든 시자가 답을 할 수 업었는데 촛불을 든 자가 왕의 노래를 이어서 대답하기를 


" 해의 수를 늘어놓고 보면 밤으로는 九夜 낮으로는 10일 입니다. " 라고 답하였다 


 


 


저 위의 이야기들은 일본인들은 무슨 소리인지 모릅니다. 왜 저런 이야기가 일본서기에 있을까요..


한일 고대사 이거 파보면.. 참 재미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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