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리뷰는 100% 제 개인적인 분석과 해석에 따른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영화평론가들의 해석과 겹치는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완전히 반대되는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뭐? 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는 상업영화에 찌들어 생각하는게 귀찮은 것이겠지.."
네이버 영화 평점을 보니 이런 내용의 리뷰가 있더군요. 굉장히 공감하는 바입니다.
물론 영화를 비롯한 이떤 작품을 감상 할 때 아무런 생각없이 감상하려는 관객들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 속 상징들과 작가의 의도를 논리적으로 파악해 가면서 감상한다면 분명 색다른 즐거움을 맛보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따라서 제 "케빈을 위하여"라는 영화의 리뷰는 오로지 이 영화의 내용과 메세지 해석에 대해서만 한정하려 합니다.
영화의 색 - 정말 붉다.
관객을 압도하는 영화의 첫 장면은 화면 가득 시뻘건색으로 도배가 되어있습니다. 유명한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가 배경인데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 토마토 즙에 빠져 허우적대며 서로 몸을 부대끼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속을 울렁거릴 정도죠.
이 붉은 색의 축제 한 가운데 푹 빠져있는 여자가 이 이야기의 여주인공인 에바 입니다.
당장 이 씬들만 봐도 이 영화가 굉장히 붉은 색을 강조한다는 것을 쉽게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이 장면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두 가지가 있죠
1) 에바는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틀에 박힌 삶을 싫어한다
저런 축제를 위해 스페인까지 찾아가서 처음보는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 즐긴다는 것은 에바가 다소곳하고 가정적인 여자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 니다.
2) 에바는 여행가다
단순히 한 장면만 보고는 알기가 어렵지만 나중에 나오는 힌트들을 조합하면 그녀는 매우 유명한 여행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을 시작으로 다음 장면에도 붉은 색이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에바가 완전히 빠져있을 정도로 붉지는 않지만 충분히 강조 될만한 붉을 색입니다.
아직은 스포하지 않아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일단 에바를 증오하는 마을 사람들이 에바의 집을 붉은색 페인트로 테러를 가해 놨더군요.
에바는 영화 내내 이 페인트를 청소합니다. 결국 영화 후반에 가서는 집이 깨끗해져서 더이상 붉은색이 남아있지 않지요.
역시 이 붉은색들이 상징하는 것은 피, 즉 에바의 아들 케빈의 죄로 인하여 반영된 자기 자신의 과업과 죄를 뜻합니다. 나중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 과업에 빠져살던 에바가 이 붉은색들을 청소하며 케빈과 자신의 관계를 하나하나 반성해보고 왜 케빈이 그런 어마어마한 범죄를 저지르게 됬는가를 이해하려 하죠.
집에 칠갑되어있던 붉은색이 다 정리되었다는 것은 에바도 확실히 그 이유를 알고 케빈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에바의 아들, 케빈은 누구일까요?
그가 무슨 짓을 하였기에 에바는 자신의 인생을 꼼꼼히 되돌아 보며 반성해야 했던 것일까요?
자유로운 영혼의 원치않던 임신
유명한 여행가였던 에바는 남편 프랭클린을 만나 결혼을 합니다.
빗속에서 서로 끌어안고 애정행각을 할 만큼 열혈 커플이었던 두 사람은 뜨거운 밤을 보내고 이내 에바는 임신을 하고맙니다.
하지만 이 임신은 결코 에바가 원하고 예상했던 것이 아니죠.
위 붉은 장면에서도 설명했지만 에바는 굉장히 자유분방한 여자입니다. 집에 틀어박혀 애나 키우는 삶과는 아주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는데 그만 임신해 버렸고 이건 에바에게도 꽤나 큰 충격이었겠죠.
분명 임신은 축복이고 기뻐할 만한 일인데도 더이상 자신이 좋아하면 삶을 살지 못할 것을 예상한 에바는 이 임신과 자신의 아이를 속박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따라서 에바의 입장에서는 임신이 전혀 반가울 리가 없지요.
배가 점점 불러오는 자신의 몸도 낯설어 자랑스럽게 임신한 배를 들어내놓는 다른 임산부들과는 달리 옷도 제대로 걷어올리지 못하고 길에서 마주친 어린 꼬마들을 보며 어떻게 저런 애를 키우나하는 두려움과 막막함에 휩쌓여 겁에 질립니다.
이러한 에바의 심정은 출산 직후에도 극명히 들어나는데 갓 태어난 케빈를 안고 좋아하는 프랭클린과 대비되는 침대에 멍하니 앉아있는 에바의 표정은 정말 압권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에바에 대해서 분명히 알 수 있는 점이 있습니다.
에바는 애초부터 자신의 아이인 케빈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케빈은 에바에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토마토 축제도 즐기고 다이나믹하게 살던 자신의 인생에 제약을 걸어버린 단지 방해물일 뿐입니다.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은 둘째치고 에바는 자신의 아이인 케빈을 처음부터 사랑으로 대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역시나 에바의 성격답게 육아도 영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아기가 울어대도 왜 우는지 알고 해결해 주지도 못하고 속에서 올라오는 짜증에 복받혀 하지요. 심지어는 우는 애 소리 듣기 싫다고 시끄러운 공사장 옆에 유모차를 두고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만족해 하기도 합니다. (아기 청력 상하면 어쩌려고...)
이런 에바를 이해하기는 하지만 결코 에바를 좋은엄마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죠.
(애 키우며 짜증나 미칠려는 에바. 저 표정들이 보이싶니까?)
그렇다면 케빈이 하구한날 빽빽 울어제끼는 몹쓸 아기였던 것일까요? 또 그런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프랭클린이 퇴근하고 돌아와 잠자는 케빈을 안으니깐 에바는 또 케빈이 깨어나 울까봐 기겁하지만 프랭클린이 안고 살살 흔들어주니 케빈은 얌전히 안겨 있습니다.
프랭클린이 말하길 "이렇게 살살 흔들어 주기만 하면되, 살살 .."
이 상황을 미루어 볼때 걍 에바가 육아를 못하는 엄마인 것 같습니다. 딱히 케빈을 탓할 순 없죠.
그렇다면 우리 이런 자유분방한 에바를 엄마를 둔 아들, 케빈에 대하여 이야기 해 봅시다. (we need to talk about Kevin!! ㅎㅎ)
과연 이 아이는 왜 이럴까? - 케빈에 대하여
케빈은 보통 아이들과는 어렸을 때 부터 무척 달랐습니다.
먼저, 영화 속 어른들이 케빈에 대해 몰랐다가 뒤통수 몇번 맞았던 것들 중 하나가, 케빈은 천재인지 아니면 철이 너무 지나치게 빨리 들었던 것인지는지 모르지만 자신의 주변 상황을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케빈이 걸을 수 있을만큼 자란 후 에바가 케빈과 공놀이를 해보려고 앉혀놓고 공을 굴려주지만 케빈을 결코 공을 바라보지 않고 엄마만 빤히 쳐다봅니다. 에바가 다시 자신에게 공을 굴려보라고 해도 미동도 않은체 계속 에바만을 주시합니다.
케빈이 자신의 뜻대로 나와주지 않자 또 짜증(...)이 난 에바는 케빈을 병원에 대리고가서 의사는 문제가 없다는데도 자꾸 멋대로 애가 좀 이상하다, 주의력결핍장애 초기증상 아니냐, 등등의 소리를 해댑니다.
분명 케빈에게는 문제가 없는데 에바만 혼자서 공을 다시 굴려주지않았다고 케빈을 비정상 취급한 것입니다.
그 후로도 케빈이 반응을 할 때 까지 계속 공을 굴려주다가 케빈이 한번 에바의 뜻대로 공을 굴려주자 그제서야 에바는 만족해 합니다. 하지만 다시 공을 케빈에게 굴려주자 케빈은 또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케빈은 공을 다시 굴려주지 않고 엄마를 바라만 보다가 한번 굴려줬다 만것일까요?
케빈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믿기지는 않지만 케빈은 에바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 케빈은 자신의 엄마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가를 보려고 공에 반응하지 않고 있다가 자기가 한번 뜻대로 해주자 근방 기분이 좋아지는 엄마를 보면서 "아 이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알기 보단 내가 지 기준에 내가 맞추지 않으면 짜증내고 싫어하는 구나"를 깨닫고 에바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되는 것이죠.
다음 장면도 마찬가지 입니다.
케빈이 "no. no."를 잘 발음하는 것을 봐서 "mom" 이나 "elephant"를 발음하는 것에도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에바는 끝까지 케빈에게 이 단어들을 발음하기를 다그칩니다. 오히려 케빈은 실로폰을 연주하며 놀고 싶어하는 듯 보이는데도 말이죠.
에바의 자기중심주의는 계속됩니다. 에바가 살고 있는 뉴욕의 아파트가 아이가 놀기에 위험하고 접합하지 않자 프랭클린은 넓은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가자 하지만 에바는 "집은 멋대로 구해봐. 나는 여기가 좋으니 꼼짝도 않할테니까" 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케빈의 성장환경과 유년기는 안중에도 없죠.
오히려 프랭클린과 이야기하는 도중 케빈이 잡음을 넣자 시끄럽다고 케빈을 때리기도 합니다.
케빈이 잡음을 넣으며 이야기를 방해한 것도 케빈이 에바와 프랭클린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에바의 자기중심적인 발언에 불만을 표시한 것입니다. 정말 케빈의 성숙과 이해력은 남다르죠.
(에바가 자신을 전혀 생각하진 않고 뉴욕에 남는다고하자 씁쓸해 하는 어린 케빈...)
결국 프랭클린에게 설득당한 에바는 가족과 함께 넓은 마당이 있는 새 집으로 이사를 갑니다.
여행을 다니며 행복했던 지난날들이 생각난 에바는 기분이라도 내 보려고 자신의 방을 세계지도로 도배를 합니다.
에바의 방을 본 케빈이 찾아와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케빈: 구불구불한 선만 잔뜩이네. 하나도 안 이뻐 (~They are dumb.)
에바: (황당해 하며) 여긴 엄마방이야. 네방도 있듯이. 네 방도 특별하게 해 줄까? (everybody needs his own room like you have your room. This is mommy's room. I hope making your room special if you'd like.)
케빈: 특별하게 라니?
에바: 니 개성이 돋보이도록 말이야 (well, so it looks like your personality.)
케빈: 무슨 개성? (What personality?)
에바: 무슨 말인지 알면서 (I think you know what I mean.)
자막은 personality를 "개성"이라고 변역했지만 제 생각에는 personality가 문맥상 순수하게 characteristic을 뜻하기 보다는 케빈의 성격, 인격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에바는 넌 가서 니 성격대로 지랄같이 방을 꾸며라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I think you know what I mean." 이 문장 자체가 케빈의 성격에 대해 에바가 비야냥 거린 것입니다. 몰론 혹자는 케빈이 먼저 에바의 지도들이 안 이쁘다고 (dumb 이라고 했으면 단순히 안 이쁘다가 아니라 "바보같다" 라는 좀 더 강한 어조 입니다) 시비를 걸었다고 말 할 수 있겠지만 꼬맹이 아들의 도발에 받아치는 에바의 수준도 참... 거기서 거기입니다.
빡친 케빈이 에바가 전화 받으러 나간사이 페인트가 든 물총을 들고 와 애써 에바가 꾸며논 지도들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을 본 에바의 반응도 가관인데, 아들의 물총을 뺏어 격렬히 바닥에 내던지고 밝아 부수며 온갖 성질을 다 부립니다.
케빈과 에바의 관계는 초기부터 삐걱거렸던 것이지요.
(케빈의 물총을 부수는 에바)
그 후로도 케빈이 얼마나 똑똑한 아이인지 깨닫지 못한 에바가 케빈에게 숫자 세는 법을 가르치려고 하지만 케빈은 스스로 1 부터 50까지 세어보이며 "이제 됐지?" 라고 말합니다.
보통 아이가 이렇게 똑똑하면 엄마가 대견해 하는것이 보통인데 에바는 오히려 "아 니가 그렇게 똑똑해? 그럼 이것도 풀어봐" 라고 하며 무작정 어려운 수학문제를 적어 건내줍니다. 자존심이 상한 케빈은 문제가 적힌 종이를 구겨 버리지요.
이러한 사건 하나하나가 에바가 케빈을 결코 사랑하지 않고 케빈을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진정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라면 저런 반응을 할 수 있었을까요?
자신의 자존심을 상하게한 에바에게 심술이 난 케빈은 기저귀에 일부로 똥을 쌉니다. 에바는 그 똥 냄새를 맡고는 더럽다며 진저리를 치죠. 냄새를 참아가며 겨우 똥기저귀를 갈아주자 케빈이 또 일부로 똥을 싸버립니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에바는 케빈을 들어 눕히는게 아니고 그냥 바당에 내동댕이를 쳐 버립니다.
얼마나 세게 내동댕이를 쳤으면 케빈의 팔이 부러져 뼈가 튀어나와 버리죠.
이때 케빈은 울지도 않고 처음으로 에바를 증오에 찬 눈길로 바라봅니다. 그동안 숱한 관찰을 하다가 이 사건을 기점으로 에바가 자신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고 케빈을 결론을 내린 것 같습니다.
그 증거로 훗날 감옥 갇힌 케빈 (왜 감옥에 있는지도 곧 나옵니다)을 에바가 방문했을때 케빈이 이때 뼈가 튀어나와 생긴 상처를 보여주며 에바에게 "it was the first honest thing you ever did."라고 말합니다. (자막은 "엄마의 본성이 처음으로 들어난 사건이었지" 라고 번역하지만 저는 "엄마가 나에게 처음으로 솔직하게 한 일이었지"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케빈이 말하는 에바의 솔직함이 무엇일까요? 바로 에바가 케빈을 사랑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에바가 처음으로 그것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줬고 케빈도 분명히 그것을 알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케빈의 행동이 어떠했던지 케빈을 이렇게 상처입혔던 것은 분명 에바의 잘못이었습니다. 만약 케빈이 복수로 프랭클린에게 이 사실을 일러바쳤다면 프랭클린은 에바에게 화를 내고 다시는 케빈을 에바에게 맡기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케빈은 프랭클린에게 자기가 잘못해 떨어져 팔이 부러진 것이라고 오히려 에바를 감싸고 돕니다. 에바는 그간 케빈이 자신에게 한 짓들을 봐서는 분명 프랭클린에게 일러바쳐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라고 예상했는데 케빈이 이렇게 나오자 당황을 합니다.
마치 저 녀석이 무슨 꿍꿍이로 나를 변호하나..라는 눈빛으로 케빈을 바라보죠.
(저 왠수가 왠일로 나를 감싸고도나..하고 의심을 눈초리로 케빈을 바라보는 에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케빈은 어떠한 꿍꿍이도 없었습니다. 앞뒤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케빈은 정말 에바를 위하여 에바의 잘못을 덮어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합니다.
여기서 또다시 에바는 자기 중심적으로 케빈을 생각한다는 힌트가 있습니다.
하지만 에바가 자신을 정말 싫어한다는 것을 막 깨달은 케빈은 왜 에바를 위해 거짓말을 했을까요?
이 이유는 나중에 케빈이 활을 난사하여 학교 친구들과 프랭클린, 그리고 자신의 여동생들은 다 죽여버렸는데 에바만 살려 둔 이유와 직결됩니다.
1부를 마치기 전에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감옥으로 에바가 케빈을 찾아와 이야기를 나눌 때 케빈은 에바에게 고양이 배변 훈련 이야기를 해 줍니다.
케빈 왈, "고양이 배변 훈련을 어떻게 시키는 줄 알아? 고양이가 자기 똥 냄새를 스스로 맡아 봤더니 고약한거야... 그후로는 박스를 사용하는 것이지."
여기서 고양이는 누구를 가르킬까요? 바로 케빈이죠. 똥을 싼 것은 케빈이니. 그렇다면 고양이를 훈련시키는 제 3자는 바로 에바입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똥 냄새를 맡고 기겁한 것은 케빈이 아니고 에바입니다.
다시 말해서 케빈은 "고양이 주인 조차도 고양이가 똥을 싸면 스스로 냄새를 맡고 박스에 싸도록 훈련시키는데 너란 엄마는 자식이 똥을 싸 냄새가 난다고 팔까지 부러질 정도로 때리며 교육시키냐" 라는 것을 비꼬며 말한 것입니다.
실제로 에바에게 똥쌌다고 얻어맞은 후 케빈은 처음으로 기저귀가 아닌 화장실을 사용하게 됩니다.
자신 스스로가 똥 냄새가 싫어 화장실을 이용했다기 보다는 에바가 그렇게 싫어하니 오히려 케빈이 배려를 해서 화장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도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 케빈을 보며 프랭클린은 웃으며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효과가 있네" 라며 좋아합니다.
애미나 애비나 비슷비슷 하군요. 프랭클린에 대해서는 2부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1부에서는 영화의 디테일한 장면이나 사건해석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작가가 관객에게 전달하려하는 더 큰 주제까지 갈려면 멀었지요.
케빈의 성격과 성장과정에 대해서도 2부에서 더 자세히 서술하겠습니다.
2부를 꼭 꼭 기대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