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경, 보석밭
가만히 응시하니
모든 돌이 보석이었다
모래알도 모두가 보석이었다
반쯤 투명한 것도
불투명한 것도 있었지만
빛깔도 미묘했고
그 형태도 하나하나가 완벽이었다
모두가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보석들이었다
이러한 보석이
발아래 무수히 깔려 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하늘의 성좌를 축소해 놓은 듯
일대 장관이었다
또 가만히 응시하니
그 무수한 보석들은
서로 빛으로
사방팔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빛은 생명의 빛이었다
이러한 돌밭을 나는 걷고 있었다
그것은 기적의 밭이었다
홀연 보석밭으로 변한 돌밭을 걸으면서
원래는 이것이 보석밭인데
우리가 돌밭으로 볼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것 모두가 빛을 발하는
영원한 생명의 밭이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이다
황지우, 11월의 나무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측광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렇게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등 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류시화, 벌레의 별
사람들이 방안에 모여 별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문 밖으로 나와서 풀줄기를 흔들며
지나가는 벌레 한 마리를 구경했다
까만 벌레의 눈에 별들이 비치고 있었다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나는
벌레를 방 안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어느새 별들은 사라지고
벌레의 눈에 방 안의 전등불만 비치고 있었다
나는 다시 벌레를 풀섶으로 데려다 주었다
별들이 일제히 벌레의 몸 안에서 반짝이기 시작했다
박재삼, 갈대밭에서
갈대밭에 오면
늘 인생의 변두리에 섰다는
느낌밖에는 없어라
하늘 복판을 여전히
구름이 흐르고 새가 날지만
쓸쓸한 것은 밀리어
이 근처에만 치우쳐 있구나
사랑이여
나는 왜 그 간단한 고백 하나
제대로 못하고
그대가 없는 지금에사
울먹이면서, 아, 흐느끼면서
누구도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할 소리로
몸째 징소리 같은 것을 뱉나니
이가림, 이슬의 꿈
내가 이슬 되어
칼날 선 풀잎을 타고
차디찬 어둠을 넘어서 가는 새벽
그 실낱같은 외길 끝에
언제나 나를 부르는 별 하나
떨고 있었네
천길 벼랑 위에
환한 금강초롱의 등불로 매달려
날 기다리는 얼굴 하나 있어
입술 터지고
무릎 피멍들어 문드러져도
캄캄한 안개 속
홀로 갈 수 있었네
삶은 온몸을 찰나에 내던지는
눈부신 죽음
그대와 나
조그만 빛의 이슬이 되어
생의 사닥다리
그 아득한 꼭대기에서 떨어지고파
부서지고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