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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허접역사소설 - 도산성의 겨울(제17장 세함)
게시물ID : history_181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앗카링카앗
추천 : 2
조회수 : 54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9/19 21:30:28
17장 세함
 
15971230일 밤 학성산 조명연합군 수뇌부 진지
 
등잔불이 일렁거리는 막사 안에 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그는 옆에 두었던 지필묵을 정성스럽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윽한 묵향이 군막 내부로 퍼져나갔다.
 
경주에 계시는 서애 대감님 보옵소서라고 한 문장을 쓰고선 골똘히 상념에 젓는 그였다. 한 번씩 불어 닥치는 매서운 밤바람만이 그와 함께했다. 남자는 결심한 듯 붓을 들어 다시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서애 대감. 두루 평안하신지요.
 
끔찍했던 정유년이 어느덧 지나가고 무술년 새해가 다가왔습니다. 한 나라의 집정 대신께옵서 몸소 전장 터와 가까운 곳에서 이리 고생을 하시고 계시오니 불초 소인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경리 양호가 이끄는 명군과 함께 울산성을 공략한 지 벌써 여드레가 지나고 있습니다. 명군 내부에서의 반목과 시기로 인해 초반에는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보인 명연합군이였습니다 , 기습의 효과로 적은 도산성에 고립되어 나날이 궁핍해져 그들이 먼저 나와 항복을 제의한 상태였습니다.
 
양 경리 또한 그런 왜적들을 몰아붙여 힘껏 싸우려 했으나, 27일부터 시작된 비가 그 다음 날까지 세차게 내리고 게다가 바람이 불어 기온이 급강하하니 절강과 산둥 등의 따뜻한 곳에서 온 명의 남군들이 추위에 동상이 걸리거나 고뿔 환자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 학성산의 지휘부는 군량을 수송하는 명나라 상인 장 대인이 내심 신경을 써서 지은 터갑작스러운 한파에도 문제가 없었으나, 산아래서 풍찬노숙을 하는 병사들에게는 치명타였습니다.
 
사기가 바닥을 침에도 불구하고 조명연합군은 어제까지 이전에 했던 화공과 태화강에서 배를 띄워 선입지로 난입하는 작전 등 많은 공세를 펼쳤습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성의 적은 비록 굶주릴지언정 성안에 제대로 된 누옥들에서 생활하며 체온을 온전히 지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연합군 수뇌부는 병졸들에게 일러 태화강의 긴 마른 풀들을 잘라다가 엮어 초옥을 짓도록 하여 방풍 대책을 세웠으나,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양 경리는 오늘 이루어질 항복회담에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었으나, 왜놈들은 간교한 술수를 써서 강화하고 싶은데 성안에는 글을 아는 자가 없다. 배 위에 중이 있으니 내보내 준다면 가서 강화의 글을 짓고자 한다.’라며 우리 군을 떠보았습니다.
 
결국. 화의는 결렬되었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경리는 더욱더 군사를 다잡아서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추위로 인해 떨어진 사기는 오를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도 걱정이 되는 것이 있다면, 매서운 겨울 한파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양 경리의 마음이 돌아설까 저어되는 것입니다. 전에 경주부에서 대감을 마지막으로 뵈었을 당부해주신 말씀이 귀가에 아른거려서 요즘엔 통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저도 주상전하에게 곧 장계를 올리겠습니다마는 영상께서도 부디 울산을 급박한 사정에 대해 조정에 공론을 일으켜 주셨으면 합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조선군 단독으로 적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지금의 군세로는 수성하는 왜적을 격파하기에는 태부족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거듭되는 공성에 지친 조선군 병사들이 탈영을 시도하여 사라진 숫자가 천 자리까지 늘어나고 있어서 명군이 없다면 더는 포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새해를 맞아 드리는 첫 문안 서신을 이렇게 우울한 소식들로만 가득 채워 보내서 송구스럽습니다. 부디 옥체 보전하시어 이 땅에서 단 한 명의 왜적이라도 남김없이 섬멸하는 그 날이 올 때까지 강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내는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글을 다시 한 번 쭉 훑어 보고선 고개를 저었다. 조선의 모든 역량을 이 전투쏟아붓지 않았던가. 더 이상의 여력이 없을 것이었다. 그는 옆에 둔 놋쇠화로에 서신을 서슴없이 던져 넣었다. 순식간에 불길이라는 괴물이 나타나 그의 애처로운 글들을 모두 잡아먹어 버렸.
그리고서 그는 다시 작은 종이를 꺼내 무언가 쓰기 시작했다. 다사다난했던 정유년의 마지막 밤이 그렇게 멀어지고 있었다.
 
---
159811일 경주부 관아 새벽 도체찰사 류성룡의 거처
 
대감마님. 기침하셨습니까요? 쇤네 돌쇠이옵니다.
 
오냐. 방으로 들어와 등불을 켜고 세숫물 준비하여라.”
 
꼭두새벽부터 영의정 류성룡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하인이 아침 수발을 들어주고 나서 그는 의관을 정제하고 경주 관아로 나아갈 생각이었다.
 
마님. 울산에서 사람이 왔었습니다.
 
다른 하인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와 툇마루에 있던 그를 불렀다.
 
울산에서. 누가 보냈다고 하더냐?”
 
그게. . 한음 대감이 보냈다고 합니다. 여기.”
 
그는 품속에서 작은 명함 크기의 비단 단자 하나를 건네주었다.
 
세함이로구나. 한음 그 사람도 참. 전쟁터에서 예의를 갖추다니.
 
세함은 조선 시대 세시풍속으로써 관청의 하급관리나 각 군영의 장교, 군졸들이 설날에 현직 상급 관원이나 예전에 상급 관직에 있던 선생 집에 인사를 가서 자신들의 이름을 써넣은 단자를 문 안에 옻칠한 반()을 두어 그 위에 단자를 올려놓게 하였는데 이 단자를 세함이라 하였다. 이는 집주인이 출타하였을 경우에 손님이 왔다 갔음을 증명하는 역할을 했다.
 
 
주머니 안에는 작은 종이쪽지가 들어 있었다. 류성룡이 꺼내어 앞뒷면을 읽어보니 다음과 같았다.
 
송구영신 근하신년
왜적퇴치 국태민안 - 불초 말이모 올
 
글귀를 되새기는 동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대감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하얀 괴물들로 인해 울산에서 고생할 접반사와 도원수 그리고 수많은 조선군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159811일 아침 조명연합군 진영
 
에취. 춥다. 뭔 놈의 눈이 이리도 내리누.”
 
유격장 파새는 조명연합군 진영을 어슬렁거리며 걷고 있었다. 울산성 전투 초반에 공명을 떨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뜻하지 않게 외각 경계로 자신이 빠지고 전투가 소강상태에 다다르자 그는 매일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도 밤새워 마시던 술이 새벽에 똑 떨어져 지자 새로운 술 동이를 구하러 나선 참이었다.
 
. 거기서. 그거 하나밖에 안 남거야.
 
. 초관 나리. 나 잡으면 용치. 메롱
 
뭔가를 들고 뛰는 아동포살수대 포수 박울과 그녀를 쫓는 초관 최산이 파 유격 쪽으로 몰려왔다. 그는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고는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파 유격의 떡 벌어진 품속으로 키가 큰 곱상한 사내가 안겼다. 울이었다.
 
죄송합니다. 유격 나리.”
 
화들짝 놀란 울이는 황급히 그의 품에서 벗어나서는 파새에게 조선어로 사과하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 메이꽌시. 메이꽌시.
 
그는 손을 양쪽으로 휘저으며 울이의 용모를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울이야 괜찮아? 파 유격님. 이 아이의 직속상관으로 제가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뒤따라오던 산이가 유창한 한어로 파새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상대는 자신보다 상관에다가 거칠기로 소문난 명군이었기에 어떤 딴죽을 걸어올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부커치... 눈길에 조심하도록 해라. 미끄러질라. .”
 
유격은 산이에게 주의를 환기하고는 순순히 자리를 떠났다. 그는 머리가 깨지도록 아팠다. 분명 숙취와는 다른 이유였다. 몇 발자국 걷다가 뒤돌아서서 서로 토닥거리며 걷고 있는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분명 몽글몽글한 느낌이 꼭 계집아이의 젖가슴 같았는데. 설마.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한동안 회포를 못 풀어서 그런 것인지. . 에이, 막사로 돌아가서 자기 위로라도 해야겠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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