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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출처 : https://youtu.be/DRrTVgCUc4M
이성선, 빈 산이 젖고 있다
등잔 앞에서
하늘의 목소리를 듣는다
누가 하늘까지
아픈 지상의 일을 시로 옮겨
새벽 눈동자를 젖게 하는가
너무나 무거운 허공
산과 산이 눈뜨는 밤
핏물처럼 젖물처럼
내 육신을 적시며 뿌려지는
별의 무리
죽음의 눈동자보다 골짜기 깊나
한 강물이 내려눕고
흔들리는 등잔 뒤에
빈 산이 젖고 있다
송수권, 갯메꽃
채석강에 와서 세월 따라 살며
좋은 그리움 하나는 늘 숨겨놓고 살지
수평선 위에 눈썹같이 걸리는 희미한 낮달 하나
어느 날은 떴다 지다 말다가
이승의 꿈속에서 피었다 지듯이
평생 사무친 그리움 하나는
바람 파도 끝머리 숨겨놓고 살지
때로는 모래밭에 나와
네 이름 목 터지게 부르다
빼마른 줄기 끝 갯메꽃 한 송이로 피어
딸랑딸랑 서러운 종 줄을 흔들기도 하지
어느 날 빈 자리
너도 와서 한번 목 터지게 불러 봐
내가 꾸다 꾸다 못 다 꾼 꿈
이 바닷가 썩돌 밑을 파 봐
거기 해묵은 얼레달 하나 들어 있을 거야
부디 너도 좋은 그리움 하나
거기 묻어놓고 가기를
복효근, 자벌레
오체투지, 일보일배(一步一拜)다
걸음걸음이 절명이 순간일러니
세상에 경전 아닌 것은 없다
제가 걸어온 만큼만 제 인생이어서
몸으로 읽는 경전
한 자도 건너 뛸 수 없다
문정희, 터키석 반지
사랑에 은퇴하고
가을 하늘처럼 투명해지면
터키석 반지 사러
터키에 가고 싶다
어느 슬픔의 바다에서 건져 올렸던가
천년 햇살에도 마르지 않는
깊은 눈을 가진 여자
푸른 물소리 출렁이는
터키석 속에서 만나고 싶다
비둘기 떼 쏟아지는
위스크다르 항구에 닿고 싶다
실크로드 그 끝자락에는
동양과 서양의 온갖 보석들이
짧은 지상의 약속을
기다리고 있겠지
흙에도 귀가 달린 나라
터키에 가서
내가 나를 위해
터키석 반지 하나 사고 싶다
사랑에 은퇴하고
가을 하늘처럼 투명해지면
이재무, 눈빛
그도 나의 눈빛에 쫓겨 달아났을까
쓰레기장 옆구리 터진 봉지에
코를 처박고 있다 나의 눈과 마주친
개의 그 눈빛
되돌아서며 몇 번이고 되쏘던 적의(敵意)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관공서에서, 백화점에서, 직장에서 보았던
낯익은 그 눈빛
등허리에 땀이 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