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수, 그립다는 말의 긴 팔
그대는 지금 그 나라의 강변을 걷는다 하네
작은 어깨가 나비처럼 반짝이겠네
뒷모습으로 내게로 오는 듯 눈에 밟혀서
마음은 또 먼 통화 중에 긴 팔을 내미네
그러나 다만 바람 아래 바람 아래 물결
그립다는 말은 만 리 밖 그 강물에 끝없네
공광규, 되돌아보는 저녁
자동차에서 내려 걷는 시골길
그동안 너무 빨리 오느라
극락을 지나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디서 읽었던가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잠시 쉰다고
영혼이 뒤따라오지 못할까봐
발들을 스치는 메뚜기와 개구리들
흔들리는 풀잎과 여린 들꽃
햇볕에 그을린 시골 동창생의 사투리
푸짐한 당숙모의 시골 밥상
어머니가 나물 뜯던 언덕에
누이가 좋아하던 나리꽃 군락
이응준, 미소에 관한 질문
꽃을 만져 눈이 멀었다
내가 아직도 칠흑 속에 있다고 절규할 때
그대는 어째서
내가 볼 수 없게 된 것들보다 아름다운가
그대. 차라리
죽고 싶은 마음
그대
나는 이 어둠 때문에
빛을 찾아간다
엄원태, 강 건너는 누떼처럼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 사랑이여
그것을 마라 강 악어처럼 예감한다
지축 울리는 누떼의 발소리처럼
멀리서 아득하게 올 것이다, 너는
한바탕 피비린내가 강물에 퍼져가겠지
밀리고 밀려서, 밀려드는 발길들
아주 가끔은, 그 발길에 밟혀 죽는 악어도 있다지만
주검을 딛고, 죽음을 건너는 무수한 발굽들 있다
어쩔 수 없이
네가 나를 건너가는 방식이다
김제현, 풍경(風磬)
뎅그렁 바람 따라
풍경이 웁니다
그것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일 뿐
아무도 그 마음 속 깊은
적막을 알지 못합니다
만등(卍燈)이 꺼진 산에
풍경이 웁니다
비어서 오히려 넘치는 무상(無上)의 별빛
아, 쇠도 혼자서 우는
아픔이 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