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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목, 토담이 무너지는 동안
어느 여름 장맛비 사나흘에
젖은 토담이 스르르 무너졌다
누군가 세웠을 옹색한 높이며
거처의 안팎이나 구분 지었을 허술한 경계가
조용하게 흙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훗날 당신이 나를 떠나는 하루나
내가 당신 떠나는 절명이 저리 순했으면 싶어
몇 날 며칠 담이 무너진 곳을 서성거렸다
흙탕물 범벅이었던 자리
물이 길을 내고 바람이 공중을 여는 것인지
망촛대 하나 툴툴 털고 일어서
둥글게 허리를 젖히고 있었다
햇살이 고요하게 그의 허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박형준, 사랑
오리떼가 헤엄치고 있다
그녀의 맨발을 어루만져주고 싶다
홍조가 도는 그녀의 맨발
실뱀이 호수를 건너듯 간질여주고 싶다
날개를 접고 호수 위에 떠 있는 오리떼
맷돌보다 무겁게 가라앉은 저녁 해
우리는 풀밭에 앉아있다
산 너머로 뒤늦게 날아온 한 떼의 오리들이
붉게 물든 날개를 호수에 처박았다
들풀보다 낮게 흔들리는 그녀의 맨발
두 다리를 맞부딪히면
새처럼 날아갈 것 같기만 한
해가 지는 속도보다 빨리
어둠이 깔리는 풀밭
벗은 맨발을 하늘에 띄우고 흔들리는 흰 풀꽃들
나는 가만히 어둠속에서 날개를 퍼득여
오리처럼 한번 날아보고 싶다
뒤뚱거리며 쫓아가는 못난 오리
오래 전에
나는 그녀의 눈 속에
힘겹게 떠 있었으나
박남준, 흰 나비떼 눈부시다
나 지금껏 꽃 피고 꽃 지는 일만 생각했구나
꽃 피고 꽃 지는 일만 서러워했을 뿐
꽃이 피고 그 꽃이 진 자리
오랜 상처를 앓고 난 뒤에야 두 눈 깊어지듯이
등불처럼 내달은 열매를 키워간다는
참으로 당연한 이치도 몰랐던가
배꽃 지던 날 흰 나비떼 흰 나비떼
눈부시게 날아오르는데
사랑을 위해 나 여지껏 기다려왔던 것인가
허형만, 시
사랑의 힘을 믿어야 한다
스스로를 태우고도
남는 게 있다면 그것마저 버려야
비로소 우리 가슴에 뜬
생명의 별 하나
따뜻한 숨결을 내뿜느니
고재종, 날랜 사랑
장마 걷힌 냇가
세찬 여울물 차고 오르는
은피라미떼 보아라
산란기 맞아
얼마나 좋으면
혼인색으로 몸단장까지 하고서
좀 더 맑고 푸른 상류로
발딱발딱 배 뒤집어 차고 오르는
저 날씬한 은백의 유탄에
푸른 햇발 튀는구나
오호, 흐린 세월의 늪 헤쳐
깨끗한 사랑 하나 닦아 세울
날랜 연인아 연인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