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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사막
사막에
모래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다
사막에는
모래보다
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
모래와 모래 사이에
사이가 더 많아서
모래는 사막에 사는 것이다
오래된 일이다
강가애, 순간이 아찔하다
자두나무 아래 무성한 잡초를 낫질하는
순간이 아찔하다
개망초 줄기와 다리 사이에 얹혀 있는
숨겨둔 집 한 채
풋자두 같은 새알 서넛 놓여 있다
까만 눈알의 어미새
안절부절못하고 낫을 주시한다
힘든 수레를 밀고 가는 자두밭엔
하늘로 떠난 아버지의 열매 꽉 차고
두어 개의 새알은 빛을 잃었다
한 방울의 눈물도 부화시키지 못한 어미새
개망초꽃은 눈치없이 사방댄다
자두밭은 붉어가는데
노을의 눈빛은 참을 수 없었다
모두들 손가락질 해대지만
어미새는 아찔함을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강승남, 저녁별처럼
가난하던 어린 날엔 궁금한 것도 많았지
꽃들은 왜 피었다 지는지
가을밤엔 기러기들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나는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
어두워진 후에야 어렴풋이 알겠네
모든 것들은 다만 이 세상이 궁금해서 왔다가
또한 저 세상이 궁금해서 가는 것
마음을 지닌 것들은 본래가 궁금한 것임을
이설야, 홀로 가는 길이란 없다
아무도 길을 가지 않을 때 길은 홀로 있다
내가 길을 떠나지 않으면 나는 홀로 있다
홀로인 내가 홀로인 길을 갈 때
길도 나도 홀로가 아니라
동행하는 다정한 친구가 되는 것이다
홀로인 나여, 홀로 있지 말고
어서 길을 떠나라
홀로인 길을 데리고
산 넘고 물 건너 멀리멀리 떠나라
곽재구, 여뀌꽃밭에 사는 바람
여뀌꽃밭에 사는 바람은
키가 작고
얼굴도 작고
손도 작아서
내가 그이의
작은 손을
가벼이 잡을라치면
마른 풀밭 위
무릎을 접어야 하는데
그때쯤엔
그이 또한 환히 웃으며
내 눈썹 위
어린 초승달 하나를 띄우기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