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단편] 상담원
게시물ID : panic_879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우라
추천 : 24
조회수 : 2237회
댓글수 : 16개
등록시간 : 2016/05/20 19:33:25
옵션
  • 창작글
혜원은 인바운드, 그러니까 전화 상담원으로 3년 동안 일을 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저 앉아서 일하고 싶다는 안일한 마음에 그리고 목소리가 이쁘다는 

칭찬을 많이 받아서 단지 그 두 가지 이유로, 3년 동안이나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지금 자기 일에 일말의 자존감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술을 진득하게 먹고 전화하는 사람은 당연지사고 성희롱을 일삼는 사람들도 있었다. 

감사하다는 끝인사를 받을 때는 그런 기분이 누그러질 때가 있었지만 

그런 기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야! 내가 뭐 좀 물어보려고 하는데" 

'고객님 아무리 고객님이라도 반말을 하시면 듣는 상담원이 기분 나쁩니다.' 

라고 내뱉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고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말씀하세요. 고객님" 

"너희 집 어디냐?" 

"네?" 

"너희 집 어디냐고"

"그게 무슨 말씀인지. 저희는 공공기관의 서비스 상담원으로 상담원의 개인 정보는 
알려 드리지 않습니다." 

"뭐? 미친X 상담원 주제에 존나 비싸게 구네! 퉷 똥이나 처먹어라! 

"뚝.. 띠띠띠" 

"하아... 미친 XX"

작게 소리치자 옆자리에 있던 진영이 말을 걸었다. 

"왜 또 그 미친 XX야?" 

혜원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뱉었다. 

"나 이거 그만둘까 봐"


"또또.. 이거 왜 이래 그만두면 당장 뭐 먹고 살려고 그래 너 뭐 기술이라도 있어? 

진영은 입사 동기 이자 절친한 친구였다. 혜원과 다르게 이 일에 자긍심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런 진영의 모습을 볼 때마다 진영이 어떻게 이런 수난을 버틸 수 있는지 궁금했다. 

"아니.. 뭐. 모아둔 돈도 있고, 여행이나 다녀와서 천천히 생각해 보려고." 

"야야 아서라, 상담원 월급으로 모아봐야 얼마나 모아 뒀다고 로또라도 당첨되지 않는 이상 
여기서 그만두는 건 굶어 죽겠다고 말하는 거랑 똑같은 거야." 

"그런가? 후..." 

그런 식의 대화가 처음은 아니었다. 처음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했을 때는 진영은 같이 맞장구 쳐주면서 
같이 그만두자고 라고 말을 했지만, 상담원으로 일하는 하는 햇수가 지날수록 그리고 혜원이 그만두고 싶다는 
말의 빈도가 많아질수록 진영은 그제야 혜원이 진심으로 그만둘 마음은 없다는걸 아는 듯 말했다. 

 
다시 쉴새 없이 전화가 울리자 혜원은 자신의 양 볼을 찰싹 한 번 친 후 
헤드셋을 고정한 후 버튼을 눌렀다. 

"아.. 안녕하세요."

"네 반갑습니다. 고객님." 

"여기는 아무 상담이라도 받아주나요?" 

"음.. 아무 상담은 아니지만, 기본 생활 정보나 교통 상황 그리고 여러 가지 XX 시의 여러 가지 민원 서비스의 
질문을 받고 있습니다. 고객님." 

"아... 그런가요? 제가 잘못 걸었네요." 

혜원은 일의 회의감과 반대로 숙련된 상담원 이었기 때문에 상담자의 기분 체크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이런 부류의 장난 전화는 많이 받아 봤지만, 이번 전화는 장난 전화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고객님 제가 아는 선이라면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한번 말씀해 보세요." 

"그... 그래도 되나요? 후... 사실 제가 방금... 아빠가 엄마를 죽이는 걸 봤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혜원은 그제야 자신의 직감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아 고객님... 저희는 장난으로 전화하신 경우는 상담해 드리지 않습니다. 
다른 질문이 없으시면 다음 상담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지,,. 진짜에요. 믿어주세요…. 아빠가 방금…. 엄마를 칼로 찔렀어요. 
너무 무서워서.. 경찰에는 안돼요. 아빠가 잡혀가잖아요." 

혜원은 순간 입이 벌어졌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렇게 진심이 담긴 목소리가 거짓말을 하는 목소리 
일리가 없다. 혜원은 어떻게 해야 하지 하고 진영을 바라보았지만, 진영도 상담하느라 바쁜 모양이다. 

"고.. 고객님?" 

"네..네. 듣고 있어요." 

"일단 침착하시고, 어머니의 상태를 알 수 있을까요?" 

"어.. 엄마요? 네.. 일단 확인해 볼게요." 

몇 분의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정적이 흘렀다. 혜원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렇게 시간이 길었나? 싶을 정도로 
기다리는 시간이 영원히 지속할 것만 같았다. 

"드드륵" 

소음과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가신 거 같아요... 흐흑" 

소녀는 흐느끼며 말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아직 학생인 듯 목소리가 앳되게 들렸다. 

"고객님 나이를 물어봐도 될까요?" 

"나..나이요? 중학생인데..." 

역시나 사촌 동생 또래의 나이였다. 

혜원은 일부러 그녀의 기분을 달래주고 친근감을 높이기 위해 원래는 상담원의 금기였지만 
반말을 하기로 했다. 

"아 미안.. 나이는 내가 더 많은데.. 언니가 반말 좀 써도 될까?" 

"상관없어요.. 얘기만 계속 들어주시면요..." 

"일단 아버지는 나가셨니?" 

"네.. 네 아마 술 마시러 간 것 같은데." 

"그럼 먼저 구급차를 부르는 좋지 않을까?" 

"구급차요? 구급차를 부르면 엄마가 살 수 있을까요?" 

"그럼 분명히 괜찮아 지실 거야." 

"네.. 알겠어요. 그럼 연락해볼게요." 




* * * 


몇 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 

상황을 어느 정도 인지하자 바로 전에 까지만 해도 요동치던 심장의 심박 수가 일정하게 바뀌어 있었다. 
인간은 역시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일까? 그런 의문심이 퍼지는 동안 다시 전화가 울렸다. 

"언니?" 

"응 듣고 있어." 

"언니가 알려준 번호대로 전화해 봤는데... 안 받아요." 

그럴 리가 없다. 세상에 무슨 상황이 벌어져도 설사 전기가 끊기더라도 비상전력을 갖추고 있는 곳이 
구급센터였다. 

"그럴리가 가르쳐준 번호로 전화한 게 맞니?" 

"네... 확실해요." 

만약 확실하다면 혜원이 당장 조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 어린 목소리의 주인을 달래는 방법 밖에는

"음.. 그럼 아버지가 언제 돌아 오실 것 같니?" 

"아빠요? 잘 모르겠어요. 언제나 다음날이면 돌아오셨는데..." 

"그래? 그럼... 일단 그곳을 빠져나가서 조금 안전한 장소로 몸을 옮기는 게 좋지 않을까?" 

"그... 그럼 언니랑 통화 못 하잖아요." 

"아 핸드폰이 없구나.." 

"핸드폰이요? 그게 뭐예요?" 

요즘 시대에 핸드폰을 모르는 아이가 있다니, 혜원은 새삼스레 놀라며 말을 이어나갔다. 
혹시 아동학대로 사회에서 방치된 아이라면 그럴 가능성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아이는 방금 자신을 중학생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얘기 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역시 이 전화는 장난 전화인 것일까? 혜원은 약간 격앙된 마음으로 목소리를 올리며 말했다. 

"너 지금 나랑 장난치니? 어떻게 핸드폰도 모르니? 그럼 스마트폰이라고 얘기 해줘야 해?" 

"어.. 언니... 미안해요. 근데 진짜 모르겠어요. 그게 무슨 말인지.." 

혜원은 소녀의 진심이 담긴 목소리에 바로 전에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 럼 진짜 몰라? 친구들도 하나씩 가지고 있지 않아?" 

"친구들이요..? 아니요. 그런 건 들고 다니지 않는데... 삐삐라면 몰라도." 

"삐삐?"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단어다. 설마 복고 유행이 번져 다시 삐삐를 사람들이 쓰고 있다는 
소리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조금.. 말도 안 되는 질문이지만…. 혹시 거기가 2016년이 맞니?" 

"네?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은 1994년인데... "




* * * 

"거.. 거짓말." 

혜원은 작게 읊조렸다. 그럼 자신이 과거에서 온 전화를 받고 있다는 소리다. 장난 전화라고 하기엔 
소녀의 목소리가 절실했다. 

"어... 언니 끊는 거 아니죠?" 

"아니야. 듣고 있어." 

"그럼 살고 있는 곳 좀 말해 줄 수 있어?" 

"여기 XX시 XX 동이요

"말도 안 돼 지금. 그곳은.." 

소녀가 말한 곳은 지금 대규모 재개발로 이미 지명이 사라진 동네였다. 1994년이라면 확실히 
그 동네는 존재하고 있었지만, 거짓말을 하기 위해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할 수 있을까? 그것도 
혜원이 만약 예전에 그 동네에 살지 않았더라면 그녀조차 알 수 없는 사실 이었다. 

'그리고..1994년.. XX동 모녀 살인사건'

1994년 X 월 X일 모녀가 한 가장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실도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살인사건에 휘말린 사람은 같은 반 아이였으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당시 피해자였던 
아이와는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였지만, 그 연도의 졸업생이라면 모두 잊지 못할 사건이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소녀는 앞으로 수 시간 후에 아버지에게 살해당한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이 전화가 거짓이 진짜든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 거짓이라면 다행이고 진짜라면 그것도 다행이다. 
왜냐면 이 대화로 그녀를 살릴 수 있으니까.

"아! 맞다 이름을 안 물어 봤네? 이름 좀 알 수알수 있니?" 

"이름이요? 유미진이요"

"미진이구나 이쁜 이름이다." 

유미진...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히 그때 죽은 소녀의 이름이 그런 비슷한 이름이었다는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언니 얘기 잘 들어 위협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어. 
지금 당장 그곳을 나와야 해!" 

"네... 하지만.. 전화가." 

"괜찮아 공중전화도 있을 거 아니야.. 
다른 상담전화는 받지 않고 기다리고 있을게." 

"저.. 정말요?" 

"응 진짜 약속이야." 

"그.. 그럼 언니 말대로." 

이어 찰칵찰칵하는 철문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다시 지직 거리는 소음과 함께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언니. 문이 안 열려요." 

"설마.. 다시 한 번 열어봐!" 

"안 열려요. 열쇠로 잠긴 것도 아닌데..." 


소녀가 빠져나가는걸 막기 위해 소녀의 아빠가 밖에서 문을 막아둔 게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창문으로 빠져나가는 수 밖에 없다. 재개발전에는 모두 낮은 층의 주택에서 살았기 때문에 
창문에서 떨어지라도 발을 접지르는 정도로 끝날 것이다.

"미진아? 그럼 창문으로 나가볼래?" 

"창문으로요? 알았어요." 

다시 달각달각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소녀의 한숨 소리가 다시 전화로 들려왔다. 

"창문도 안 열려요." 

"그럼 어쩔 수 없네. 부시는 수 밖에." 

"부셔요?" 

"집에 의자나 뭐 망치 같은 걸로 창문을 내리치는 수 밖에 없어." 

"그... 그럼 아빠한테 혼나는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너 죽을 수도 있어!" 

혜원 순간 자신의 입을 막았다. 옆에서 진영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혜원을 향해 말했다. 

"야 김혜원 무슨 소리야? 이제 막 나가기로 한 거야?" 

"아... 아니야 미.. 안 지금 딴 생각 좀 하느라." 

"휴.. 내가 대신 받을까?" 

"아니야! 진짜 미안" 

"괜찮은 거 맞지?" 

"응..."


 * * * 


미진은 혜원의 말대로 있는 힘껏 창문을 내려쳤지만 창문은 이상하게도 깨지지 않았다. 
그 당시에 낡은 주택에 특수강화 유리를 쓰고 있을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역시 과거는 바꿀 수 없는 것일까? 무언가의 힘이 미진이 빠져나가는걸 
막고 있을 걸까? 

"어... 언니 듣고 있어요?" 

"으... 응 말해." 

"방금 말했죠. 언니..가 저 죽을 수도 있다고." 

"아.. 아니야. 잘못 말한 거야. 내가 좀 유난스러운 성격이라서... 있잖아. 반에 그런 애들..."

"아 네. 있어요. 우리 반에도 김혜원이라고..." 

혜원은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일었다. 갑작스럽게 눈물이 나려는 걸 간신히 참고 말했다. 

"아 있구나.. 별로 친하지는 않아?" 

"음.. 네 목소리는 예뻐요. 얼마 전에 합창대회 때 걔 노래하는걸 들은 적이 있는데 
놀랐다니까요." 

"놀랐어?" 

"네..아마 가수할 생각 인가 봐요. 아마 될 거 같아요.  좋은 목소리 가지고 있으니까..."

혜원은 아니라고 속으로 말했다. 가수는커녕 지금 월세 생각도 바쁜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만약 미진이 살아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비웃고 있을까? 친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미진은 그녀를 기억하고 있다. 

"언니..." 

"응"

"전 죽겠죠." 

"뭐... 뭐라고?" 

"그런 느낌이 들어요." 

"아니야...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아니에요. 사실 모르겠어요. 제가 어떻게 이 번호를 눌렀는지. 
그냥 당황스러운 마음에 아무나 받으라는 심정으로 했는데 
진짜 언니가 목소리 듣고 얼마나 안심 됐던지." 

"아 응.. 그랬구나.." 

"드르륵 철컹" 

"방금 무슨 소리니?" 

"아.. 아빠가 오셨나 봐요." 

"미진아?" 

"어... 언니 이만 끊을게요. 아빠한테 걸리면 큰일 나니까! 

"안돼! 끊으면..." 

"언니 고마웠어요." 

"뚜뚜뚜뚜....."


* * * 

한달 후...

혜원은 그날 이후 사표를 내고 예전 살던 동네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준비한 꽃을 이제는 허물허지고 없어졌지만, 미진이 살던 곳에 놓았다. 

약한 바람이 꽃을 흔들었다. 

"미안해..." 

그녀가 그만두는 걸 말리던 진영은 결국 포기했다. 

혜원 왜 마지막으로 미진이 자신에 전화를 걸었는지 그리고 왜 자신이 죽는 다는 걸 직감 했는지 
아직도 이해 할 수 없다. 

"만약 살았더라면.. 우리는 친구가 되었으려나" 

혜원은 마음을 가다듬고 여러 차례나 왔지만 결국 발길을 돌렸던 곳을 찾았다. 

"네 ~ 어서 오세요." 

젊은 여직원이 혜원을 맞이했다. 

"아 학원에 등록하러 오셨나요?" 

"네... 근데 좀 나이가 많아서 괜찮을는지." 

"어머 요즘 나이가 뭔 상관있나요? 꿈이 있다는 게 좋은 거죠." 

"그럼 보컬오전반으로 수강하시는 거죠?" 

"네." 






[끝]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