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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여사 한국일보 인터뷰
게시물ID : sisa_8793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닥호
추천 : 25
조회수 : 1350회
댓글수 : 22개
등록시간 : 2017/03/31 15:19:10

-최근 몇 달간 사람들 만나느라 굉장히 바빴다.

“남편이 일정에 쫓겨 못 만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내 일이다. 그저 사람들과 소통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 많이 들으려 한다. 그게 익숙한 일은 아니니까 만나러 갈 때 항상 긴장하고 마치고 와서는 힘들다. 항상 실수하거나 잘못한 게 뭐가 있나 생각한다. 두려운 일이지만 해야 할 일이고,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다시는 실패하고 싶지 않다.”

 

-두 번째 대선인데 긴장되나.

“그렇다. 어쩌면 처음엔 몰라서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실패 경험이 있고, 꼭 이루려는 마음이 굳고 절박해 더욱 긴장된다.”

 

-지난 추석 때부터 매주 1박2일로 광주에 다닌 걸로 안다. 호남 민심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는데.

“2012년 낙선하고 도와주신 분들과 시민단체에 인사 말씀을 드리러 갔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광주 아파트 밀집촌을 지나는데 그 불빛 속에서 내가 앓았던 절망감, 상실감을 느꼈다. 우리를 지지해준 광주의 92%가 이 아픔을 안고 있겠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지방으로 갈수록 혈연 학연 지연을 더 따지는데, 광주에서는 아무 연고도 없는 저희를 92%라는 압도적 지지로 찍어줬다. 오로지 정권교체의 일념인 것이다. (울먹이며) 하지만 실패하고 나니 다가가기가 힘들었다. 그 감정들을 해소해야 했다. 그분들의 실망, 상처를 위로하고, 나도 열심히 했던 걸 위로받고 싶었다.

그래서 광주에 가면서 제 나름의 원칙을 정했다. 언론인은 안 만난다, 정치인도 안 만난다. 그래야 나를 만나려는 분들이 더 진솔하게 힘든 얘기들을 내게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반년 가까이 했더니 그분들이 ‘이제 여기 오지 말고 전남, 전북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더라. ‘아, 내가 이렇게 진심을 여는 순간, 그분들은 마음을 열어 준비했던 말을 나에게 하는구나. 그게 되는구나’ 생각했다. 요새는 도서지역을 다닌다. 광주는 내가 남편의 모자란 점을 받쳐주는 곳이기도 하고, 거기서 나도 몰랐던 걸 배운다. 서로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를 주고 받는 시간들이었다.”

 

-지난 대선 때도 그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 싶겠다.

“그때는 알아도 못했을 거다. 2012년 4월에 초선의원이 되고 6월에 대선 후보 경선이 시작됐다. 그때는 당원동지 여러분이 뭔지도 몰랐다. 다만 지난 대선 때 너무 급하게 시간에 쫓겨 30분만 지나면 다른 곳으로 옮겨 다녔는데 만나러 온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이번에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만난다. 만나면 얘기를 들어야지 정치인이 무슨 큰 벼슬이라고 눈도장만 찍고 가나. 이분들은 자기들의 권리, 힘든 얘기, 정권교체의 열망을 얘기하겠다며 하루, 이틀을 버리면서 오는 거다. 과연 정치인들은 무엇을 했던가, 오로지 바라기만 하고, 참여해달라는 말만 한 건 아닌가 깨달음이 많았다. 앞으로도 계속하려고 한다.”

 

-문 후보가 고마워하며 잘해주겠다.

“남편이야 항상 나한테 잘해줬다. 신뢰를 주는 사람이고, 따뜻한 사람이다. 표현은 안 해도 내가 힘들어하는 것 같으면 자기가 다 해주는 사람이니까. 근데 말투가 좀 그렇다. 경상도 남자고, 법조인으로 살아서 말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 크다. 피란민 집안의 가장으로 어렵게 살면서 참을 줄만 알았지 ‘나 어려운데 좀 도와줘’라는 얘기도 할 줄 모른다. 알아서 도와주면 고마워 하면서도 말을 못한다. 쑥스러워서 말 못했던 것, 정서적으로 소통하는 것, 그걸 내가 좀 잘했던 것 같다.(웃음) 남편에게 도움을 주는 것 같고.”

 

-문 후보께서 대학 시절 시위하다 최루탄을 맞아 실신했을 때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준 인연이 연애의 시작이었다는데, 지어낸 것 아닌가 싶게 로맨틱하다.

“제 친구의 오빠가 문 후보랑 같은 법대에 다녔다. ‘재인이가 멋있는 친구인데 축제 같은 때 늘 혼자 온다’며 1학년 축제 때 소개해줬다. 남자가 무슨 양복 정도는 입고 올 줄 알았는데, 이상한 초록색 잠바에 회색 바지를 턱 입고 왔더라. ‘내가 지금 대접받고 있는 거야?’ 싶으면서 별로였다. 이듬해 유신반대시위를 하는데 비장하게 선두에 서서 교문 앞 장갑차를 향해 돌진하더라. 그런데 그 이상한 초록 잠바에 회색 바지를 똑같이 입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는데, 아는 사람 아닌가. 가서 물수건으로 닦아 주는데 문재인씨가 눈을 반짝 뜨더라. 그 후 이렇게 됐다.(웃음) 그 사람은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자유롭게 해줄 것 같아서 좋았다. 나는 성악가니까 외국에 나가는 큰 꿈도 꾸었는데, 내가 온전히 나의 삶을 꾸려도 뭐라 간섭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관습에 의해서 여자는 이렇다는 둥 하지 않을 것 같은 유일한 사람이랄까. 내가 많은 남자를 만나본 건 아니지만.(웃음)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한 가치관이 잘 맞았다. 편안하고.”

 

-성악가의 길로 왜 안 갔나?

“미술은 덧칠할 수 있지만, 음악은 시공간에 한번 내뱉고 나면 끝이다. 그게 힘들었다. 제가 명랑한 것 같아도 굉장히 소심하다. AA형이다. 무대에 서기 전의 공포, 선 후의 자책이 너무 컸다. 이건 아닌 것 같던 차에 남편이 사법고시에 붙고 부산에 내려 간다고 하자 큰 애도 8개월일 때라 서울시립합창단을 그만두고 따라갔다. 사실 속이 시원했지만 ‘당신 때문에 내 음악활동을 포기했다’며 5년 정도는 협박 아닌 협박을 많이 했다. ‘당신 자꾸 이러면 나는 실력 있으니까 애 다 놔두고 음악 공부하러 갈 거다’ 하면 우리 남편이 되게 미안해 했다.”

 

-5년 전과 비교해 정치인으로서 남편의 달라진 점은.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절박하다. 지난 대선에서 정치초년생인 남편이 대선 후보가 된 것은 시대적 호명이었다. 꼭 정권교체 해야겠다, 그런데 기존 정치인보다 당신이 나은 것 같다, 그래서 나온 것 아니겠나. 그걸 못 이루고 난 후 역행하는 시대를 보면서 자신의 실패를 넘어 역사 퇴행에 대한 책임까지 느꼈다. 나도 변했는데 얼마나 절박했겠나. 1~2년 전만 해도 왜 사람들은 나한테 사명을 주듯 ‘문재인씨한테 잘해주세요’ ‘건강 잘 챙겨주세요’ 그러는지 너무 섭섭했다. 이제는 이 사람이 내 남편이 아니다, 깨달았다. 집안에서 소소하게 뭘 못한다고 잔소리하고, 왜 그러냐 섭섭해 하고 그러면 안 되겠더라. 문 후보가 다치지 않게, 건강하게, 안정되게, 올바른 판단을 하게 지켜주는 게 내 일이다.”

 

-어떻게 해주나.

“여느 정치인들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데 남편은 집에 와서 쉬는 걸 좋아한다. 잠깐이라도 시간이 생기면 꼭 집에서 휴식을 하고 간다.”

 

-남편들이 그러면 보통 아내는 싫어하는데.

“남편 성향이 그러니 싫다고 말을 못한다. 나가려는데 예고도 없이 확 들어오면 짜증이 안 나는 건 아니다.(웃음) 챙겨줘야 하니까. 하지만 대한민국을 위해서 내가 참는다. 나가면 사람들이 알아보고 밥술이나 제대로 뜨겠나. 굉장히 예민한 사람인데 겉으로는 허허 웃지만 시선 속에서 피곤할 거다. 조용한 환경에서 잠도 좀 깊이 자고, 안정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요새는 내가 1박2일로 도서지역에 다니니 남편이 밥도 스스로 챙겨먹어야 하는데 잘 한다.”

 

-문 후보께서 정치적 고민이나 바깥에서 겪은 속상한 일에 대해서 잘 얘기하는 편인가.

“잘 안 한다. 내가 잘 모르기도 하고. 우리는 대학교 1학년 때 만나서 서로의 인간관계를 잘 알고, 따로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런데 정치인이 되면서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생겼다. 벽이 생긴 거다. 덕분에 좋은 것은 내가 정치에 물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접받은 적이 없기에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라고 하는 권력의 병폐, 남용, 그걸 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사람이란 게 처음에는 보좌관이 가방 들어주는 것도 싫다가, 5년 후 재선 의원 부인이 돼 보좌관이 가방을 안 들어주면 이상하게 느낀다. 나는 그런 구태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요즘 이런 일(탄핵과 조기 대선)이 자꾸 벌어지는 걸 보면 두려움에 악몽도 꾼다. 그럴 때 나를 지키면서 살 수 있을 거라고 안심하는 이유가 대접 받는 게 습관이 안 됐다는 거다.”

 

-남편을 보며 이러려고 정치를 했나, 자괴감 들었던 때는.

“많다. 당 대표 나왔을 때도, 정치에 들어왔을 때도, 매일매일 욕을 먹으니까. 잘못한 일에 대해 욕을 먹으면 반성이라도 하겠는데 자기들 이익을 위해서 하지도 않은 것을 욕하면 너무 속상하다. 남편이 정치를 한 후 내가 말이 험해졌다.(웃음) 남편은 잘 참는데, 난 너무 화가 나니까 말로 디스를 한다. 남편은 ‘그만하지. 도대체 왜 그러나, 사람이’ 하는데, 그러면 나는 ‘내가 대신 말해주니 속이 편하지?’ 한다.”

 

-최근에 가장 속상했던 때는.

“지난 연말 JTBC에서 손석희 사장과 인터뷰 했을 때. 이 사람이 생각이 너무 많아서 말이 엉켜버린 거다. ‘어휴, 그렇게밖에 못해?’ 그 다음날이 광주 내려가는 날이었는데, 밥도 국도 안 해놓고 확 가버렸다. 본인이 너무 괴로워하는데, 나도 너무 속이 상해서…. 나중에 들으니 즉석밥 사다가 먹었다더라.”

 

-손석희 사장이 미우셨겠다.

“남편 때문에 남을 미워하지는 않는다. 제가 굉장히 쿨한 사람이라서.(웃음)”

출처 http://www.hankookilbo.com/v/37abc9a7088f42198724676573b5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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