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 첫날, 나와 아버지는 동네에 있는 넓은 공원에 갔다. 그 공원에는 조깅 코스가 있었다. 공원에 도착하자 아버지는 공원한가운데 좍 펼쳐져 있는 잔디밭으로 들어갔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그잔디밭은 ‘출입금지’ 구역이었다. 잔디밭 거의 한가운데까지 들어간 나와 아버지는 약간 거리를 마주보는 꼴로 섰다. 아버지는 잠시 나를 아무 말 없이 쳐다만 보았다.
대체 어떤 훈련을 시키려는 것일까?
나는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왼팔을 앞으로 똑바로 뻗어봐.”
나는 일단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했다.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팔을 뻗은 채로 몸을 한 바퀴 돌려봐.”
“어?”
“그 자리에서 발을 움직이지 말고,어느 쪽이든 상관없으니까 돌아보라구. 컴퍼스처럼 말이야.”
아버지의 표정은 진지했다. 나는 주춤거리다가 왼팔을 쭉 뻗은 채 왼쪽으로몸을 한 바퀴 돌렸다. 내가 다시 아버지와 마주하게 되자 아버지는 말했다.
“지금 네 주먹이 그린 원의 크기가 대충 너란 인간의 크기다. 그 원 안에 꼼짝 않고 앉아서, 손 닿는 범위 안에 있는 것에만손을 내밀고 가만히 있으면 넌 아무 상처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겠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너는 그런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늙은이같이.”
아버지는 싱긋 미소 지은 후 말했다.
“권투란 자기의 원을 가기 주목으로 뚫고 나가 원 밖에서 무언가를빼앗아오고자 하는 행위다. 원 밖에는 강력한 놈들도 잔뜩 있어. 빼앗아오기는커녕상대방이 네 놈의 원 속으로 쳐들어와 소중한 것을 빼앗아갈 수도 있다. 게다가 당연한 일이지만 얻어맞으면 아플 것이고, 상대방을 때리는 것도 아픈 일이다. 아니무엇보다 서로 주먹을 주고 받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도 넌 권투를 배우고 싶으냐? 원 안에 가만히 있는 편이 편하고 좋을 텐데.”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배울 겁니다.”
아버지는 또 싱긋 웃고 말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GO - 가네시로 가즈키, 주인공이 권투선수 출신인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권투를 배우는 장면 중에서...
이 부분은 글 쓰다가 인용하려고 따로 적어놓은 것인데요. 제가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입니다. 영화로 볼 때도 가장 오래 머리 속에 남는 장면이기도 하구요.
오래 전에 이런 말이 유행 했던 적이 있었어요. 돈이 많았던 사람이든 권력을 손에 쥐었던 사람이든 사람은 누구나 죽으면, 한평도 안되는 공간에 뭍힌다구요.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이야기가 주요 핵심인데요. 이 이야기가 살아있는 사람은 자신만의 공간이 없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품게 만들더군요.
그런데 이 소설에서 보여지는 이 장면이 저 한테 해답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공간이 있을 것이고 그 공간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어디서든 내가 팔을 크게 휘둘러 나오는 공간이 나에게 주어진 가장 인간적인 공간이 아닐까? 뭐 이런 것이죠. 내 허락없이 내 공간에 침범하면 화가 날 수 밖에 없고 당연히 지켜내야 할 공간 뭐 그런 것 같은 느낌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