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cg6pcQhqsJI
임윤식, 자유
모처럼 홀로 산을 오른다
배낭 하나 달랑 등에 업었다
능선 바위에 누워
맑은 하늘을 바라본다
몇 점 구름이
한가롭게 흘러간다
바람이 산허리를 휘감고
내 속살을 파고든다
나는 온종일 바다가 되어
파도에 흔들리고 있었다
박재삼, 한(恨)
감나무쯤 되랴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가는
내 마음 사랑의 열매가 달린 나무는!
이것이 제대로 벋을 데는 저승밖에 없는 것 같고
그것도 내 생각하던 사람의 등 뒤로 벋어가서
그 사람의 머리 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려질까본데
그러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안마당에 심고 싶던
느껴운 열매가 될는지 몰라!
새로 말하면 그 열매 빛깔이
전생의 내 전(全) 설움이요 전(全) 소망인 것을
알아내기는 알아낼는지 몰라!
아니, 그 사람도 이 세상을
설움으로 살았던지 어쨌던지
그것도 몰라, 그것을 몰라!
이우성, 손끝이 말해줍니다
주머니에 들어 있는 증명사진을 만지며 걷습니다
뒤집히지 않았다면 이쯤이 어깨 여긴 머리
살짝 구겨도 봅니다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여전히 방긋
발은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습니다
사진관에 간 것만으로
다리든 그 비슷한 것이든 증명됩니다
내가 지금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는 건
우연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일상에서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다리가 걸을 때 가끔 머리는 어디에 가 있습니다
나는 마침 나도 모르는 사이 집에 다 왔습니다
이렇게 절반이 확인됐습니다만
정신없는 날에는
나머지 반이 잘 있다고 믿는 게 조금 불안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웃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진은 필요합니다
김선호, 어머니는 수의를 거풍 시키신다
환하게 피워 올린 목련꽃 옆에서
빨랫줄에 걸린 흰 옷이 펄럭인다
어머니는 일 년에 한번씩
수의를 거풍 시키신다
서랍 속에서 꽃 피우길 기다렸다가
바지랑 끝에서 날리는 삼베 조각들
한때 꽃이던 시절 있었다고
준비해둔 수의를
봄날마다 목련 꽃잎과 견주시면
안동포 조각들이 목련 빛으로 물이 든다
변변한 옷 한 벌 없이 사시다가
큰 맘 먹고 구입하신
평상시엔 입지도 못하는 옷
꽃이 진 자리에서
더욱 빛나는 당신은
앙상한 손길로
남은 생을 미리 다독이신다
수의가 내다 걸린 하늘가
적멸로 가득차다
신용목, 민들레
가장 높은 곳에 보푸라기 깃을 단다
오직 사랑은
내 몸을 비워 그대에게 날아가는 일
외로운 정수리에 날개를 단다
먼지도
솜털도 아니게
그것이 아니면 흩어져버리려고
그것이 아니면 부서져버리려고
누군가 나를 참수한다 해도
모가지를 가져가지는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