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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새벽밥
새벽에 너무 어두워
밥솥을 열어봅니다
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습니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랑 무르익고 있습니다
박노해, 회향
부처가 위대한 건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 아니다
고행했기 때문이 아니다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다
부처가 부처인 것은
회향(廻向)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크게 되돌려
세상을 바꿔냈기 때문이다
자기 시대 자기 나라
먹고 사는 민중의 생활 속으로
급변하는 인간의 마음속으로
거부할 수 없는 봄기운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욕망 뒤얽힌 이 시장 속에서
온몸으로 현실과 부딪치면서
관계마다 새롭게 피워내는
저 눈물나는 꽃들 꽃들 꽃들
그대
오늘은 오늘의 연꽃을 보여다오
이병률, 나는 나만을 생각하고
나는 나만을 생각하고
해가 진다
나는 나만을 생각하느라
다리를 건너다
다리에서 한없이 쉰다
우리가 우리만을 생각하는 것도 모자라
나는 나만을 생각하고
그 이유에 관여하는 것들이 우주의 속살로 썩는다
생각을 앉히고
생각 옆으로 가 앉지만
나는 지렁이
나는 나만을 생각하여서
나에게 던진 질문 따위로 흘러내리고
그러고도 지구를 지구의 손금대로
살게 할 수 없음을 방관하면서
해가 진다
고개를 들 수 없는 땅을
끊어지지 않는 몸으로 기어야 해서
나는 나만 생각하느라
참으로 그래서
해가 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별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나는 한사코 나만 생각하는 것이고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채
나에게로만 가까워지려는 것이다
마경덕, 어처구니
나무와 돌이 한 몸이 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
근본이 다르고
핏줄도 다른데 눈 맞추고
살을 섞는다는 것
아무래도 어처구니없는 일
한곳에 붙어살며 귀가 트였는지
벽창호 같은 맷돌
어처구니 따라
동그라미를 그리며 순하게 돌아간다
한 줌 저 나무
고집 센 맷돌을 한 손으로 부리다니
참 어처구니없는 일
정현종, 갈증이며 샘물인
너는 내 속에서 샘 솟는다
갈증이며 샘물인
샘물이며 갈증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
갈증이며
샘물인
너는 내 속에서 샘 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