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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페이에 관한 짧은 일화, 꼰대의 어거지 그리고...
게시물ID : economy_87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맥콜같은인간
추천 : 15
조회수 : 1086회
댓글수 : 59개
등록시간 : 2014/11/11 20:49:02
 
 
 
 
나는 어떤 회사를 며칠동안 다닌 적이 있었다.
그 회사에 두 달동안 존속하고 그 뒤로 그만둔 일화를 쓰려고 한다.
 
 
내가 있던 회사는 중소기업중에서는 꽤 괜찮은 곳이였다.  성장 가능성도 있었고
주어진 업무도 나의 흥미와 아주 잘 맞는편이였다. 나는 그곳에서 경험을 쌓고 내가 하고싶은 분야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었다.
 
 
처음 면접을 보고 나에게 할 줄 아는 외국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일본어를 할 줄 알았던 나는 일본어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러면 영어와 중국어는 어떻냐고 물어봤다.
영어는 조금 하지만 일본어만큼 유창하지는 못하고 중국어는 잘 모른다고 답했다. 그러면 우선적으로 영어를 배워 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업무 시간 외에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답했고 면접은 그렇게 끝이 났다.
 
 
 
첫 달 나의 월급은 60만원이였다.(오타아님) 참고로 이 이야기는 2011년의 이야기다.
거기에 세금을 공제하고 남은 48만원 가량이 내 세후금액이였다. 점심은 자비로 사먹고 저녁은 회사에서 주는 식권을 통해 먹었는데
회사에서 주는 식권의 가격제한은 3000원이였다. 근무시간은 오전 아홉시부터 오후 여섯시까지였고 주 5일제 근무였다.
 
하지만 급여와 식대 빼고 지켜진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아홉시부터 여섯시까지 근무를 해야 했지만 회의록준비와 업무준비라는 명목으로 여덟시까지 출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정규 출근시간이 아홉시인데 여덟시까지 출근하지 않으면 당장에 불호령이 떨어졌다. 물론 칼퇴근이라는 말도 허용되지 않았다.
대리급 이상이 팀장에게 가서 정말 조심스럽게 '오늘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어서 먼저 가면 안되겠습니까' 하고 말을 해야 팀장은
못미더운 듯 손사레를 치며 여섯시에 퇴근을 시켜주었다. 퇴근시간은 항상 식권을 받고 일하는 아홉시 열시쯤이 정시퇴근이였다.
그나마 일이 바빠서(라고 쓰고 팀장이 퇴근을 안해서 라고 읽고) 열한시 반에 퇴근을 하면 부리나케 막차를 타야 했는데 그것을 놓치면
택시를 타야 했고 고스란히 택시비는 내 통장에서 빠져나갔다.
 
주말근무는 없었다. 다만 월요일 회의에 쓸 자료들을 모아야 했기에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아침까지는 꼼짝없이 집 컴퓨터 앞에
붙어있었고 그걸로도 모자라 xx대리에게 전화가 와서 '월요일날 이런걸 할건데 준비좀 해봐' 라고 하면 주말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만약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 또다시 사람들 앞에서 월요일부터 핀잔을 들어야했다.
 
가장 큰 문제는 페이였다. 60만원이라는 페이는 아무리 뜯어봐도 정규근무시간에 비해서도 최저시급에 미치지 않았다.
나는 언젠가 이 문제를 xx대리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돌아오는 대리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맥콜아 솔직히 인생을 살다 보면 네가 부당하다고 겪는 일이 많이 생길거다. 너는 지금 이런 대우가 부당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네 선배들은 특히 나도 포함해서 난 임마 수습때 삼십만원 받고 매일 밤새고 그랬어. 그래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온거야.
여기서 그만두면 넌 도태될거고 평생 편한 일만 찾아다니다가 인생 망치고 그러는거야. 열정이라는게 별다른게 아니야.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어도 참고 그걸 너만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거지."
 
 
언뜻 들어보면 굉장히 의미있는 조언같았지만 사실은 개똥쓰레기에 불과한 말의 나열이였다. 내가 가진 일의 열정을 돈으로 환산해준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면서 최저시급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아가며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그때부터
나의 업무숙련도는 매우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반정도 쫒겨나다시피 해서 회사를 나왔다. 근 두 달만의 일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열정이고 뭐고 돈도 제대로 안주면서 차라리 이럴거면 해고통지나 해주시던가요 하는 심정으로 왔다갔다 거리기만 했기 때문이다.
아홉시 출근 여섯시 칼퇴근을 할때마다 팀원들과 팀장의 눈초리가 점점 해괴망측해졌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업무상으로 소홀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내 원래의 업무는 했다. 그 외의 업무에는 절대 손대지 않았다. 밥도 혼자 먹었다. 그러더니 사람들은 점점 나를 기피했고
급기야는
 
'사회적응력이 떨어진다' 라는 소리를 면전에서 들어야 했다.
 
 
나는 그 길로 회사를 나왔다. 오후 두 시쯤이였던걸로 기억한다. 통장에 찍힌 칠십얼마의 잔고를 확인하고 나는 한강으로 가서
도시락을 사먹고는 집에 갔다.
 
 
 
이 이야기는 가급적으로 어른들에게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지금도 그렇다.
한번은 잘 아는 어른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꿈을 찾으려면 당연히 그정도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 며 오히려 나에게 훈계를 했다.
당췌 꿈을 찾는 것과 내가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하는 것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아니, 3개 국어를 유창하게 하길 바라며 매일 밤을 새길 바라고 주말에도 집에서 일을 하기를 바라는 그런 '열정' 을 돈으로 환산했을 때
천만원 일억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일하는 시간만큼 돈은 줘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게 내 생각이다.
 
 
 
물론 지금은 각종 수당에 법규 철저히 지켜가며 운영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무조건적으로 일하는 만큼 주고 잔업등은 과장이 직접
내 자리로 와서 '이러이러한 이유로 오늘 잔업을 해야 하는데 맥콜씨 혹시 가능한가? 맥콜씨가 없으면 안되는 일이라 도와줬으면 좋겠어' 라고
정중히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기약없는 잔업이 아니다. 딱 한시간만 더 잔업을 해달라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야근수당까지 챙겨준다.
 
그들에게 어떤 친절이나 호의를 바라는 글이 아니다. 최소한 일을 시키려면 열정 운운하지 말고 그에 맞는 대우를 해 줬으면 좋겠다.
그게 내가 아닌 다른 어떤 누구라도 그렇다. 대우를 해준다면 자연히 열정은 불타오를 것인데...
 
 
그러니까, 누군가 어디를 들어가더라도 술마시고 패악질 부리는 아버지와 항상 화가 나 있는 어머니가 있고 그런 아버지에게서 받는 용돈만큼의 돈 그 사이 어디쯤인가의 '가같은 회사' 아니어도 좋으니까 그냥  '회사' 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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