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BGM] 사막도 제 몸을 비우고 싶은 것이다
게시물ID : lovestory_878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35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6/21 08:10:31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i3i8atXB5ZA






1.jpg

유안진, 96

 

 

 

66과 99를 거쳐 마침내 도달한 69

99와 66을 거쳐 96에 이르기도 하지

무수한 뒤집힘과 곤두박질을 거치면서

 

사랑의 완성은 그렇다고

길 끝에서 새 길이 열린다고

지구는 둥그니까

서로 등 돌려 가다가 다시 69가 될 수도 있다고

너무 쉽게들 말하지

그 말밖엔 할 말이 없으니까

자기 일이 아니니까







2.jpg

황동규즐거운 편지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3.jpg

정숙중심론

 

 

 

하루살이와 불나방들

자신이 하찮은 존재인 줄만 알았다가

 

죽어서야

제 몸 기름이 어둠 속 불 밝힌다는 걸 알고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과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 순간

가로등 불빛 환하게 너털웃음 웃는다

그 웃음길 따라 새벽빛이 찾아온다







4.jpg

박승자밤바다

 

 

 

이 도시에 사는 이십 년 동안

바다를

앞치마나 목도리처럼 두르고 살았다

어둠이 칼칼하게 펼쳐있는 바다에서

썰물에 드러나는 돌멩이처럼 조금은 쓸쓸해도 좋았다

손아귀에 쥔 손금 같은 뱃길을 감추고

어둠에 부표처럼 떠 있는 작은 배

낚시꾼이 건져 올린 은빛 갈치가 반짝

허공에 빛나는 브로치처럼 끼어들곤 했다

밤에 키가 자라듯

생각을 키우는 것도 묵지 같은 바다였다

묵지를 들추면 하얀 속살이 나올 것 같았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꾸륵꾸륵 몇 번 울고 마는

도요새의 울음과 그 총총거리는 발자국 사이에

달빛이 황금빛 길을 내며

알알이 집어등을 켜든 배에

이 도시의 아버지와 오빠의 빛나는 얼굴

그들이 다스리는 식솔들의 웃음이 만선의 꿈에 있었다

난 이 바다에 자주 내 안에서 글썽거리는 낡은 것들을 내다 버렸다

 

파도를 등지고 앉는다

내 글썽이는 방마다 집어등 같은 불을 밝히고

밤바다로 자일을 묶고

내가 버린 것과 내일 사이의 협곡에

도요새처럼 얼굴을 묻고 잠들곤 했다







5.jpg

류근황사

 

 

 

사막도 제 몸을 비우고 싶은 것이다

너무 오래 버려진 그리움 따위

버리고 싶은 것이다

꽃 피고 비 내리는 세상 쪽으로

날아가 한꺼번에 봄날이 되고 싶은 것이다

사막을 떠나 마침내 낙타처럼 떠도는

내 고단한 눈시울에

흐린 이마에

참았던 눈물 한 방울 건네주고 싶은 것이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