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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나, 개를 키우며 배운다
게시물ID : lovestory_878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34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9/06/20 07:44:24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Mewy-1YQsrk






1.jpg

김형술몽골

 

 

 

말이 있다

 

어떤 이는 말의 눈을 사랑하고

어떤 이는 비단 같은 갈기

또 어떤 이는 말의 안장을

 

누군가는 말의 이빨을 찬양하고

또 누군가는 말의 재갈을 쓰다듬고

제각기 강철 말굽에 말굽 표식을 남기며

 

나는 말을 가졌네

나는 말하는 몸을 가졌네

노래하지만

세상의 마굿간은 텅 텅 빈 채

낡은 고삐엔 바람만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내가 방목한 말들

내가 사육한 말들의 무덤은

어디일까

 

어디에나 말은 있어

어떤 이는 말의 뼈를 찾아 헤매고

어떤 이는 말의 영혼을 꿈꾸고

또 어떤 이는 달아나버린 말의 그림자를

암벽에다 새기는데







2.jpg

이정록서시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3.jpg

이종섶물결무늬 손뼈 화석

 

 

 

쌀을 씻어 물을 부은 후

지그시 손바닥을 대어보는 아낙

손에 새겨진 눈금으로

물을 붓거나 덜어내는 것이다

 

표시가 없어도 읽을 수 있는 손에는

얕은 곳을 쟀던 손등부터 깊은 곳을 쟀던 손목까지

물결무늬가 한가득

 

시부모와 남편과 자식들을 뒷바라지 한 세월이

켜켜이 쌓여있는 중생대 지층이다

 

맨 위에서 발굴된 어미 공룡의 손뼈

손바닥 아래에는 아직까지 따뜻한

하얀 조약돌 몇 개

손등에는 여전히 일고 있는 포근한 잔물결

 

그 손으로 쌀을 안치면

뜨거운 밥물이 펄펄 넘쳐흘렀고

 

밥을 삼킬 때마다

목구멍의 눈금이 늘어나는 사람들은

그만큼 속이 깊어졌을 것이다







4.jpg

손현숙나사니까

 

 

 

마주오던 사람하고 살짝 한번 부딪쳤다

오래 쓰던 안경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쪽 다리 떨어진 안경

그만 버릴까주저하다 근처 안경점에 들렀다

 

안경점 남자는

이게 풀렸군요하면서

나사 하나를 돌려 박아 주었다

간단하다

이렇게 감쪽같을 수도 있네요고개를 갸우뚱했더니

나사니까요한다

 

꼭꼭 조인 다음 보는 세상은

환했다

말짱했다

 

언제부터 너는 내게 천천히 등을 보이기 시작했다

풀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사니까







5.jpg

박하현개에게서 배우다

 

 

 

개가 사람을 키운다

목숨 같은 밥 때 맞춰 주질 않고

갈 곳 많은데 진종일 묶어 두고

몸 한 번 깨끗이 닦아주지 않으면서

실수해 밥그릇이라도 엎으면 이때라는 듯

눌러 온 속마음 죄다 드러내

욕질 발길질 질질대는 주인더러

사는 게 그리 고달프냐

나라고 이해 못하겠냐며

세상 다 품을 눈빛 실어 보낸다

뼈 부수는 송곳니 잘 감추고

함부로 발톱 내밀지 않고

사랑 받을 생각 없이 제자리 지키며

뭉텡이 외로움 푸르르 털어내

차가운 골방도 포근하게 만드는

워리가

죽는 날까지 한 사람만 사랑하려면

배고픔도 쓸쓸함도 삭이며 사는 거라고

사람을 가르친다

개를 키우며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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