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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출처 : https://youtu.be/Mewy-1YQsrk
김형술, 몽골
말이 있다
어떤 이는 말의 눈을 사랑하고
어떤 이는 비단 같은 갈기
또 어떤 이는 말의 안장을
누군가는 말의 이빨을 찬양하고
또 누군가는 말의 재갈을 쓰다듬고
제각기 강철 말굽에 말굽 표식을 남기며
나는 말을 가졌네
나는 말하는 몸을 가졌네
노래하지만
세상의 마굿간은 텅 텅 빈 채
낡은 고삐엔 바람만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내가 방목한 말들
내가 사육한 말들의 무덤은
어디일까
어디에나 말은 있어
어떤 이는 말의 뼈를 찾아 헤매고
어떤 이는 말의 영혼을 꿈꾸고
또 어떤 이는 달아나버린 말의 그림자를
암벽에다 새기는데
이정록, 서시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이종섶, 물결무늬 손뼈 화석
쌀을 씻어 물을 부은 후
지그시 손바닥을 대어보는 아낙
손에 새겨진 눈금으로
물을 붓거나 덜어내는 것이다
표시가 없어도 읽을 수 있는 손에는
얕은 곳을 쟀던 손등부터 깊은 곳을 쟀던 손목까지
물결무늬가 한가득
시부모와 남편과 자식들을 뒷바라지 한 세월이
켜켜이 쌓여있는 중생대 지층이다
맨 위에서 발굴된 어미 공룡의 손뼈
손바닥 아래에는 아직까지 따뜻한
하얀 조약돌 몇 개
손등에는 여전히 일고 있는 포근한 잔물결
그 손으로 쌀을 안치면
뜨거운 밥물이 펄펄 넘쳐흘렀고
밥을 삼킬 때마다
목구멍의 눈금이 늘어나는 사람들은
그만큼 속이 깊어졌을 것이다
손현숙, 나사니까
마주오던 사람하고 살짝 한번 부딪쳤다
오래 쓰던 안경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쪽 다리 떨어진 안경
그만 버릴까, 주저하다 근처 안경점에 들렀다
안경점 남자는
이게 풀렸군요, 하면서
나사 하나를 돌려 박아 주었다
참, 간단하다
이렇게 감쪽같을 수도 있네요! 고개를 갸우뚱했더니
나사니까요, 한다
꼭꼭 조인 다음 보는 세상은
환했다
말짱했다
언제부터 너는 내게 천천히 등을 보이기 시작했다
풀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사니까
박하현, 개에게서 배우다
개가 사람을 키운다
목숨 같은 밥 때 맞춰 주질 않고
갈 곳 많은데 진종일 묶어 두고
몸 한 번 깨끗이 닦아주지 않으면서
실수해 밥그릇이라도 엎으면 이때라는 듯
눌러 온 속마음 죄다 드러내
욕질 발길질 질질대는 주인더러
사는 게 그리 고달프냐
나라고 이해 못하겠냐며
세상 다 품을 눈빛 실어 보낸다
뼈 부수는 송곳니 잘 감추고
함부로 발톱 내밀지 않고
사랑 받을 생각 없이 제자리 지키며
뭉텡이 외로움 푸르르 털어내
차가운 골방도 포근하게 만드는
개, 워리가
죽는 날까지 한 사람만 사랑하려면
배고픔도 쓸쓸함도 삭이며 사는 거라고
사람을 가르친다
나, 개를 키우며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