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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씨! 이번에도 꽝이네.”
“아빠. 그거 사기라니까요. 옛날엔 1등 당첨이 안 돼서 이월될 때도 많았는데, 지금은 열 명씩, 스무명씩 당첨되잖아요.”
“기분도 꿀꿀한데, 편의점에 맥주나 한잔하러 가자.”
아빠는 5년 전 경찰에서 퇴직하시고 사설 형사를 하신다. 평소 하루 종일 집에 계시다가, 일이 생기면 일하러 나가신다. 아빠의 유일한 낙은 매주 10개씩 사는 롯또이다. 10년째 하시면서 지금껏 가장 잘 된 것은 3등(약 백만원)이었다. 최근 1년간은 4등(5만원)도 한 번 안 됐다. 기분이 좋지 않으신지 편의점으로 향하는 길에서 말이 없으셨다.
“아저씨 코끼리 두 캔 주세요. 롯또 랜덤으로 10장도요.”
“아빠, 가끔 100% 보리 맥주도 먹어요.”
“롯또 4등 되는 날 먹자. 가성비는 코끼리가 최고지!”
편의점 앞 파라솔에서 아빠와 한잔했다. 아빠는 취기가 올라오면 항상 그때 이야기를 꺼낸다.
“3대 최상급 길몽이 뭔지 알아? 거북이, 돼지, 똥 꿈이야. 그런데 뭐? 무려 2가지가 등장한 꿈이었어. 돼지가 똥통에 빠지고, 똥통에서 산신령님이 나오더니 ‘이 돼지가 네 돼지냐?’라고 물으시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아닙니다. 제 돼지는 제주산 흑돼지입니다.’라고 했지. 그러니까 ‘고얀 것! 어디서 거짓말이냐! 번호 4개만 알려 주겠다.’
“벌써 30번도 넘게 들었어요.”
“가만있어 봐. 그 번호를 듣고 꿈에서 딱! 깨서 까먹을까 봐 재빨리 펜을 집어서 벽에다가 휘갈겼지. 그리고 그 번호로 롯또를 샀는데 번호 4개가 다 맞은 거야! 어찌나 짜릿하던지. 내가 이 맛에 롯또를 끊을 수가 없다. 그 때 내가 제주산 흑돼지라고 안하고 뭐라고 했어야 할까? 스페인산 이베리코 돼지? 아프리카 열병돼지? X까. 나한테 돼지가 어디 있어. 돼지 말고 코끼리나 한잔 하자. 코끼리 한 캔 더!”
그렇게 코끼리 사러 5번 들어갔다. 그렇다고 언제 가자고 하실지 모르니 한꺼번에 많이 살 수도 없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아빠는 소변이 급하다며 골목으로 들어갔다. 나 역시 주변에 누가 오지 않는지 망을 보러 따라 들어갔다.
“민준야. 이거 뭐지? 황제 만물상? 이런 가게가 있었나?”
“처음 보는데요. 들어가 볼까요?”
가게에는 옛날 물건이 가득했다. 금성TV, 다이얼 돌리는 전화기, LP플레이어, 자개장, 놋그릇, 보석, 장신구, 도자기 등. 언뜻 보기에는 싸구려로 보여서 누가 살까 싶었다.
“하하, 이거, 내가 젊을 때 많이 쓰던건데, 산에 갈 때 쓰면 좋겠다. 사자.”
“뭔데요?”
“휴대용 라디오. 투박하게 생겼지만 그 때만 해도 최신 제품이었다고. 아저씨 이거 얼마에요?”
“그거 3만원이야.”
“옛날 중고 라디오가 뭐 그렇게 비싸요?”
“사기 싫음 가.”
“민준아 3만원 있어?”
“3만원 밖에 없는데요?”
“일단, 내놔 봐.”
그렇게 아빠에게 3만원을 빼앗기고, 아빠는 뭐가 그렇게 좋으신지 옛날 이야기를 했다. 집에 도착해서 아빠와 나는 취기에 피곤해서 바로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빠, 이 라디오 이상해요. 아무 소리도 안 나는데요?”
“무슨 라디오?”
“아빠가 어제 제 돈으로 샀잖아요.”
“그런 적 없는데?”
“옛날엔 최신 제품이었다면서 저한테 3만원 빌려서 사셨잖아요.”
“그렇게 생긴 라디오는 평생 본적도 없어. 누가 미쳤다고 그런걸 3만원에 사?”
“아니라니까요. 억울해 죽겠네.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고.”
라디오를 틀어 보니 잡음만 나고 소리는 나지 않았다. 고장 난 라디오를 산 게 억울해서 어제 갔던 황제 만물상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 골목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근방 가게에 들어가서 물어 봤다.
“혹시 이 근방에 황제 만물상이라고 없었나요?”
“학생, 그런 게 어디 있어. 요새, 그것도 이 동네에서 만물상 가게가 장사가 되겠어?”
포기할 수 없었다. 내 손에 들려 있는 이 물건은 뭔데! 그렇게 10번쯤 물었을 때 한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응? 40년 전에 황제 만물상이라고 있었지. 사라진 지 30년도 넘었어.”
“네?”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내 손에 있는 이 라디오는 무엇일까? 집에 와서 틀어 놓고 주파수를 바꿔 봤다. 정확한 주파수를 찾기 위해 아주 섬세하게 다이얼을 움직였다. 10초에 1mm씩 움직인 것 같았다. 10분쯤 지나자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날씨는…(지지직)…강풍이…(찌직)…
#비가…합니다…(치지직)..
언뜻 듣기에 비가 온다고 하는 것 같았다. 휴대폰에 검색해 보니 지금 비가 오는 곳은 없었다. 어디에서 나온 소리일까?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그리고 다음 날 온종일 비가 내렸다. 라디오에서 다음날 날씨를 예보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다리는데 또 라디오에서 소리가 났다.
#백화점이…(치이)…33명이 숨졌…(치직)
무슨 소리지? 백화점에서 무슨 사고가 있었나? 무너진 것일까? 휴대폰을 검색해 봤지만 백화점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같은 시간 TV
#삼상 백화점이 무너져서 33명이 숨졌습니다. 아직 20명가량 실종됐는데요. 이대기 기자 연결하겠습니다.
진짜? 내 예상이 맞는지 궁금했다. 일정을 보니 내일 비슷한 시간에 한국과 일본의 국가대표 축구 준결승전이 있었다.
#한국….2:1로…꺾었...
다음날, 한국은 일본을 2:1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아빠! 아빠!!!”
“무슨 일이야?”
“이, 이 라디오로 미래를 알 수 있어요!”
“무슨 헛소리야. 그러면 3일 뒤에 있을 롯또 번호나 좀 알려줘 봐.”
맞다! 롯또! 롯또만 되면 구질구질한 삶에서 탈출할 수 있다. 연애도 하고, 차도 사고, 코끼리 대신 치맥으로 100% 보리맥주를 실컷 마실 것이다.
그래서 이틀간 하루 종일 라디오의 주파수에 대해 연구했다. 롯또 방송이 나오는 주파수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잡음 때문에 놓칠 수 있으니 녹음을 했다.
#행운의..43...세번…39…이은..16…다섯…12…21..28..35번..16번..보너스 볼…
쪽지에 숫자를 다 적어 보니 43, 39, 16, 5, 12, 21, 28, 35, 16이었다. 16이 두개인 것을 보면, 아마 마지막에 다시 번호를 부른 듯 했다. 겹치는 숫자를 빼고도 총 8개였다. 6개의 숫자에 1개는 보너스 숫자인데, 왜 8개일까? 일단 롯또를 사고 다음 날 방송을 들었다.
#첫번째 행운의 숫자, 무엇이 될까요? 32 두 번째 당첨 번호 확인해 볼 차례죠. 두 번째 숫자 3번입니다. 계속해서 세 번째 번호입니다. 33번. 32번 3번 33번에 이은 네 번째 행운의 번호 11번입니다. 두 숫자 남아 있는 상황이고요. 다섯 번째 행운의 숫자 21번, 마지막 여섯 번째 13번. 이어서 2등 보너스 볼도 추첨하겠습니다. 7번입니다.
숫자가 8개였던 것은 다섯 번째에서 ‘다섯’을 숫자로 적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라디오에서 알려 준 번호가 하나도 맞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싶었다.
“아빠, 뭔가 이상해요.”
“그래. 요새 네가 좀 이상한 것 같다.”
“아니에요. 같이 와서 들어봐요.”
“갈게. 기다려 봐.”
아빠가 내 방에 들어오자, 라디오를 틀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이 라디오는 다음날 같은 시각의 방송을 내보내 줘요. 지금 날씨 할 시간이니까 잘 들어 보세요.”
#오늘은.…비…추웠죠?...내일은…저기압의…곳곳에…”
“나한테 장난치는 거 아냐? 아까 TV에서는 내일 맑다고 했고, 지금은 여름인데 어떻게 추울 수가 있어?”
“내일 확인해 보세요. 저랑 3만원 내기하실래요?”
“좋아.”
다음날 실제로는 비가 왔고, 평소보다 10도가량 낮았다. 아빠는 우연이라며 다시 들어 보자고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아버지도 이 라디오의 신비한 힘을 믿게 되었다.
“여기 3만원. 그런데 롯또는 왜 틀린 거야?”
“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정말 사기 아닐까요? 금요일에 산 롯또가 1등이 가장 잘되는 것도 이상해요. 1등의 절반 가량은 내부자에게 미리 번호를 알려줄 수도 있잖아요. 금액의 일부를 나눠주는 조건으로요. 다른 요일에 하면 당첨자가 너무 많아질 수가 있으니, 금요일 당첨 1시간 전에 알려주는 것이지요.”
“알려 준다고 해도 원하는 공을 어떻게 빼내는데?”
“카지노의 룰렛에는 공에 자석을 사용한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비슷한 방법으로 공에 자석을 넣으면 되지 않을까요?”
이후에도 5번 넘게 롯또를 시도했지만, 한 번도 당첨되지 못했다. 그래서 대신 톳토를 했다. 톳토는 축구나 야구 등의 스포츠 경기에 승점을 맞추는 게임이다. 톳토에 한 번에 할 수 있는 금액이 십만 원이고, 내일 정보로 맞출 수 있는 경기가 많지 않아서 빠른 시간에 큰돈을 모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보다는 많이 벌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롯또가 사기라는 데에 충격을 받으셨는지, 이후에는 롯또를 사지 않으셨다. 대신 시간만 나면 롯또에 대해 조사하셨다. 전직 형사의 능력과 인맥을 활용해서 수사는 생각보다 빠르게 진척됐다.
수사가 시작된 지 한 달 후, 아버지가 집에 오지 않았다. 퇴직 이후에는 집에 항상 돌아오신 터라 걱정이 됐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라디오가 사라졌다. 아빠가 납치됐다는 확신이 들었다. 실종신고를 하고 아버지와 평소 친하게 지내던 경찰 분들께 연락을 했다. 롯또의 비밀에 대해 같이 수사하던 분들은 모두 연락이 닿지 않았다. 연락이 닿은 분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아빠를 찾기 위해 전 재산인 천만 원의 사례금을 걸었다. 그러자 아빠를 찾았다는 이야기가 들려 왔다. 5번을 찾아갔지만 모두 아니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남해안 근방에 닮은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이번에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나 때문에 시작된 일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6시간을 달려 도착할 즈음 멀리서 땅을 갈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아버지가 맞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선글라스를 쓴 사람들이 이 사람을 버리고 갔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 고문을 당한 것 같았어. 깡마른 데에다가 상처투성이였어. 차마 그냥 둘 수 없어서 내가 치료해줬어. 치료가 끝났지만 기억도 없고, 잘 걷지도, 말하지도 못했지. 그 이후로 그냥 같이 산 거야. 전화기도 없고 파출소가 멀어서 데리고 갈 생각을 못 했는데, 하루는 경찰이 방문했어. 그때 그 경찰이 실종된 사람 같다며 알려줬지.”
“아빠. 미안해요. 내가 그 라디오를 알려 드리지만 않았어도…”
아버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롯또의 비밀을 말하고 싶지만, 누구도 믿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내가 세상을 바꿀만한 힘도 없다. 그래도 혹시나 믿어 줄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외계인똥”이라는 가명을 만들어서 인터넷에 올렸다.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저녁 편의점에서 코끼리 맥주 5캔을 마셔 보는 것은 어떨까? 황제 만물상에서 좋은 물건을 찾을 수 있다면, 그 물건으로 롯또의 비밀을 파헤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