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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철, 물안개
강도 한 몸으로 평생 사는 것이 힘든가보다
겨드랑이에 날개 돋아
하늘을 날고 싶듯, 강물도
잠시
피어나서, 꽃이 되는 것을 해보는 것이다
이승에서도 몇 번의 윤회로 살았으면 좋겠다
강과 몸을 바꿔
내 굽이진 마음을 촉촉이 적셔서
흘러 보내고 싶다
젊어서는 노인의 사랑으로
늙어서는 청년의 그리움으로 바꿔 살아봤으면 좋겠다
강은 산을 거슬러 올라가 산정호수를 만들고
나는 신이 되어
모든 기도를 하루 쯤 들어주고 싶다
살아서 몇 번의 윤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잠시
내가 그대가 되고
그대가 내가 되어 살아보고 싶다
끊김 없이
물안개 같이 피었다가
다시 흘러가는
신미균, 납작한 공간
아주 두꺼운 책 밑에
바퀴벌레 한 마리 깔렸다
얼마나 버둥거리는지
책이 조금씩 들썩들썩한다
한참 동안 버둥거리다가 잠잠하더니
또 한참을 버둥거린다
버둥거린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표시
죽기 살기로 버둥대다보면
가끔은, 지긋지긋하게 짓누르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는가 보다
두꺼운 책 밑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바퀴벌레
진저리치며 사라진다
황학주, 지상
여기는 이상하다 이상하게
한 사람씩 온다
다시 올 일 있을까 싶다
나란히 신발 벗을 때는
모르지만
이상하다 이상하게
한 사람씩 나간다
모텔 같다
여기는 물감냄새가 난다는 게 문제지
사랑만 필요했던
연인들이
믿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
시간의 종업원이 똑똑똑 노크를 하거나
전화벨을 울려주기까지 하는 곳
슬픈 것은 사랑을 보는 모텔 주인의 생각이며
거기서 나온 인테리어 솜씨일 뿐
이상하고 또 이상해도
여기서 서화를 그릴 수밖에 없다
어느 날 나는 가고
당신은 오는 것을 잊는다 해도
김영철, 장터
비 내리는 날이면 번갈아 찾아드는
빈대떡
도토리묵
산나물
산 오징어
우리 집 사랑방에는
사람 냄새 그득하다
자네 요즘 어떤가
내 술 한 잔 받게나
사는 게 다 그렇지
자네도 한잔하게
축축한 사는 이야기
가슴마다 수북하다
양균원, 종소리
그친 비가 다시 오지 않는다
산사의 망중한은 여기까지
처마 밑 나서려는데
들리나요, 수국 꽃잎에 잠기는 저녁 어스름
갈참나무 떠난 깃털 족속의 날갯짓
배후나 언저리에서
아주 사소하게 일어나는 파동
들리나요, 종이 없는데 종소리를 내는 것
젖고 싶은 마음에 물이 빠지면
소란했던 빗소리 뒤로 정적이 따라오면
잠깐 살아나는 것
들리나요, 바람에 부대끼는 내가
훌쩍 날아가도 털썩 내려앉아도
여전히 남은 잎으로 떨고 있는 떡갈나무
숭숭 뚫린 수천 벌레 구멍에서
빗소리 그치자 으스스 떨고 있는
금간 종소리
들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