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자작허접역사소설 - 도산성의 겨울(제13장 조선의 반격 下)
게시물ID : history_180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앗카링카앗
추천 : 2
조회수 : 64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9/12 21:47:03
허허. 아비규환이 따로 없구먼.”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이운룡은 흰 연기와 불길이 치솟는 도산성을 보면서 혀를 찼다. 그는 태화강 한가운데에 위치한 대장선의 망루에서 경상좌수군을 지휘하고 있었다.
 
인간 만사 새옹지마라고 하더니만.
 
좌수사는 불타는 육지와는 상관없이 고요한 강물을 바라보며 사념에 빠져들었다.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이운룡. 그는 1562년 경북 청도에서 출생했다. 1585년 무과에 급제한 그는 1587년의 녹둔도 전투의 결과로 당시 조산만호였던 이순신과 함께 백의종군하게 된다. 이후 복직되어 1589년 옥포만호로 부임하게 된다.
임진왜란 발발 직후 경상우도 수군절도사였던 원균이 병선을 모조리 자침시키고 적전 도주하려 하자 이를 만류하고 이순신의 전라좌수군과 연합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이운룡은 15922월의 옥포해전에서 선봉장으로 나서 적선 50여 척을 분멸하는데 기여했고, 한산도 해전에서도 옥포만호로 재직하면서 익힌 물길로 왜 수군유인하는 데 일조했.
1593년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 오르자 그를 눈여겨보던 통상은 1596년 이운룡을 경상 좌수사로 천거한다. 그러나 일 년 후 통제사가 누명을 쓰고 한양으로 압송되고, 이순신과 사사건건 반목하던 충청병사 원균이 한산도 통제영의 주인이 되었다. 이순신의 사람이었던 그 또한 경상좌수사 직을 내려놓고 육지로 전출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15977월에 있었던 칠천량 패전으로 인해 조선 수군의 주요 지휘관들이 대부분 수장된 것이다. 물 밖에 있었던 그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으며, 아울러 다시 돌아온 통상과 함께 조선 수군을 재건하는데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울산성 전투에 이르러 그는 경상좌수사로 복직되었고, 그의 임무는 서생포 왜성에서 수로로 올라오는 적군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수사영감. 피곤하십니까?”
 
이운룡은 함께 있던 부장의 질문으로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오래간만에 자신의 인생역정을 회고하고 있던 터라 경상 좌수사는 벌컥 화가 났다.
 
그래. 피곤하다. 피곤해. 네놈들이 굼뜨게 움직이는 바람에 나만 경리한테 수모를 당해서 피곤하다고.”
 
헤헤. 지난 일이오니 괘념치 마십시오.”
 
어이쿠. 속 터져 웃는 얼굴에 침도 못 뱉겠고. 이거 .”
 
이운룡은 신소리를 늘어놓는 부관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건의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통상은 경상좌수사가 울산으로 지원 나갈 때 그의 신묘한 병참능력으로 군선과 병장기 그리고 군량을 정확히 맞추어 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군졸들이 통제사에게서 떠나는 것을 주저했다. 명량대첩 이후 병사들에게 이순신은 구국의 명장이 아닌 군신의 반열에 오른 상태였다. 결국, 이 난제도 통제사가 해결해 주었다. 그가 칼을 빼 들자 군사들은 군말 없이 배에 올랐다. 그런 실랑이 끝에 그는 공성이 시작되고 나서야 태화강에 도착했고, 그사이 가등청정이 왜성으로 쏙 들어가 버린 것이다.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인생사에는 언제나 반전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공성 첫날에 좌수군의 총병들이 활약을 해주어 면이 섰으니 이제 공만 세우면 된다 이거야.’
 
자신도 모르게 웃음 띤 얼굴로 변하던 그에게 부장이 소리쳤다.
 
장군. 왜적이 나타났습니다.”
 
부관의 다급한 목소리에 고개를 뻗어 태화강 하구 쪽을 바라보니 적의 왜선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강 가운데 수심이 깊은 곳에 중선이 20여 척이고 가장자리에는 소선 10여 척 이군.”
 
그가 전방의 왜선의 수를 어림짐작하자 대장선의 군졸들은 이운룡의 명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좌수사는 그에게 쏠리는 시선들을 향해 일갈했다.
 
겁먹을 거 없다. 어제도 강가의 명군이 쏜 화포소리에 모양 빠지게 내뺀 왜군이 아니냐. 하하
 
하오나.
 
부장이 대장선의 그들을 대신해 말을 꺼냈다.
 
그래도. 만사가 불여튼튼이라 했으니, 대비는 해야겠지. 주위의 판옥선과 방선(판옥선보다 작은 중간 크기의 군선)병선(방선보다 작은 크기의 배)들에 일자진을 펼치고 화포를 장전하라 명하라.”
 
알겠사옵니다. 기패관은 기를 올려 신호를 보내라. 사공은 배를 돌리고. 어이 거기 화포장은 뭐하는가. 어서 빨리 장전을 완료하라는 분부 시.”
 
부관이 신이 나서 큰소리로 경상 좌수사의 지엄한 군령을 전했다. 그때였다.
 
 
전날과 같이 도산성 주변 강가에 주둔 중인 명군 포대에서 포성이 울렸다. 태화강의 왜 수군을 쫓을 요량이었다.
 
 
왜 군선에서 작은 불꽃과 연기가 피어올랐다. 왜군들이 함포로 강기슭의 명군에 반격한 것이. 물론 작은 탄환은 명의 포대 근처에 가지도 못하고 쓸데없는 물보라만 일으켰다.
 
좌수사 영감. 저놈들 화포를 가지고 왔는뎁쇼?”
 
부장이 호들갑을 떨며 접근하는 왜선들을 보려 눈을 조렸다. 분명 왜선의 난간에 설치된 것은 시커먼 화포였다.
 
 
임진왜란기에 왜군은 대포를 운용하지 않았다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왜군은 전국시대에서도 화포를 사용했다. 그 최초의 기록은 156036일 오오토모 요시시게가 그의 주군인 아시카가 요시테루로부터 석화시병증자도통의 증여에 관한 문서를 받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오오토모 가문은 이후 포르투갈 상인들에게 지속해서 서양식 대포를 구입하기 위해 애를 썼다. 결국, 이들1578년 자신들의 손으로 화포를 제작하는 데 성공한. 이후 1580년부터 오오토모 가문은 오다 노부나가에게 그들이 만든 화포와 서양에서 수입한 대포를 넘겨주었다.
오다는 이 화포들을 공성전과 방어전에 적절히 활용했다. 대표적인 전국시대에 일어난 오사카 동계전투가 있다. 그 밖에도 모리군이 농성 중인 아미고군을 공격할 때 받침대가 없는 대철포를 성루에 발사하여 순식간에 기둥을 파괴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훗날 그곳에서 500 몬 메(1.88kg) 짜리 포탄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후. 오다의 전술을 이어받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또한 화포를 전장에서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는 조선침공을 준비하면서 하리마의 주물사에게 대포제작을 명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 화포들은 수전에서도 제한적으로 활용되었는데, 15853월 사이카 수전에서 고니시 유키나가 군이 호수에 배를 띄워 선상에서 성을 향해 포를 발사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렇다면 왜군은 임진왜란 중에 화포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을 것일까? 역사가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고 있으나, 크게 보자면 당시 왜군의 화포운송능력의 부제에 그 원인이 있다. 이글의 제7장에서도 밝혔듯이 그 시절 왜국의 말은 군마로써 부적합했다. 특히 수송마로서의 힘이 떨어졌다. 동시대의 유럽의 군마 세 마리가 소포를 끌고 열 마리가 대포를 견인하였지만, 왜국에서는 도쿠가와 막부 말기까지도 인력으로 포를 이동했다.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말이 포를 수송하기 시작한 것은 서양 군마와 장륜식 포가가 도입된 메이지 시대였.
이와 달리 조선과 명국은 대규모로 화포를 운영하였는데 15931월 평양성 전투에서는 투석기와 대포를 대량으로 운용하여 조총으로 대응한 고니시 유키나가를 몰아내고 성을 탈환하게 된다. 양군은 질 좋은 군마와 우마차를 이용하여 수많은 포탄을 왜적에게 선사했다.
 
 
적이 아 군선 쪽으로 곧장 돌격해 옵니다. 장군
 
 
부장이 손가락으로 앞의 적선을 가리켰다. 왜선이 빠르게 물살을 헤치며 첨자 모양으로 경상 좌수군이 펼친 일자진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적들은 전방에 설치된 포를 장전하러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 지자총통의 사거리입니다. 어떡할갑쇼?”
 
기다려라.”
 
하지만. 적이 먼저 방포하기라도 하면 아군이 다칠 수도.”
 
어허. 네놈은 수군 군관이 되어서 불랑기포도 모르느냐?”
이운룡은 버럭 역정을 내고는 전방의 적을 주시했다.
 
불랑기포. 여기서 불랑기는 프랑크인을 음차한 한자어이다. 불랑기는 원래 유럽의 지중해서 주로 쓰던 후장식 포의 일종으로 터키를 거쳐 중국와 조선에 전래하였고, 왜국의 경우에는 포르투갈 상인들에게서 포를 입수했다. 당시 일일이 장약과 탄환을 장전해야 했던 전장식 포와 달리 화약을 탑재한 다수의 자포를 모포에 끼워 넣어 연사속도를 비약적으로 향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불랑기포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으악
 
대장군선을 조준하여 발사하려던 왜적의 배에서 포가 폭발해 버렸다. 옆에 있던 왜군 포수는 곡소리를 한번 내고선 강으로 빠졌다. 다른 군선에서 쏜 탄환들도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애꿎은 물보라만 일으켰다.
 
보았느냐? 저것이 작금의 불랑기포가 보여주는 한계이니라. 자포와 모포의 결합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으면 포안의 장약이 새어 폭발하거나 방포가 되더라도 화약의 힘이 모자포 사이의 틈으로 빠져버려 멀리 나아가지 못한다. 왜적놈들의 덜떨어진 주조기술로는 불랑기는 무리다.”
 
경상 좌수사는 강의를 끝내고선 부장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 하수들에게 한 수 접어주었으니, 다음으로 고수의 가르침을 전수해 볼까? 전방의 적선에 초탄을 방포하라. 후속은 조란탄을 먹여주도록. 흐흐
 
펑펑펑
 
일자진을 펼친 판옥선에서 우렛소리가 울리고 탄환이 발사됐다. 이 둥근 물체는 왜선 곳곳에 떨어져 왜선에 혼구녕을 내어주었다.
 
배를 돌려라!”
 
좌수사가 대장선에서 명령하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판옥선들이 제자리에서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불벼락을 적에게 안겨 주었다.
 
꽝꽝꽝
 
선봉에 선 왜선이 강물 속으침몰하기 시작했. 그 주위의 다른 군선 십여 척도 여러 곳이 깨어지고 부서져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후미에 따라오던 왜선들이 주춤하며 배를 돌리기 시작했다. 조선 수군의 완벽한 승리였다.
 
장군. 이겼습니다. 하하.”
 
그와 함께 망루에서 적선의 분멸을 지켜본 부장이 신이나 소리를 질렀다.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이운룡도 덩달아 큰소리로 외쳤다.
 
보았느냐? 나 이운룡은 원균과는 다르다! 원균과는.
 
좌수사 입에서 원균 소리가 나오자, 좌중이 조용해졌다. 이운룡은 분위기가 썰렁해지자 되려 목청껏 소리쳤다.
 
에잇. 통제사 이순신 장군 천세!”
 
천세!”
 
그가 이순신을 외치자. 대장선과 군선들에서 통제사를 연호하는 소리가 연신 태화강변을 진동시켰다.
 
조선 수군 천세!”
 
천세!”
 
경상좌도 수군 천세!”
 
천세 천세 천천세!”
 
기뻐하는 수군들의 얼굴에 태화강의 낙조가 발갛게 물들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날이 저문 것은 아니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