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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출처 : https://youtu.be/4t9lPcu1k9U
전영관, 곁
담쟁이가 싫었다
무엇이든 엉망으로 휘감는 넝쿨식물이 싫었다
곁을 둔다는 말
곁은 조금 떨어진다는 말
시든 풀포기를 심어도 되살아 오를 것 같고
차 한 잔 놓아두고 싶은 곳
반쯤이나 손을 내밀면 닿을 거리
담쟁이가 겁쟁이라는 걸 알겠다
얼마간 곁조차 두려워 손을 잡고서야 안심하는
누군가의 허리를 꽉 붙들어야 바로 서는
담쟁이의 속내를 알겠다
전선까지 한 뼘 남았는데
물기를 잃고 허공에 멈춰버림 조막손을 보았다
11월 바람은 보이지 않는데도 떨고 있었다
배한봉, 먹통
전깃불을 끈다
깜깜해지는 것은 틀림없는 일
안경을 쓴 사람도, 안경을 쓰지 않는 시력 좋은 사람도
사방 깜깜해지는 것은 틀림없는 일
불을 끄면
먹통으로 변하는 세계
날개를 달고 독수리 부리처럼 세계를 쪼던 소문도
먹통이 되는 것은 틀림없는 일
피곤과 고뇌와 두통의 스위치를 끈다
질끈 감은 눈꺼풀 속
동공도 먹통이 되는 것은 틀림없는 일
꺼도 꺼지지 않는 너를
먹통 속으로 밀어 넣을수록
깜깜할수록 샛별처럼 빛의 뿌리를 뻗는
생각의 숯검댕이 아궁이
불룩하게 팽창한 생각의 빛이 푸르스름 새나오는 먹통
문동만, 그네
아직 누군가의 몸이 떠나지 않는 그네
그 반동 그대로 앉는다
그 사람처럼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의 중심은 흔들림
흔들림이야말로 결연한 사유의 진동
누군가 먼저 흔들렸으므로
만졌던 쇠줄조차 따뜻하다
별빛도 흔들리며 곧은 것이다 여기 오는 동안
무한대의 굴절과 저항을 견디며
그렇게 흔들렸던 세월
흔들리며 발열하는 사랑
아직 누군가의 몸이 떠나지 않은 그네
누군가의 몸이 다시 앓을 그네
박방희, 사막
모래만 사막이 되는 게 아니지러
사람 사는 세상도 사막이 될 수 있지라
그 속에
오아시스를
품고 있지 않으면
강희근, 안시리움
화분을 들어 옮기는데
올라온 꽃 송이가 그의 이마로 내 목을 쓰윽
밀고 있다
성냥개비다 잠자던 감각의 끝에 블똥이 튄다
침묵하던 영혼의 감실에
불을 켤 수 있겠다
꽃은 무슨
이번에는 말없이 길게 내민 그의 이파리들
손수건 반만한 이파리들
내 수염 솟아 있는 볼 한 쪽으로 쓰윽 문지르고 있다
성냥갑 채로, 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