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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칠종칠금(4) 그들의 선택
게시물ID : history_87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볼버오셀롯
추천 : 3
조회수 : 49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5/04 16:45:25

PGR 21의 후추통님이 쓰신 글입니다.

 

익주별가 장송이 익주 관내 사람인지 아니면 익주의 바깥에서 살다가 난을 피해 들어온 익주 외부 사람인지에 대한 언급은 정사 전체에 없습니다만, 법정과 맹달은 익주 외부 사람인 것을 알려주는 대목이 법정전에 있습니다. 법정은 부풍군 미현 사람이고, 맹달은 법정과 동향 출신이라고 나와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서로 친해진 계기에 대한 것 역시 없습니다만 서로의 재능에 대해서 잘 알기 때문에 친해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왕래하면서 유장은 익주를 관리할 능력이 안된다는 판단도 공유한게 아닐까...생각합니다.

실제로 유언, 유장 부자가 지배하던 익주는 이미 내부적으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익주 관내의 토착호족, 익주 주민과 유장과 동주병으로 대표되는 외지인들의 갈등은 항상 익주 호족들의 반발로 인한 유장에 대한 무력항쟁으로 이어졌고, 기존에 외지인들에 의해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받았던 호족과 익주 선주민들 역시도 이 반란에 매번 동참했습니다. 하지만 유장은같은 외지인들로 구성된 사병집단으로 이들을 찍어눌렀고, 그 반발이 일시적으로 잠재워 진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억지로 눌러버린 익주 호족의 반발은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거기다 동주병 자체의 문제도 있던 것이, 동주병들은 유장의 사병집단이긴 했지만 익주의 주군병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종교 집단의 병사들인 한중군에게 매번 지기만 하다가 결국 지형에 의지에 지키기만 한 것을 보면 이들의 전투력은 별 것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장송과 법정은 이제 더 이상 유장에게 익주를 맡겨 둘 경우 파멸로 이를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이 익주를 바칠만한 주군을 찾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조조의 경우 중앙집권에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추진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황제에게 권력을 집중에 후한을 되살리겠다는 것이 아닌, 집중된 권력은 후한 조정의 실질적 권력자인 자신에게 집중시키겠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죠. 따라서 각 지방의 호족들은 조조에게 흡수당하거나 또는 숙청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그 예가 원술의 부하 출신인 뇌박과 진란, 그리고 이후 유비에게 투항한 뇌서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도적출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유복전에 보면 뇌박과 진란이 수하에 회하와 장강 유역의 무리 수만을 모았다는 점을 보면 이들이 관내의 군벌 혹은 호족으로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당시 원소와 대치중이던 조조는 군사력을 돌릴수가 없어서 유복을 보내 이들을 회유하는 정책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이후 원소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자 하후연을 보내서 이들을 쓸어버립니다. 조조가 익주를 차지할 경우 유장 이상으로 익주 호족들이 반발할 것은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그리고 명목상이나마 전한의 발원지인 익주 역시 일견 상으로 한실의 역적으로 보이는 조조에 굴복한다고 할수도 없었으며, 또한 서북방의 마초, 한수등을 비롯한 서북방의 군벌 호족들 역시 조조의 익주 점유를 어떠한 방식으로 볼지는 눈에 보듯 선했습니다.(조조는 이후 종요를 보내 장로를 정벌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군사행동은 장로가 아닌 마초와 한수 등 양주 군벌들에게 조조가 실제로 노리는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해 조조에 대해 반란을 일으킬 정도로 위협적인 상황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조가 익주를 낼름 삼킨다면? 마초가 이후 양주, 익주에 가진 영향력을 감안한다면-유장은 마초가 항복했다는 말을 듣고 바로 유비에게 항복했을 정도로, 양과 익주에 대한 영향력은 유장 이상이었습니다. 왜냐면, 마초는 양주를 지키면서 강족을 위압하고 있었고, 이러한 강족은 양주 뿐만 아니라 익주에도 관련되어 있어 익주에도 은근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따라서 익주는 양주 군벌 대 조조라는 전쟁터가 될 지 몰랐습니다. 거기다가 이러한 양주 군벌들을 익주 호족들이 지원한다면 익주는 완벽한 피바다가 될 것이었죠.

손권의 경우는 외부에서 유입해온 인사들이 위협을 느낄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의 경우 손권이 그 주인으로서 행세하고 있었지만, 이미 손책이 오군 일대를 평정할때, 대호족 뿐만 아니라 중소호족, 그리고 산월 출신 호족들이 오군 일대에 넓게 퍼져 살고 있었습니다.(이른바 오의 사성이라고 하는 고씨, 육씨, 주씨, 장씨를 말하는 것으로 고옹, 육항, 주환, 장온이 대표적 인물들이었습니다.) 손책의 경우 이러한 호족들을 전무 무력으로 정리할 만큼의 군사력이 없었고, 이들 중 그에게 반항하는 이들은 군사력으로 정리하고, 반항하지 않는 호족들은 끌어들이기도 했습니다.(유요,왕랑의 경우 호족이기 보다는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관리였고, 우리 오덕왕님은 도적출신으로 보기보단 산월 출신의 호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이러한 호족 연합체적 성격의 오라는 국가 성격상, 손권이 촉으로 군사행동을 하기란 불가능했습니다.(군사적 명령체제가 이원적 명령체제하의 오군입장은 수비라면 몰라도 공격적 측면에서는 이는 크게 불리했고, 지금까지 오가 벌였던 전쟁 중에 방어적 성격이 적벽, 이릉, 유수구 전투 등에서는 오가 상대방을 쳐발랐지만 공격인 합비전투같은 경우 쳐 발리는 점은 결국 예상된 거였죠. 물론 합비 전투는 장료 포스가 세기도 했습니다만.)

남은 한명은 바로 유비였습니다. 유비의 경우 장기간에 걸친 조조와의 투쟁으로 인해 그 가신들의 결집력이 뛰어났고, 전투 경험역시 풍부해 유장군과는 비교가 되질 않은 데다가, 지금까지 유랑군 출신으로 남의 객장을 전전했었고, 거기다가 한실의 후예라는 점은 익주 호족의 반발을 사지 않았으며, 그들 중 익주 출신이 없었기 때문에 익주의 외부 인사들에 대한 배척이 없을 확률이 컸습니다. 이후로도 유비가 익주를 장악한 이후에도 유비에 대한 반란은 거의 없었습니다.(한중전 동안 도적놈들이 장난 치거나 다른 인간들이 장난 친 적은 있었지만요.)

결국 유비를 선택하고 그를 전적으로 지지한 장송,법정,맹달. 그들은 익주를 유비에게 넘겨주기로 결정했고, 법정은 아예 유비에게 충성을 바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유비가 약속된 땅, 익주로 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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