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실 귀신이랑 척을 지고 사는 사람이에요. 귀신을 직접 본적도 들은적도 없어서ㅎㅎ 하지만 제가 영적인 존재가 있긴 있구나 하고 깨달았던 사건이 하나 있어요.
고등학생 시절이었어요. 저희 엄마의 친구분이 저랑 비슷한 나이대의 딸이랑 둘이서 사셨거든요. 그런데 친구분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월세 놓던 집을 친구분께 물려주고 가셨어요.
그 집은 친구분껜 아주 특별한 곳이었어요. 친구분 아버님 사업이 망하고 어머니랑 아버지가 엄청 고생고생 하면서 25년 만에 마련한 집이었거든요. 마침 친구분과 그 따님이 사시던 집의 전세 계약이 끝났고, 유산으로 받은 집의 세입자도 이사를 간다고 했어요. 그래서 친구분이 따님이랑 그 집으로 들어갔어요.
저희 가족은 그 때 해외유학 중이었어요. 어느 날 겨울방학 때 저랑 엄마만 한국에 잠깐 왔는데, 그때 그 친구분이 집에 와서 자고 가라고 초대를 해서 자고 갔습니다.
저랑 따님은 작은방에서, 엄마랑 친구분은 큰 방에서 잤어요. 일어나 보니 따님은 큰 방에서 주무시고 계시고 저는 그 방에 혼자 있던게 기억이 나요. 그 외에 이상한건 하나도 못 느꼈어요.
근데... 엄마랑 친구분이 갑자기 크게 싸우더니 엄마가 저를 데리고 집을 무작정 나가버렸어요.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물어도 대답도 안하고ㅠ 그 일은 그렇게 제 기억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그리고 저 대학 신입생 때 제가 그때 엄마 왜 화내고 나갔냐고 다시 물어봤거든요. 엄마의 대답이...
그 집 말이에요. 이상하게 따님 방에서 누가 자기만 하면 가위에 눌리는 겁니다. 방 벽에는 계속 곰팡이가 피고 누린내가 났대요. 발자국 소리가 나기도 하고요.
온갖 방법을 다 써봐도 상황이 안 나아지니까 결국 퇴마사 무당을 불렀다고 합니다. 무당이 내놓은 해결책이란, 딸이랑 비슷한 나이의 여자애를 그 방에서 재우는 것이었대요. 그럼 방에 들린 귀신이 집을 잘못 찾아온 줄 알고 떠난다고요. 대신 여자애는 아주 건강하고 기가 세야 한다고 했대요. (이게 제대로 된 해결책인진 저도 모르겠습니다. 큰일날 수 있으니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친구분은 그때 딱 제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저희 엄마가 옛날에 "울 작은딸은 기가 센지 가위도 한 번 안눌려~"라고 했던게 기억이 난거에요.
그래서 주도면밀하게 준비를 했답니다. 저랑 엄마가 한국 와서 그 친구분 집에 간 날 낮에 엄마랑 용한 점집이 있다고 거기 같이 갔대요. 퇴마사 분이 아는 사람이 하는 점집이었죠..ㅎ 거기서 제 기가 충분히 세다는 답변을 듣고 저를 그 방에 재운거에요. 따님 보고는 같이 자는 척 하다가 저 자면 나오라고 하고요.
그렇게 하고 저희 엄마한테 아침에 사실대로 털어놨어요. 솔직히 엄마는 초현실 그런거 잘 안믿어서 당황하고 있었는데, 그 방을 보니 어제까지 있던 곰팡이가 하룻밤만에 싹 사라진걸 보고 상황의 심각성을 느꼈대요.
하마터면 제가 잘못될 수도 있는 상황이잖아요? 제가 대신 귀신에 쓰인다던지... 화가 난 엄마는 그래서 집을 나오고 다시는 그 친구분과 연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신기하게 저는 누린내도 못 느꼈고 곰팡이는 기억나지 않아요. 가위도 안눌렸고요. 내가 모르는 사이 뭔가 영적인 일이 일어나긴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엄청 무서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