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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이
게시물ID : panic_877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gerrard
추천 : 38
조회수 : 2685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6/05/07 21:4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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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나는 한참 롤플레잉 게임에 빠져 있었지.

게임 이름은 아이온.
 
 
리니지 다음으로 많은 폐인을 양상했다는 게임 아이온.

게임의 게자도 모르던 내가 어쩌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것이 내 꽃같은 청춘 3년을 바치게 될 줄이야.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발가락으로 컴퓨터 부터 켜놓고 게임을 하면서 저녁 식사를 했지.

지금 생각해보면 퇴근 후에는 몸도 피곤했을텐데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새벽 늦게까지.. 

그러니까 하루 평균 4시간 정도 게임에 투자를 했던 것 같아.
 
 
아이온이라는 게임은 여러 사람과 공동으로 파티를 맺어서 인던을 공략하는 게 일상 생활인지라 레기온(길드: 친목단체)이 없으면 게임을 하는 것이 조금 귀찮아진단 말야.
 
게임 안에서도 조금 모자란 티를 내면서 어버버버버 찌질이 진상캐릭으로 거듭나고 있었는데 말야

운이 좋게, 나를 받아주는 레기온을 만나게 되었고 사람들을 도움을 받아 나는 더욱 훌륭한 아이온 폐인으로 성장하게 되었지.
 
 
그래서 레기온에 가입한 후부터는 게임에 접속하면 필수적으로 엔씨톡이나 게임톡 같은 음성채팅방에 들어가서 헤드셋을 끼고 하루종일 같이 수다를 떠는 게 일이었어.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생판 남들이랑 친한척 오빠오빠 거리며 수다를 떠는 게 처음엔 어색했지만

모든 게 처음이 어려운 법.

하루이틀,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자 서로의 출퇴근 시간과 동선을 모두 꿰뚫는 진정한 죽돌이 죽순이의 인생을 살게 되었지.
 
 
ㅇ_ㅇ 미안 설명이 길었지.

암튼. 그렇게 게임폐인 생활을 이어가던 중.

어느 여름이었던 것 같아.
 
 
주말이었나.

하루종일 게임을 하니까 그것도 질릴 때가 되었는지 사람들이 엄청 무료해하는 타이밍이 온 거야.

그래서 뭐 재미있는거 없나, 이러면서 진부한 대화를 이끌어 가던 중 누군가가 귀신이야기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군.
 
 
사실, 귀신이야기라는 말이 나오자 나는 물만난 고기처럼, 신이 나서 입이 근질근질 거렸으나

당시 한참 이상한 일을 겪고 있던 때라 (김정호 좋아하는 귀신, 도깨비 꿈 등등) 입 잘못 놀리면 이상한 애 취급을 받진 않을까 심히 스스로가 걱정이 되어 갈등을 하고 있었어.
 

그런데. 우리 레기온에서 나이가 가장 많던 영감님 한 분이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 내가 이야기 하나 해줄끄나 "

하고 운을 띄우는 게 아니겠엉.
 
 
그 영감님을 짧게 소개하자면

그 당시 나이 쉰살.

우리 레기온 최고령자 어른이었고 가진 건 현금 뿐인지라 원하는 아이템이 있으면 무조건 현금거래로 턱턱 사버리는 일종의 아이온계의 귀족이었다고 할까.
 
 
하지만 게임 컨트롤은 완전 젬병인지라 어디 인던이나 같이 돌려면 우리가 앞에서 뒤에서 똥차처럼 끌어줘야 하는 ㅜㅜ 회사의 부장님 같은 존재였어.
 
하지만 항상 넉살좋게 동생들아, 나좀 도와주렴~ 하며 들이대는 그 분이 왠지 싫지는 않아서 그냥 정신적인 지주이자 물주로 모시던 영감님이었지.
 
 
그런 그 분이 갑자기 귀신이야기를 들려준다니 모두들 처음엔

" 아... 또 뭔 썰렁한 이야기를 하려고 저러실까 "

하는 눈치였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우리는 점점 빠져들 수밖에 없었어.
 
 
그 이야기는 영감님의 가족사에 관련된 이야기였어.

자꾸 영감님이라고 부르면 헷갈리니까 영감 = 춘기오빠라고 할께.


춘기오빠에겐 누나가 세 분 있었다고 해.

그러니까 딸. 딸. 딸. 아들 하나.

그 중의 막내 아들이 바로 춘기오빠인 거지.

아버지는 시골 공무원이셨고 어머니는 평범한 주부셨다고 해.
 

그런데 그저 평범한 집안이 아닌 것이 아버지나 어머니께서 양쪽 집안에서 물려받은 땅뙈기며, 선산이 있어서 집이 제법 풍족했다고 해.
 
그래서 남부러울 것 없이 아부지 어머니 품에서 4남매는 행복하고 여유로운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거야.

그런데 항상 불행은 가장 행복한 순간을 비집고 들어온다잖어.
 
 
춘기오빠가 유치원에 다닐즈음 어머니가 암에 걸려서 몸져 눕게 되었다는 거야.

백방으로 용한 병원을 수소문해서 진료를 받아 보았지만 그 당시 의료기술로는 고칠 수가 없어서 하루하루 어머니가 야위어가는 모습만 지켜볼 뿐이었다고 해.

그 당시 춘기오빠는 매우 어린 나이였지만 가장 큰누나는 당시 초등학교를 졸업할 즘의 제법 머리가 굵어가는 나이였기에 기특하게도 엄마의 병수발을 모두 들면서도 집안일도 하고, 어린 동생들도 살뜰하게 챙기면서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갔었다는 거야.
 
 
그렇게 엄마의 병치례가 길어지다가 정확히 1년 정도가 지나자

엄마는 결국 돌아가시게 되었대.

졸지에 4남매를 건사해야 하는 홀아비가 된 아버지 심정은 오죽했겠어.

어머니가 돌아가신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할머니는 홀아버지가 될 자식 걱정이 먼저였는지 자꾸 재취자리를 권하면서 어서 빨리 후처를 들이라고 종용했다는 거야.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 헐... 완전... 그 할머니 뭐야... 짜증 " 

이런 말이 절로 튀어나왔지.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린 자식들이 4명이나 되고 한참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때이기에 고지식한 옛날 분들은 가정부를 들이느니 차라리 새장가를 들이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이지.
 
 
그런데 생각해 봐

아무리 돈 많은 부잣집이래도 애가 넷이나 딸린 집으로 누가 처녀장가를 오겠냔 말야.

선자리로 들어오는 여자들은 대게 애가 하나, 둘 딸린 과부들이었지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자식들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할머니와 아버지는 새엄마를 집에 들이게 된 거야.
 
 
그런데 그때부터 웬일인지 지고지순하던 큰누나가 왔다 장보리의 주인공 연민정을 능가하는 어마어마한 악녀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거야.

큰누나부터 춘기오빠까지 모두 2살 터울이 졌다고 해.

그러니까 춘기오빠가 7살이면, 그 위 누나는 9살. 그 위 누나는 11살, 큰 누나는 13이 되었겠네.
 

고작 13살된 꼬마 아가씨가 어느날은 동생들을 방에 모아놓고

 
" 너희들. 이 집에서 죽고 싶지 않으면 언니 말 잘 들어야 해.

 엄마가 돌아가시전에 뭐라고 했어?

 큰언니가 곧 엄마라고 했지?

 앞으로 누가 뭐래도 언니가 시키는대로 하란 말이야.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언니는 쥐약먹고 콱 죽어버릴테야 "


하면서 수시로 어린 동생들 겁을 주더래.
 
 
새엄마는 사실 무척 평범하고 착한 사람이었다고 해.

딸만 둘인 옆동네 과부였는데, 돌아가신 어머니 유품을 정갈하게 닦아서 그대로 보관해 놓을 줄도 알고

함부로 아이들에게 상처되는 말도 없어서 어린 춘기 오빠는 그 아줌마가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야.

엄마 품이 한참 그리운 미운 7살 남자아이다보니 오죽했겠냐고.
 
 
그런데 큰누나의 기행은 그쯤부터 시작되었지.

아버지가 집을 비울 때마다 새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집안일 하는 것을 사사건건 방해하기 시작하더란 거야.

새어머니가 힘들게 빨래를 해서 널어놓으면 휙 잡아다가 구정물에 떨어트려 놓고

다된 밥통에 모래를 한줌 뿌려놓고

쥐를 잡아다 새엄마 신발 속에 넣어두고.
 

점점 하는 짓이 심각해지자 아무리 사람 좋은 사람이라도 화를 안 내고 배길 수가 있나.

그래서 훈계를 한답시고 매를 들게 된 거야.

그러자 큰누이는 그 길로 동생들을 몽땅 데리고 동네 번화가로 나가서 밤이 늦도록 노상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는 거야.
 
 
동생들이 춥고 배가고프다고 투정을 하면 앙칼진 눈을 흡- 치켜 뜨면서 누나를 다시 보기 싫으면 새엄마한테 지금이라도 가라면서... 동생들을 윽박지르기도 하고, 또 어떨땐 살살 달래기도 하면서 말야.

그 때가 칼바람 불던 겨울이었는데 야근을 끝낸 아버지가 돌아오도록 기다렸다가 멀리서 아버지가 보이자 맨발로 달려가서 큰누이가 무릎을 꿇고 펑펑 울더라는 거야.
 
 
물론, 그 일 한 번을 가지고 새어머니와 갈라설 일은 없었지.

하지만 그런 일들이 한 번이 되고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자 새어머니는 더는 못 살겠다며 왔던 짐을 고대로 싸들고는 집을 나가버렸다고 해.
 
 
하지만 할머니는 아들 새장가에 욕심을 버리지 못했는지 얼마 후에 또다시 두번째 여자를 집에 들이게 된 거야.

(아니 그렇게 아들이 걱정이 되면 본인이 직접 살림해주고 손주들 건사해주면 될 것인데 왜자꾸 새장가를 보내려고 하는지 원)
 
 
두 번째 새엄마도 첫 번째 새엄마와 마찬가지로 수더분하고 어디 모난곳없는 평범한 아줌마였다고 해.

단, 첫 번째 아줌마보다 훨씬 나이가 젊고 애가 겨우 하나 딸린 어딘가 고운 느낌의 여자였다는 거야.
 
 
두 번째 새엄마가 들어오던 해에 춘기오빠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고 해.

초등학교 입학식을 그분과 손을 잡고 가게 되었기 때문에 그분의 얼굴 만큼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고 하더라고.
 
 
물론 사람의 관계라는 게 처음엔 거의 환심을 사느라 좋은 얼굴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하잖아.

그래서 그 첫인상이라는 건 믿을 게 못 되지만 새엄마의 손을 잡고 먼 길을 터벅터벅 걸어오는데 새엄마의 품이 제법. 싫지 않더란 거야.
 
 
그래서 춘기오빠는 큰누나가 신신당부하던 다짐을 깨버린 채 새엄마를 곰살맞고 친근하게 따르게 되었고

그런 정황을 목격할 때면 어김없이 누나에게 입안에 피가 고이도록 쳐맞았다는 거야.
 
 
ㅜㅜ 여기까지 들었을 때는 아니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새엄마를 부정해야 하나

세상에 새엄마는 모두 나쁜 건 아닌데..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이야기를 조금 더 듣다보니 나도 모르게 아, 하는 탄식을 하게 되더라고..


암튼. 두 번째 새엄마가 그집에서 서서히 적응을 하며 살고 있었는데

큰누나의 그 표독스러운 계략이 슬슬 발현되기 시작한 거야.

아버지가 새엄마를 내심 좋아하는 눈치인지라 큰누이의 증오심은 하늘을 찌를듯한 기세였다고 해.


추석인가 설인가 되는 명절이었는데, 여자들이 분주하게 음식을 장만하느라 정신이 없던 날이었다고 해.

음식 장만을 다 하고 곱게 옷을 차려 입으려는데 빼놓은 할머니의 금가락지며, 고모의 목걸이며 심지어는 돌아가신 엄마의 패물까지 몽땅 사라진 거야.

그래서 집안을 샅샅히 뒤지게 되었다지.
 

누가 그랬겠어? 당연히 큰누이지.

마치 막장 드라마처럼.

없어진 패물은 새어머니의 자식 가방에서 짠~하게 나오게 되었고.

그 대식구가 모인 명절날, 새어머니와 새어머니의 자식은 친천들의 수군거림과 눈총을 받으며 참 힘든 밤을 보내게 되었겠지.

하지만 어린 손녀의 의중을 훤히 넘겨짚어본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은 바로~ 할머니.

할머니는 큰누이를 비롯해서 다른 자식들까지 불러다가 이번만 용서하고 넘어가겠다고, 너희들이 아버지를 위한다면 새어머니를 그렇게 괴롭히면 못쓴다고 엄하게 꾸짖었다고.

그러자 큰누이는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할머니에게 대들더래.
 
 
" 할머니가 아무리 그래도 나는 내 동생들 끝까지 지킬 꺼라고.. "


ㅜㅜ

도대체 뭔말이여 시방.
 
 
춘기 오빤, 그 때는 누이의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몰라서 엄마가 돌아가시자 누이의 성정이 사납게 변했거니 했었다는 거야.


암튼, 그 사건 (할머니가 새어머니의 편을 들어준) 이후 큰누나의 새엄마 괴롭히기는 새로운 장르물을 형성할 정도로 집요하고 더욱 잔인하게 변해갔대.
 
 
그중의 압권을 하나 꼽자면.
 
새어머니가 데려온 자식이 이제 막 유치원에 입학한 어린 계집이었는데, 큰누나가 그 아이를 살살 꼬드겨서 과자를 사준다고 고모네집으로 데리고 가더래.
 
그 당시 고모네는 집이 대궐같이 넓어서 마당 동서남북으로 집이 4채가 마주보고 있었다고.
 
그래서 집에 사람이 숨어들어도 앵간한 큰 소리가 나지 않으면 모를 정도라는 거야.
 
그렇게 새어머니의 어린 딸을 꼬드겨서 고모 집으로 유인 후에 밖에서 못나오게 문을 걸어 잠궈두고는 아~무 일없이 태평하게 집으로 돌아간 것이지.
 
춘기오빠의 고모되는 분은 번화가에서 늦게까지 장사를 하던 분이기에 집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꿈도 못 꿨다고.
 
 
암튼. 저녁이 늦도록 딸이 집에 들어오지 않자 새엄마는 얼마나 애간장이 탔겠어.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고, 백방을 찾아다녀도 딸을 찾을 수가 없었겠지.
 
 
그러다 문득, 큰누이에게 다다다 달려오더니
 
" 너지? " 이러더래.
 
그러자 큰누이는 집이 떠나갈 정도로 웃더니
 
" 가르쳐 드려요? "
 
하더래.
 
 
새어머니가 닥달을 하면서 어서 빨린 말하라고, 어린것을 어디다 뒀냐고 묻자
 
가르쳐 주면 내일 당장 짐싸들고 집에서 나가라고 사람 마음을 가지고 아주 장난질을 하더라는 거야.
 

한시가 급한 새어머니는 알겠다고 알겠다고 다짐을 받고는 큰누이를 앞세우고 고모네집에 가서 혼자 울다 잠든 딸아이를 찾게 되었다지.
 
 
ㅇ_ㅇ...
 
결국 큰누이의 바람대로 새엄마 내쫓기 프로젝트는 성공리에 막을 내리게 되었고,
 
두 번째 새엄마까지 집을 나가게 되자 동네에서는 큰누이가 나이에 맞지 않게 엄청 영악하다고 독살스럽기 그지없다고 사실 그대로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는 거야.
 
 
그 소문이 퍼지자 할머니는 더이상 새엄마자리를 구할 수도 없었다고.
 
 
그제서야 큰누이는 다시 예전처럼 상냥하고 정이 많던 누이로 돌아왔다고 해.
 
단, 큰누이는 중학교까지만 마치고 엄마를 대신해서 집안 살림을 도맡았으며
 
살림을 기똥차게 해서, 밑에 동생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대학까지 보냈다는 거야.
 
 
동생들이 수험생이 되면 밤 늦게까지 옆에서 뜬눈으로 같이 밤을 지새우는건 기본이요,
 
그 옛날, 도시락을 두 개 세 개씩 싸서 다녀야 할땐 동생들 도시락이 혹시나 식을까 봐 점심시간, 저녁시간마다 배달은 물론이요,
 
단 한 번도, 구겨진 교복을 입어본 적이 없었다는 거야.
 
그래서 엄마 없는 티 한 번 안 내고 학교를 졸업하게 되었고 각자 어엿한 성인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군.
 
 
그렇게 살다보니 큰누이도 시집을 가게 되었고
 
자식들이 하나 둘 독립을 하게 되자
 
아버지는 더욱 연로해져서 이번에는 정말로 함께 늙어갈 동반자가 필요하게 된 것이야.
 
 
동생들은 다 큰 후에도 큰누나의 말이 곧 법인지라 큰누나의 눈치를 보며 설득을 했더래.
 
 
" 누나누나, 우리가 평생 아버지를 돌보는게 맞지만
 
 우리가 다 독립하고 나간 마당에 아버지도 편히 재혼을 하시는게 낫지 않소 "
 
 
그랬더니 큰누나가 눈에 쌍심지를 켜면서,
 

" 내가 이제껏 어떻게 너희들을 지켰는데 이제와서 뭔 개똥같은 소리냐... "
 

본인 눈에 흙이 들어와도 안된다고 막 그랬대.
 
 
그러던 중,
 
아버지가 정말로, 동네의 어떤 분과 오래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살림만 합치지 않았을 뿐 늙그막에 훈훈한 사랑을 하고 계신게 밝혀졌고
 
아버지가 이참에 살림을 합가하실거라고 선전포고를 하셨다나 봐.
 
 
그랬더니 또 큰누이가 집안을 풍비박살 내며 사생결단, 완전반대를 외친 거지.
 
그러자 눈치가 빠삭한 여자분께서 큰누이를 따로 만나 큰누이가 원하는 조건을 다 들어줄테니 허락을 해달라고 달랜 거지.
 
 
그러자 큰누이가 딱 2가지 조건을 내걸더래.
 
1. 아버지 재산은 1퍼센트도 손대지 말 것.
 
2. 나중에 돌아가셔도 아버지 옆에 묻힐 수 없다는 것.
 
 
솔직히 2번은 몰라도, 1번은 엄청 민감하고 예민한 부분 아니겠어.
 
저 1번, 2번은 모두 제외하면 그냥 동거인일 뿐, 배우자로서의 권리는 아무것도 없는 셈이지.
 

그래도 그 분은 큰누이의 조건을 수용한다고 하였고
 
아버지는 드디어 재혼에 성공하셨다고 해.
 
 
그런데 정말, 아버지가 재혼을 하자 큰누이는 본인의 일을 다 했다는 듯 모든 형제, 친지와 발길을 뚝 끊더니
 
어머니와 똑같은 병에 걸려서 암이 다른 기관으로 전이되어 돌아가셨다고 해.
 
 
그 때 누나 나이 겨우 마흔이 안 되던 때였다고.
 
 
그렇게 산사람들은 나름의 삶의 이유를 찾으며 열심히 살아갔고...
 
시간은 흐르고 흘러, 아버지와 새어머니도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다네.
 
 
새어머니가 지병으로 먼저 돌아가시고 그 다음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대.
 
 
선산에 가족 공동 무덤이 있는데 보통 부부 중 한 사람이 돌아가시면 나중에 묻힐 배우자를 생각해서 옆에 빈 공간을 만들어 놓잖아.
 
이미 어머니가 오래전에 돌아가셨기에 아버지가 묻힐 곳은 다들 친어머니 옆이라고들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고.
 
특히 큰누나의 다짐처럼 죽어서 꼭 어머니 옆에 묻혀야 한다고 온 가족이 생각을 했었대.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 전에 춘기오빠의 손을 꼭 잡으면서 이제껏 고생하다 간 너희 새엄마 옆에 묻히겠노라고
 
꼭 새엄마 무덤 옆에 묻어달라고 애원에 애원을 거듭하더란다.
 
 
춘기오빠는 마음이 착잡했다고 해.
 
엄마 같던. 아니 , 하늘 같던 큰누이의 약속을 어길 수도 없지만
 
돌아가시면서까지 애원하는 아버지의 유언 같은 부탁을 어떻게 거절하냔 말야.
 
 
그래서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던 춘기오빠는
 
아버지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새어머니의 무덤은 친어머니의 무덤에서 한 5미터 아래에 꾸려져 있는데.
 
결국 그 옆에 아버지를 묻었대.
 
 
큰누나가 살아있었다면 택도 없는 이야기지만 죽고 없었으니까 가능한 것이었겠지.
 
 
그런데 그렇게 아버지를 묻고 돌아온 후부터
 
식구들은 어느하나 편한 삶을 살 수가 없었다는 거야.
 
 
매일같이 꿈에 큰누나가 찾아와서 눈에서 시뻘건 선지피를 뚝뚝 흘리며 울고.
 
큰 곡괭이를 들고와서 현관문을 퉁-퉁- 두드리기도 하고
 
아무튼, 자려고 눈만 감았다 하면 계속 연이어서 꿈을 꾸었다는 거야.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까 점점 수그러 들더래.
 
 
그런데 이번엔 새어머니의 친 자식들이 다음 명절에 찾아와서 간곡하게 부탁을 하더란다.
 
계속 악몽에 시달려서 점집에 가보니 어머니 묘를 이장하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이장까지는 본인들도 좀 머뭇거려진다고.
 
왜냐면 이장하려면 이장할 땅이 있어야 했는데 자식들 형편이 고만고만 했나 보더라고.
 
 
암튼, 그래서 어머니가 자꾸 꿈에 나와서 괴로워하는 얼굴이니까
 
점쟁이 말대로 묘를 한 번 파서 관에 물이 차진 않았는지 확인이나 하련다고 말을 일러주더란 거야.
 
 
그래서 가장인 춘기오빠가 파묘를 하는 날에 맞춰서 아버지 벌초를 할겸, 겸사겸사 따라가 보았는데
 
 
아 글쎄. ㅜㅜ
 
 
그때가 벌써 새어머니가 돌아가신지 2년이 지난 때였는데 말야.
 
 
관 뚜껑이 열리자 거기 있던 사람 모두가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났다네.
 
 
시체가
 
 
한~~~~~~~~~~개도 썩지 않고, 물에 퉁퉁 부은 채로 그대로 있더라는 거야.
 
 
그래서 기겁을 한 춘기오빠는 혹시 아버지 묘에도 물이 찼을까 싶어서 아버지 봉분도 파헤쳐서 관을 열었더니 아버지 유해는 그렇지 않았다고 해.
 
 
그제서야.
 
아, 누나가 꿈에 나와서 그 야단을 치던 게 결국 이 목적이었나 싶어서.
 
가족들과 여차저차 상의한 끝에 다시 아버지를 친어머니 곁으로 모셨다고.
 
 
그런데 정말 거짓말처럼 아버지를 친어머니 곁에 모신 그 날 꿈에 누님이 어린시절 모습 그대로 나와서
 
색동 저고리를 입은 채 엄마손을 잡고 어딘가로 막 달려가더란다.
 
세상 더 없이 행복한 얼굴로 말이야.
 
 
춘기오빠는 꿈속에서 그 모습을 보는데 누님이 그렇게 행복해 하는 모습은 또 처음인지라 왠지 슬프기도 하고, 애잔해져서 일어나 펑펑 울었다고 해.
 
그래서 다음날 선물꾸러미를 가득 싣고 매형네 집에 방문했대. (큰누이 남편)
 
 
그러면서 홀아비가 된 매형이랑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큰누이 이야기를 하는데
 
매형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한다는 소리가
 

" 너희 누이가 왜 그토록 독살스럽게 새어머니 자리를 내쳤는지 아나.
 
 친어머니가 병으로 몸져누워 있을 때 느그 누이를 불러다가 날마다 한다는 소리가.
 
 집에 새엄마를 들이지 말아라.
 
 특히나 자식이 있는 새엄마는 들이지 말아라.
 
 혹시나 못된 사람이 들어오면 아버지가 눈이 멀어서 동생들 보살피지 못하고 구박할까 봐 엄마가 눈을 못 감겠다.
 
 어찌되었건 니가 엄마 대신이니까 엄마 죽으면 니가 엄마라고 생각하고 제발 부탁이니 동생들 건사 잘하거라 "

 
라면서 날마다 세뇌를 시켰다는 거야.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은 큰누이는 자기 인생을 포기하다시피 해서 동생들 뒷바라지를 한 것이고
 
13살의 나이에서부터 벌써 세 동생들의 어머니 노릇을 한 것이라고....
 
 
큰누이가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기에 그런 속을 알길이 없었다가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어쨌겠어.
 
 
돌아보면, 그동안 편하게 먹고 자고, 공부하고 무탈하게 살아온 날들의 절반은 큰누이 때문 아니겠냐고.
 
 
그런 큰누이의 마지막 유언을 무시했으니 양지바른 땅에도 물이 솟는 게 아니었냐고...
 
 
 
 
 
별로 안 무서울 수도 있지만 사람의 집념이 그렇게 강할 수도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일화였어.
 
급하게 쓰다보니 오타 수정은 못했어 친구들.
 
이따가 자기 전에 수정할테니 너그럽게 봐주길 바라.
출처 판 헤이브 님

http://pann.nate.com/b331189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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