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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출처 : https://youtu.be/-x8UeArqYtc
유안진, 사시(斜視)로 본다
피사의 사탑(斜塔)만큼
지구의(地球儀)의 기울기만큼
불편한 듯 위태로운 듯
사람과 귀신 사이 도깨비처럼
하늘이나 땅보다는 반 공중에서
목 디스크 아닌 허리디스크로 기울어져
떨떠름한 눈길로 삐딱하게 꼬나보며
옥의 티가 아니라
티 있는 옥돌이 마땅하다 싶어져
시각은 저절로 삐딱해져 버렸지
기울러져 돌아가는 지구에 붙어살자면
최소한 지구처럼 23.5도쯤 기울어져야지
중심잡기 위해서 기울어져야 했던 피사의 탑처럼
삐딱해야 바르다고
반듯하게 돌아가는 삶이라고
신발 밑창도 삐딱하게 닳아버린 제 몸을 보여주곤 하니까
김석규, 마음 밭갈이
봄날의 떠나가 버린 꽃잎을 생각한다
아흔아홉 간 지붕 밑에 누워도
이 세상에는 하늘이 덮어주지 않는 곳이 없다
부자로 살면서도 만족을 모르면 근심만 깊고
비록 가난하나 만족할 줄 알면 더 없이 즐거운데
부귀영화가 한갓 뜬구름
하루에 천리를 가는 말도 다람쥐 토끼는 못 잡고
누구 하나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비 올 것을 알아차린 개미는 흙으로 둑을 짓고
큰바람 불 기미를 알아차린 솔개는 날아올라 먼저 운다
바람도 험한 바위를 지날 때는 아무 소리 없다가
부드러운 잎을 만나서는 옥을 울리며 가는 법
묘망의 높푸른 하늘 우러러
손바닥 받쳐 들면 햇빛 가득히 고이는 날
버려진 채 쑥대덤불만 무성히
오래 묵혀놓은 묵정밭 갈아엎는다
박경자, 무게
겨울 숲 앙상한 가지 위에
엎질러진 허공은 공평하다
더하고 덜한 데가 없다
먼 데 능선에서 가까운 골짜기까지
높거나 낮거나
똑같은, 한 근 반이다
문제는 허공이 아니라 저 자신이라는 것
염치없이 허공 속으로 쭉쭉 뻗어 오른 갈참나무
눈치껏 팔 벌리고 몸 낮춰 적당히 허공을 견디는 층층나무
휘어지고 비틀어지며
마디 굵은 손으로 허공을 온통 혼자 견디고 있는 오동나무
등, 등
저마다 다른 무게를 견디고 있는 앙상한 가지들을 보면 안다
오늘도 허공은
제 속에 시린 바람이 지나가거나 말거나
구름 한 점 품었거나 말거나
더하고 덜한 데 없이
공평하다
견딜만하다
나태주, 꽃 피는 전화
살아서 숨 쉬는 사람인
것만으로도 좋아요
아믄, 아믄요
그냥 거기 계신 것만으로도 참 좋아요
그러엄, 그러믄요
오늘은 전화를 다 주셨군요
배꽃 필 때 배꽃 보러
멀리 한 번 길 떠나겠습니다
문현미, 쌀에서 살까지의 거리
말끔하게 마당질한 알곡에
언틀먼틀 불거진 한 생의 부스러기를 섞는다
표정 없는 일상의 손에 휘둘려 농부의 피살이
땀과 눈물과 애간장이 부옇게 씻겨져 나간다
살아 있는 자음과 모음의 배반을 꿈꾸며
먼지 풀풀 날리는 하루를 지탱해 줄 밥솥 안으로
땅의 경전을 집어넣는다
작은 우주 안에서 불, 물고문을 견디며
기꺼이 우리들의 더운 피가 되어 주는
한 톨의 쌀
나도 누군가의 입안에서 달콤하게 씹힐
저녁 한 끼라도 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