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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자꾸만 찾아오는 시
게시물ID : lovestory_876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42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5/23 08:26:09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SnseCb3zhTc






1.jpg

김선우봄날 오후

 

 

 

그 집 뜰에서 오줌을 눴다

변소가 없었던 건 아니고

그러니까 그냥

다들 알몸이라서

채송화 작약 모란이 모두 알몸인데

나만 소란 떨기 뭣해서

 

그때 나비가 살지나갔다

나비의 것인지 내 것인지

살이 포르르 떨렸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마지막 오줌 한 방울이 떨어질 순간쯤

나비도 오줌을 누나?

그런 궁금증이 무연히 지나갔고

 

내가 웃어서인지 바람 때문인지

무언가 뿌리를 간질였는지 아무튼지

배롱나무 끝가지가 포릉포릉 떨렸다

 

그러니까나비 오줌에 대해

누군가 말해 줄 것도 아닌 것도 같은

실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봄날 오후

 

나비 오줌 한 방울에 묻은

채송화 냄새 같은 게

내 가운데서도 흐릿하게 풍겼다고

포슬하니 부풀어 숨 쉬는 봄 흙 위에

공기의 말로 써도 될 것 같았다







2.jpg

정일남낙타

 

 

 

사막에서 그는

속도를 내지 않는다

그가 터득한 것은 굼뜨게 발을 옮기는 방식이다

사자와 호랑이가 속도를 내지만 점령할 수 없는 사막의 국경을

낙타만이 외롭게 넘을 수 있다

모래알들이 주는 눈짓을 낙타만이 안다

낙타가 걸을 때만이 사막이 살아서 움직인다

낙타를 해칠 수도 있는 사막이지만

사막을 위해서 낙타는 걸어간다

낙타의 모든 구조는 사막을 정복하게 구성되어 있는 것

사막이 존재하는 한 낙타는 걸어야 한다

사막을 버리면 그는 낙타라는 이름을 버려야 한다

내 의식 속에 사막이 살아있는 한

낙타의 슬픈 눈이 내 삶을 깨우쳐주었으니

사막이 유일한 길이며

길이 평생이므로

모든 사사로운 것을 삭제하고

같은 보폭으로 굼뜨게 걸어가면

사자별자리 황소별자리에 도달한다







3.jpg

신경림오월은 내게

 

 

 

오월은 내게 사랑을 알게 했고

달 뜨는 밤의 설레임을 알게 했다

뻐꾹새 소리의 기쁨을 알게 했고

돌아오는 길의 외로움에 익게 했다

다시 오우러은 내게 두려움을 가르쳤다

저잣거리를 메운 군화발 소리 총칼 소리에

산도 강도 숨죽여 웅크린 것을 보았고

붉은 피로 물든 보도 위에서

산조차 한숨을 쉬는 것을 보았다

마침내 오월에 나는 증오를 배웠다

불 없는 지하실에 주검처럼 처박혀

일곱 밤 일곱 낮을 이를 가는 법을 배웠다

원수들의 이름 손바닥에 곱새기며

그 이름 위에 칼날을 꽂는 꿈을 익혔다

그리하여 오월에 나느 복수의 기쁨을 알았지만

찌른 만큼 찌르고 밟힐 만큼 밟는 기쁨을 배웠지만

오월은 내게 갈 길을 알게 했다

함께 어깨를 낄 동무들을 알게 했고

소리쳐 부르는 노래를 알게 했다







4.jpg

이은봉자꾸만 찾아오는 시

 

 

 

느닷없이 오늘 아침

또 한편의 시가

나를 찾아왔다 얼굴 찡그리며

시는 왜 자꾸만

나를 찾아오는가

사람들 너무 살기 어렵다는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정의며 진리도 구하지 못한다는데

그렇지 세상에는 아직도

죽고 죽이는 일들로

가득하지 세상 이처럼

어둡고 캄캄하거늘

시는 왜 자꾸만 나를 찾아오는가

돈도밥도 되지 못하는 시여

오늘 점심에도

너는 또 다시 화들짝 웃으며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시름으로설움으로

가득한 시여 이 세상

나 혼자 더 어쩌라고

너는 왜 자꾸만 나를 찾아오는가

찾아와 내게 몸 기대는가

나를 힘들게 하는가







5.jpg

정끝별연리지(連理枝)

 

 

 

너를 따라 묻히고 싶어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열 길 땅속에 들 한 길 사람 속에 들어

너를 따라 들어

외롭던 꼬리뼈와 어깨뼈에서

흰 꽃가루가 피어날 즈음이면

말갛게 일어나 너를 위해

한 아궁이를 지펴 밥 냄새를 피우고

그물은 달빛 한 동이에 삼베옷을 빨고

한 종지 치자 향으로 몸단장을 하고

살을 벗은 네 왼팔뼈를 베개 삼아

아직 따뜻한 네 그림자를 이불 삼아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오래된 잠을 자고 싶어

남아도는 네 슬픔과 내 슬픔이

한 그루 된

연리지 첫 움으로 피어날 때까지

그렇게 한없이 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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