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zKcYyiV-0QQ
이장근, 무조건 천원
거미의 언어로 말하겠다
공중부양을 기대하지 말 것
봉고차 배가 터지도록 물건을 싣고 온그가
인도(人道)에 거미줄을 친다
허리를 동그랗게 말고 간격에 맞춰
촘촘히 물건들을 짠다
간격을 알리듯 '무조건 천원'이라는 글자를
물건 사이사이에 꽂아놓는다
무조건이라는 말처럼 무서운 말이 있겠는가
바람도 넘어뜨릴 수 없는 말
물방울을 별처럼 매단 은하계의 말
단속반이 폭풍처럼 다녀간 후에도
다음 날 물방울 눈빛으로
거미줄을 짠 그가 아니었던가
천원은 조건이 아니다
허리 구부러진 깍쟁이 할머니도 각아내릴 수 없는 금액
설마하고 날아왔다가 어머나 하고 걸리고 마는
투명한 금액이다
세도 세도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최소화 된 거미줄의 간격으로
그가 걸음을 옳기고 있다
투명한 물건들 가운데 정점처럼
커다란 날개를 펼친 날벌레처럼
지상에 거미줄을 친 그의 언어로 말하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무조건 천원"
고운기, 호수
호수 앞에 앉으면 안경을 벗는다
그리고 크게 숨쉬기 열 번
네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하고 싶다
미간을 찌푸리듯
물 속 깊숙한 데서 일어난
네가 지닌 고민과 갈등을 전해 주는 파문(波紋)
강아지풀 형제가 가만히 흔들리는데
바람이 분다고만 물결이 일지 않음을
호수는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이상국, 탑
한때는 절 받고
돈도 받았겠지
이름 있는 날이면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아무개와 같이 살게 해달라고
숱한 사람들이 찾아와
원을 빌었겠지
절이 가난했던지
지키지 못할 약속이 너무 많았던지
어느 날 부처는 산을 내려가고
탑이 혼자 그 책임을 다 졌는데
천년도 넘은 세월이 지나고
온몸을 거의 부수고 나서야 그는
겨우 논물에 비치는 제 몸속의 탑을
조용히 바라보는 거였다
윤동주, 바다
실어다 뿌리는
바람 조차 씨원타
솔나무 가지마다 셋춤히
고개를 돌리어 삐들어지고
밀치고
밀치운다
이랑을 넘는 물결은
폭포처럼 피어오른다
해변(海邊)에 아이들이 모인다
찰찰 손을 싯고 구보로
바다는 자꼬 섧어진다
갈매기의 노래에
돌아다 보고 돌아다 보고
돌아가는 오늘의 바다여
김억, 비
포구십리(浦口十里)에 보슬보슬
쉬지 않고 내리는 비는
긴 여름날 한나절을
모래알만 울려놓았소
기다려선 안 오다가도
설운 날이면 보슬보슬
만나도 못코 떠나버린
그 사람의 눈물이던가
설운 날이면 보슬보슬
어영도(魚泳島)라 갈매기 떼도
지차귀가 촉촉히 젖어
너훌너훌 날아를 들고
자취 없는 물길 삼백리
배를 타면 어데를 가노
남포(南浦) 사공 이내 낭군님
어느 곳을 지금 헤매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