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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삶
매미가 운다
움직이면 덥다
새벽이면 닭도 운다
하루가 긴 날이 있고
짧은 날이 있다
사는 것이 잠깐이다
하는 짓들이 헛짓이다 생각하면
사는 일이 하나하나 손꼽아 재미있다
상처받지 않은 슬픈 영혼들도 있다 하니
생이 한번뿐인 게 얼마나 다행인가
숲속에 웬일이냐, 개망초꽃이다
때로 너를 생각하는 일이
하루 종일이다
너 아니면 집을 나온 내가 어디로 돌아갈까
내 곁에 앉은
주름진 네 손을 잡고
한세월 눈감았으면 하는 생각
너 아니면 내 삶이 무엇으로 괴롭고
무슨 낙이 있을까
매미가 우는 여름날
새벽이다
삶에 여한을 두지 않기로 한
맑은 새벽에도 움직이면
덥다
김사인, 춘곤
사람 사는 일 그러하지요
한 세월 저무는 일 그러하지요
닿을 듯 닿을 듯 닿지 못하고
저물녘 봄날 골목을
빈 손만 부비며 돌아옵니다
김재진, 선운사 가라
그래 이제 선운사 가라
꽃 떨어지듯 툭, 마음 내려놓고
꽃이 데리고 온 사람들 사이에서
기어코 찾아올 이별을 허락하라
그것이 오는 것을 지켜보며
영원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라
깨달을 것 또한 아무것도 없으니
죽어도 나는 현존하며
꽃 또한 떨어져도 그 자리에 있다
오고 가는 것은 너와 나뿐
그대와 나의 빈 몸뚱이뿐
가지 않는 삶은 침묵 속에 있다
진란, 그들만의 요란법석
어느 순간
세상의 모든 애인에게 한꺼번에 전화를 거는 사람
달이 떴다고 전화를 걸고
눈이 온다고 문자를 보내고
비가 온다고 온통 쓸쓸해하는
모든 세상의 길은 애인들의 전화선이다
한 때, 서로에게 환한 등이었을 수다스러운 행각도
한 때, 오직 한 곳만을 응시했을 뜨겁던 시선도
바람이 불고
풍경이 흐려지고
사람도 낡아지는데
보이지 않는 선을 걸어가는 모퉁이쯤에서는
어젯밤 쓸쓸한 가슴에 품었다 걸어놓은 너의 눈썹달이었고
새벽에 홀로 서 반대편의 반쪽을 생각하다 미처 지우지 못한 낮달이었고
다시는 붙일 수 없는 사금파리처럼 깨어진 조각달이었고
그대는 세상의 모든 전화벨이 한꺼번에 쏟아지라고
길을 열어놓은 사람, 부재중이었을 수도 있었을
거절했을 수도 있었을
스팸으로 등록되었을 수도 있었을
여전히 바람은 불고
달이 뜨고
벨은 울린다
김영철, 학
얼룩이
생길까 봐
울지도 못하겠다
무논 같은
가슴 안에
외발로 버티면서
한 번도 무겁지 않게
어깨 위에
앉은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