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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공휴일
중랑교 난간에 비슬막히 세워 놓고
사내 하나가 가족 사진을 찍는데
햇볕에 절어 얼굴 검고
히쭉비쭉 신바람 나 가족 사진 찍는데
아이 하나 들춰 업은 촌스러운 마누라는
생전에 처음 일 쑥스럽고 좋아서
발그란 얼굴이 어쩔 줄 모르는데
큰애는 엄마 곁에 착 붙어서
학교서 배운 대로 차렷 하고
눈만 떼굴떼굴 숨죽이고 섰는데
저런, 큰애 곁 다릿발 틈으로
웬 코스모스 하나 비죽이 내다보네
짐을 맡아들고 장모인지 시어머니인지는
오가는 사람들 저리 좀 비티라고
부산도 한데
최문자, 진달래꽃
괜찮아, 괜찮아 뒷산에 불 지른 것
불이 나를 지나 내 푸른 노트 다 태워 버린 것
가장 찬란한 사랑은 언제나 다 타고 난 가루에서 빛나는 것
한 번의 뜨거움으로 죽도록 꽃은 가루가 되겠지
한 사나흘 비 뿌리는 동안 꽃이 물이 되는 거
그 물이 불을 끄고 돌아서서 다시 푸른 노트가 되는 것
괜찮아, 괜찮아 뒷산에 불 지른 것
불 지르고 돌아서서 진분홍 물이 되는 거
알 수 없는 그 고단했던 사랑
꽃잎 날리는 모든 이별
괜찮아
강연호, 흔적
비닐 장판이 둥글게 뜯겨 있다
뜯긴 자리가 흉텨마냥 거뭇거뭇하다
거기 오래전에 솥단지나 냄비가
엉덩이를 쓰윽 디밀었었구나
누군가의 속을 따뜻하게 데우기 위해
털썩 주저앉았었구나
그 자리가 모락모락 치밀어 오른다
뜨겁다
신경림, 봄의 노래
하늘의 달과 별은
소리내어 노래하지 않는다
들판에 지새워 피는 꽃들은
말을 가지고 말하지 않는다
서로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듣는다
달과 별의 아름다운 노래를
꽃들의 숨가쁜 속삭임을
귀보다 더 높은 것을 가지고
귀보다 더 깊은 것을 가지고
네 가슴에 이는 뽀얀
안개를 본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듣는다
눈보다 더 밝은 것을 가지고
가슴보다 더 큰 아픔을 가지고
송찬호, 개나리
노랗게 핀 개나리 단지 앞을 지나던
고물장수의 벌어진 입이 다물어질 줄 모른다
아니, 언제 이렇게 개나리 고물이 많이 폈다냐
봄꽃을 누가 가지 하나하나 세어서 파나
그냥 고철 무게로 달아서 넘기면 그만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