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철, 새벽 등대
보름달 쪽으로 갔던
낙타가
희미한 별에 실려 돌아온다
푸르게 젖어 울며
바라보는 너머에
빈 배 기울어져 있다
달의 뒤편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가
오래된 강물이라도 있어
목에 매달려 밤새 흐느꼈던가
낙타여
빈 배의 주인도
이미 한없이 가벼워져
새벽으로 가버렸다
이대로 가면 곧
푸른 울음도 은빛 탑이 탑이 되어
바다 끝에서 철썩이리라
이시영, 사이
가로수들이 촉촉이 비에 젖는다
지우산을 쓰고 옛날처럼 길을 건너는 한 노인이 있었다
적막하다
고경숙, 모란
한옥대문을 밀면
어머니는 툇마루 근처에서
빨래를 개키시거나
수돗가에서 채소를 씻곤 했었다
돌아앉은 빨간 블라우스 자락이
물소리에 맞춰 흔들렸다
황명걸, 빈 교정
모두들 어디 가고
빈 교정에
개나리만 만발했나
봄볕 가득한
빈 잔디
빈 벤치
먼지 앉은 교실의
책상 걸상들이
임자를 보고 싶다네
어디 갔을까
무엇 하고 있을까
친구들은 지금
집에 있어도 편잖고
산에 가도 언짢아
생각느니 친구들뿐
사랑을 갓 배울 때의
그 그리움
그 보고 싶음이어라
모두들 어디 가고
빈 교정에
개나리만 만발했나
유안진, 꽃으로 다시 살아
지금쯤 장년고개 올라섰을 우리 오빠는
꽃잎처럼 깃발처럼 나부끼다가 졌습니다만
그 이마의 푸르던 빛 불길 같던 눈빛은
4월 새잎으로 눈부신 꽃빛깔로
사랑하던 이 산하 언덕에도 쑥구렁에도
해마다 꽃으로 다시 살아오십니다
메아리로 메아리로 돌아치던 그 목청도
생생한 바람소리 물소리로 살아오십니다
꽃 진 자리에 열매는 열렸어야 했지만
부끄럽게도 아직껏 비어있다 하여
해마다 4월이 오면 꽃으로 오십니다
눈 감고 머리 숙여 추모하는 오늘
웃음인가요 울음인가요 저 꽃의 모습은
결 고운 바람결에도 우리 가슴 울먹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