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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리, 꽃비 맞고 서 있으면
가진 것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 하나 지녔는가
떨어지는 꽃잎이 나에게 묻는다
가장 귀한 것 가장 아름다운 것 다 쏟아 부어서 더
흐뭇한 사람 하나 가졌는가 한 번 더 묻는다
대답 못해 머뭇거리는 사이 어떤 꽃잎은
뺨이나 속눈썹에 날아와 한 참을 머물다 간다
그 연분홍 향내에 그만, 알 수 없는 눈물이 난다
김선우, 눈 그치고 잠깐 햇살
지저분한 강아지가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자던
동해 바닷가 막횟집 평상 아래
눈 그치고 잠깐 햇살
일어나 몸을 턴 강아지가 저편으로 걸어간 후
동그랗게 남은 자국
그 자리에 손을 대본다
따뜻하다
다정한 눌변처럼
눈 그치고 살짝 든 평상 아래 한뼘 양지
눌변은 눌변으로서 완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아주 조그맣더라도
조그만 나뭇잎 한장 속에
일생의 나무 한그루와 비바람이 다 들어 있듯이
이병기, 냉이꽃
밤이면 그 밤마다 잠은 자야 하겠고
낮이면 세 때 밥은 먹어야 하겠고
그리고 또한 때로는 시(詩)도 읊고 싶고나
지난봄 진달래와 올 봄에 피는 진달래가
지난여름 꾀꼬리와 올 여름에 우는 꾀꼬리가
그 얼마 다를까마는 새롭다고 않는가
태양(太陽)이 그대로라면 지구(地球)는 어떨 건가
수소탄(水素彈) 원자탄(原子彈)은 아무리 만든다더라도
냉이꽃 한 잎에겐들 그 목숨을 뉘 넣을까
남궁벽, 별의 아픔
임이시여, 나의 임이시여, 당신은
어린 아이가 뒹굴을 때에
감응적으로 깜짝 놀라신 일이 없으십니까
임이시여, 나의 임이시여, 당신은
세상 사람들이 지상의 꽃을 비틀어 꺾을 때에
천상의 별이 아파한다고는 생각지 않으십니까
라이너 마리아 릴케, 사랑이 어떻게 너에게로 왔는가
사랑이 어떻게 너에게로 왔는가
햇빛처럼 꽃보라처럼
또는 기도처럼 왔는가
행복이 반짝이며 반짝이며 하늘에서 몰려와
날개를 거두고
꽃피는 나의 가슴에 걸려온 것을
하얀 국화가 피어있는 날
그 집의 화사함이
어쩐지 마음에 불안하였다
그날 밤 늦게, 조용히 네가
내 마음에 닿아왔다
나는 불안하였다
아주 상냥하게 네가 왔다
마침 꿈 속에서 너를 생각하고 있었다
네가 오고 은은히, 동화에서처럼
밤이 울려 퍼졌다
밤은 은으로 빛나는 옷을 입고
한 주먹의 꿈을 뿌린다
꿈은 속속들이 마음 속 깊이 스며들어
나는 취한다
어린아이들이 호도와
불빛으로 가득찬 크리스마스를 보듯
나는 본다. 네가 밤 속을 걸으며
꽃송이 송이마다 입맞추어 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