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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의 문제 - 모순된 특질, 비틀린 자정작용
게시물ID : freeboard_8737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urakumo
추천 : 12
조회수 : 804회
댓글수 : 81개
등록시간 : 2015/05/27 13:43:26
요 며칠 콜로세움이 아주 대성황이었습니다. 여혐, 남혐, 여시, 김여사, 여성운동 등(여시덕에 주제가 확실히 치우치긴 치우쳤군요).
오유라는 커뮤니티를 바깥에서 본지는 꽤 됐습니다만, 기왕 가입까지 한거 이 콜로세움에 대해 좀 알아보자 싶어서 관전도 많이 하고,
때로는 검방 차고 뛰어들기도 해봤습니다. 이를 통해 느낀 바를 한번 풀어보고자 합니다.

오유는 표면적으로 꽤나 점잖은 커뮤니티입니다. 일단 대외적인 타이틀 자체가 '선비'죠. 심지어 앞에 10이 붙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미지와는 달리 또 콜로세움은 은근, 아니 굉장히 자주 열립니다. 게다가 한번 열리면 셔터가 잘 안내려가요.
타 커뮤니티는 한두시간 싸우고 말거 오유는 기본이 하루에 장장 며칠에 걸쳐 올나잇 개장하기도 합니다. 이게 선빈지 선비족인지 싶을 정도죠.
이러한 모순된 현상 뒤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서로 모순된 특질이 작용합니다.


1. 강력한 분쟁회피 성향 - 거대한 콜로세움과 유수의 검투사들을 보유하고 있긴 하나 기본적으로 오유 사람들은 분쟁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아무래도 존댓말 커뮤니티에 전반적인 분위기가 점잖은 편이다보니 오유 유저중에는 감수성 충만하고 여린 분들이 타 커뮤니티에 비해 많은 편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이런 사람들은 타인과의 분쟁, 정확히 말하자면 그 분쟁에서 오가는 감정의 격류를 부담스러워합니다. 때문에 오유는 콜로세움 개장할때마다 '싸우지 말아요'라는 여론이 강한데다가 애초에 콜로세움이 서는 것 자체를 굉장히 꺼립니다. 때문에 분란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피해가고자 하고, 그러한 주제를 언급하는 사람을 상당히 싸늘하게 대합니다. 그런데...

2. 제로에 수렴하는 관용 - 사실 싸움판 벌어지고 콜로세움 서는 게 싫으면 서로가 서로에게 관용을 보이고, 상대의 방식과 생각을 인정(내지는 방치)해주면 됩니다. 헌데 희한하게도 오유인들이 서로에게 보이는 관용은 다람쥐 왼쪽 부랄만도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이 셋만 있어도 의견이 갈리기 마련인데 만 명 단위의 사람이 모이면 의견 충돌이 안 생길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보기에 불쾌한 생각을 지니고 있을 것이고, 동시에 내 생각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불쾌하게 여겨지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때문에 어떤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부분이 아니고서야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고 과하게 터치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건만 오유에서는 타인의 생각과 관점에 오지랖을 넘어 편집증적인 태도로 접근하는 일이 아주 비일비재합니다. 너무나도 자신있게 타인에게 '자제해라' 내지는 '잘못됐다'며 손가락질하는 오만. 단언컨데 국내 최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 완전히 모순되는 특질이 한 공간에 존재하다보니 웃기는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일단 누구도 원치 않는 콜로세움이 자꾸 서죠.
타 사이트에선 싸움이 일어나면 하다못해 당사자들이라도 신나는데 오유 콜로세움은 안에서 싸우는 검투사들도 피곤과 짜증에 푹푹 절어있습니다.
허나 이보다 훨씬 중대한 문제는 일부에서 '자정작용'이라 일컫는, 그야말로 숨막히는 검열의 연쇄입니다. 그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누군가가 어떤 문제로 꼬투리를 잡습니다. 주제는 뭐가 됐든 좋습니다. 섹드립이 되기도, 짤이 되기도, 심지어 단어 하나가 되기도 하죠. 그러면 콜로세움이 섭니다. 그런데 결론이 나질 않아요. 당연한 일입니다. 애초에 오유 성향상 인륜에 어긋나거나 반사회적인 게시물은 베스트 근처에 가질 못합니다. 결국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지 않은, 개개인의 관점 나름인 문제들이 콜로세움의 주제로 떠오르고, 이걸 두고 싸우는 주체가 또 관용 제로의 오유인들이다보니 결론이 날 턱이 없습니다.

헌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일반적인 커뮤니티라면 결론이 나지 않은 문제는 그냥 각자 알아서 노터치하겠죠. 하지만 오유는 위에서 말했다시피 분쟁을 싫어하고 회피하려 합니다. 때문에 한번 콜로세움이 섰던 문제라면 싸움의 결과와 상관없이 거북한 주제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때문에 도마 위에 올랐던 물건이 좋든, 나쁘든, 좋고 나쁘고로 판단할 수 없든간에 일단 무언의 억제 하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누군가가 그 짤이나 드립, 혹은 단어를 다시 꺼내면? 그 사람의 의도가 어찌됐든 비난의 명분이 서버립니다. '아니 싸움이 일어났던 주제를 왜 또 꺼내나요?'라는, 사실 어찌 보면 굉장히 황당한 비난이 오유의 두 특질이 아주 환장하는 앙상블을 이루면서 정당한 비판으로 둔갑해버리죠. 이것으로 검열이 완성됩니다. 사회적 합의도, 내부 구성원의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건만 느닷없이 금기가 걸려버리는 겁니다.

오늘의 유머가 '오늘의 진지'가 되고 선비가 '10선비'로 퇴화한 본질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뭐가 됐든간에 한 번 분쟁의 도마 위에 오르면 금제가 걸립니다. 근데 사람이 몇만명이라 도마 위에 오르는 주제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렇게 수많은 주제와 드립, 짤과 단어들이 검열당하고 나니 할 말이 없어져버린 겁니다. 드립 없는 유머가 재미질리 없으니 유머는 쇠퇴하고 무의미한 예송논쟁만이 남습니다. 유신정권보다도 엄격하고 강력한 검열은 '10선비'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떠안게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분쟁회피와 무관용의 모순 속에서 태어난 검열이라는 괴물이 일으킨 사단입니다.


자, 문제를 제시했으니 이제 해결책을 제시할 차례겠지요. 복잡한 사안이지만 해결의 원리 자체는 간단합니다. 모순된 성향 속에서 생겨난 문제니 그 모순을 해소하면 그만이죠.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 분쟁을 긍정한다 - 사실 싸움이란게 꼭 부정적인 영향만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모든 합의는 분쟁을 통해 탄생하는 법이니까요. 분쟁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면 검열의 필요성도 사라집니다. 물론 콜로세움 자체는 지속적으로 서겠지만 커뮤니티 전체를 뒤흔드는 문제로 발전하지는 않고, 싸우는 사람도 신나고 보는 맛도 있는 어떤 의미에선 '건전한' 콜로세움으로 발전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대부분의 반말 커뮤니티들이 이러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지요. 이쪽을 선택할 경우 댓댓글의 도입을 건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댓댓글이 있어야만 시작과 끝맺음이 분명해져 결론과 합의에 이를 수 있으니까요.

2. 관용을 키운다 - 어쨌거나 점잖고 젠틀한 것 또한 오유의 특징이죠. 이러한 부분을 살리면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타인의 생각과 관점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를 습득해야 합니다. 만 명의 사람이 사는 곳에는 만 개의 가치관이 있기 마련입니다. 타인의 생각을 굳이 억지로 바꾸거나 뜯어고치려 드는 것 또한 과한 참견이자 잘못임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그 생각이 이 사회에서 용인되는 것일 경우 이에 대한 검열은 인간의 기본권인 사상의 자유에 대한 침해이자 명백한 폭력행위입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때 10선비가 아닌 선비가 될 수 있는 것이죠. 단, 민주사회가 민주사회 자체에 대한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듯 관용을 위배하고 검열질을 시도하는 사람에게는 철저한 불관용 원칙을 보여야만 관용이 유지될 수 있음은 명심해야 합니다.

전 사실 어느쪽으로 가든 불만은 없고, 어느 쪽으로 가도 오유는 번성할 것입니다. 갓을 벗어던지고 시원시원하게 노는 것도 좋고, 선비라는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며 온화한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도 좋습니다. 다만 지금의 모순 속에서 점점 검열의 늪에 빠져들어 익사하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싶어서 좀 긴 글을 적어봤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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