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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귀목봉에서 '아저씨 같이 가요' 하는 여자 목소리 들려요"
게시물ID : panic_724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랜선귓니
추천 : 18
조회수 : 6697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4/09/04 09:15:02

※ 1. (머리쭈뼛주의) 두 번 째 사진 = 전설의 고향 귀신

2. (출처주의) 신빙성은 장담 못함


[납량특집ㅣ산꾼들의 귀신 체험담]

"귀목봉에서 '아저씨 같이 가요' 하는 여자 목소리 들려요"




↑ [월간산]가스와 햇살이 섞여 몽환적인 분위기의 산길을 오르는 산꾼들.

↑ [월간산]가스와 햇살이 섞여 몽환적인 분위기의 산길을 오르는 산꾼들.

연일 더위가 기승이다. 무더울 때는 시원한 계곡에 발 담그는 것도 좋지만 '납량특집'을 빼놓을 수 없다. '여름' 하면 약방에 감초처럼 따라 붙는 것이 '납량특집'이다. 산꾼들 역시 한여름 술안주로 자주 오르내리는 것이 산에서 겪은 오싹한 체험담이다. 얘기가 거듭되면서 사연은 과장되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기보다는 공포영화를 보듯, 이야기가 가진 오싹함을 즐긴다. 지금부터 얘기할 체험담도 "세상에 귀신이 있냐 없냐", "사실이냐 착각이냐"를 따지기보다는 산꾼들이 한여름 밤 야영하며 술안주로 나누던 이야기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귀목고개의 처녀귀신과 땅 속 혼령들

TV에 소개되었을 정도로 산꾼들 사이에서 유명한 귀신 이야기는 가평 귀목봉 사연이다. 1985년 12월, 본지의 박영래 기자는 후배인 이태영씨와 함께 취재산행에 나섰다. 가평군 북면 적목리의 민드기봉 산행을 마치고 논남기로 내려온 이들은, 귀목봉 귀목고개를 넘어 상판리로 넘어가게 되었다. 다음날 가평군 하면의 청계산 산행을 위해 상판리의 민박집에서 하룻밤 자기로 한 것이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이들은 임산계곡의 산길을 따라 귀목고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2월 초겨울이라 첫눈이 내려 1cm 정도의 눈이 깔려 있었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시간은 5시를 지나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명지산의 1250m봉에서 발원한 골짜기와 만나는 합수점을 지날 때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자 목소리가 1250m봉 골짜기에서 들렸다. 당시 논남기에 민가 몇 채가 있었기에 박영래 기자는 '동네 여자가 나무하러 왔다가 우릴 부르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당시 노총각이던 이태영씨를 위한 호재가 생긴 거라 여긴 이들은 휘파람을 불며 설레는 마음으로 여자를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려도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산길을 가려는데 "같이 가요! 같이 가요!" 하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이태영씨는 당시 여자 목소리가 뭔가 이상했다고 한다. "같이 가요~~오"하고 소리가 에코처럼 울렸다고 한다.

눈이 쌓여 있었기에 그는 눈 위를 살폈다. 나무를 하러 왔다면 계곡을 통해 올라온 발자국이 있어야 하는데, 없었다. 어느덧 깜깜해졌기에 두 사람은 여자를 기다리길 포기하고 귀목고개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여자의 소리가 흐느끼며 우는 소리로 바뀌더니, 눈이 얼어붙은 땅 속에서 와글와글 하는 소리가 났다.



↑ [월간산]박영래 기자와 박계수 시인이 겪은 귀신 체험담이 TV로 방영되었다. MBC에서 제작한 것을 케이블채널에서 재방송했다.

↑ [월간산]박영래 기자와 박계수 시인이 겪은 귀신 체험담이 TV로 방영되었다. MBC에서 제작한 것을 케이블채널에서 재방송했다.

"저잣거리에서 사람들이 와글와글하는 소리가 땅 속에서 나는 거야. 태영이랑 나랑 동시에 '귀신이다! 귀신!' 그랬지. 근데 이 녀석이 날 버리고 혼자서 귀목고개로 튀어가는 거야. 평소에는 나보다 발이 느린 친군데, 그땐 어찌나 빠르던지."

빨리 상판리로 넘어가는 것이 안전한 방법이라 생각한 박영래 기자는 뛰다시피 귀목고개로 갔다. 귀목고개까지 일반 산행 속도로 40분 걸리는 거리였지만 10분 만에 올라왔다고 한다. 그는 후배인 이태영씨가 귀목고개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지만 없었다고 한다. 등골이 계속 오싹했던 그는 고개에서 상판리 마을까지 1시간 거리인데 30분 만에 뛰어 내려왔다. 마을에 도착하니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상판리 버스종점 민박집에 들어가니 이태영씨가 있었다. 화가 난 박영래 기자가 "너는 사내새끼가 의리 없이 튀냐"고 하자, 이태영씨는 "형, 나도 살고 봐야지"라고 대답했다.

다음날 이들은 가평군 청계산 취재산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하지만 박 기자는 그 일이 너무 이상했다. 혼자 들었으면 환청이라 여겼을 텐데 여자 목소리며 웅성거리는 소리도 두 사람이 똑같이 선명히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다시 가평군 북면 적목리로 갔다. 적목리 가림마을에서만 10대째 살았다는 박중규 이장을 찾았다. 그는 이곳에서 가장 오래 산 토박이로 이곳 이야기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박영래 기자는 자신이 겪었던 일을 얘기했다. 그러자 박 이장은 예전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해 주었다.

6·25 당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이후 인민군은 북으로 후퇴하던 때였다. 가평군 하면 현리에서 상판리~귀목고개~적목리~도마치로 이어진 길은 인민군의 퇴로였다. 이 길을 통해 철원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인민군은 이 길로 통과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길목의 마을 사람들을 다 죽이고 있었다.

박중규 이장은 당시 어린아이였는데 그 소문은 마을과 마을로 금방 전달되었다고 한다. 임산계곡에는 70여 가구의 화전민 수백 명이 살고 있었는데 워낙 깊은 산골이라 전쟁을 몰랐던 이들은 인민군에게 모두 잡혔다. 인민군은 어린 아이 할 것 없이 그곳 사람들을 다 죽였다. 이후 주변 마을 사람들이 임산계곡에 가서 시신을 다 수습했다고 한다.



↑ [월간산]박영래 기자의 귀신 체험담을 실은 1991년 1월호의 귀목봉 기사.

↑ [월간산]박영래 기자의 귀신 체험담을 실은 1991년 1월호의 귀목봉 기사.

박중규씨가 성인이 되어 군대를 다녀오자, 마을 원로들은 그에게 이장직을 맡겼다. 임산계곡에는 새로운 화전민들이 몇 있었는데 귀신이 나온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결국 동네사람들의 회의를 거쳐 매년 명절에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위한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매년 이어오던 제사는 김신조 사건 이후 화전민들을 산에서 내려 보내는 정책이 시행되면서 중단되었다. 그곳 화전민들이 제사를 지냈는데 그들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박중규 이장은 임산계곡에는 억울하게 죽은 혼들이 있어 적목리마을 사람들이 들어가길 꺼린다는 사연을 알려 주었다.

몇 년 뒤 박영래 기자는 상판리에서 귀목봉을 오르는 원점회귀 산행 소개를 위해 다시 찾았다. 종점식당에는 노부부가 살았는데 지난 취재 때 귀신에게 홀린 일화를 얘기했더니 박중규 이장과 똑같은 얘기를 해주었다. 할아버지는 6·25 때 상판리에 살았는데 현리서부터 인민군이 사람들을 죽이며 들어온다는 얘길 듣고 귀목봉으로 이어진 능선으로 올라가 동굴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나와서 인민군들이 새까맣게 귀목고개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단다.

귀신 사건이 지난 한참 후 박영래 기자는 1991년 1월호에 귀목봉 산행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당시 겪은 일을 썼다. 책이 나온 지 며칠 후 MBC '이야기 속으로' 프로그램의 PD에게 연락이 왔다. 인터뷰를 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사연인즉 박계수(시인)씨란 사람이 귀목고개에서 기이한 체험을 했는데 박영래 기자가 쓴 내용과 똑같아 방송국에 제보를 한 것이었다.

1986년 12월 당시 대기업 부장으로 있던 박계수씨는 가평군 북면 논남기를 찾았다. 임산계곡~귀목고개~귀목봉을 오르는 산행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한 시간쯤 걸었을 때 뒤에서 아가씨 목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아저씨 같이 가요!"하는 소리가 들렸단다. 그는 같이 산행하자고 그러나 싶어 10분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고, 몇 걸음 다시 뗐을 때 다시 똑같은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박계수씨는 환청을 들었나 싶어 무시하고 산을 올랐다.

그런데 계곡 합수점에 도착했을 때 이번에는 앞쪽에서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갑자기 앞쪽에 흰옷을 입은 여인이 나타난 것이다. 그는 뒤에서 나던 여자 음성이 앞에서 나니 깜짝 놀랐다고 한다. 자기를 추월해 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주말에도 등산객이 거의 없는 산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혼자 하는 산행을 즐겼는데 만약을 위해 호신용 가스총을 가지고 있었다.



↑ [월간산]1991년 귀목봉 개념도

↑ [월간산]1991년 귀목봉 개념도

"그때만 해도 제 나이가 40대니까, 아무리 귀신이라도 여자니까 붙어보자 싶어서 한 손에 피켈을 들고 한 손에 가스총을 들고 맞섰어요. 바로 그때 발밑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어요. 사람들 몇 백 명이 모였을 때 나는 웅성웅성 떠드는 소리 있잖아요. 그런 소리가 땅 속에서 들려요."

그는 결국 도망치듯 산을 내려왔다. 이 사연이 TV 프로그램을 통해 재구성되어 방영되면서 산꾼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귀목봉의 '귀'자가 귀신 귀자를 쓴다거나, 목 없는 귀신이 나타나서 귀목이란 이름이 유래한다는 등의 헛소문이 떠돌았다.

가평문화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옛날에는 벌목할 나무가 많아 임산이라 불렸다. 귀목이란 이름은 이 고개에 느티나무가 많았는데 느티나무를 규목(槻木)이라고도 하여 규목고개라 불리던 것이 와전되어 귀목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희운각 등산객 귀신과 양폭의 처녀귀신

다음은 설악산 산장에 얽힌 얘기다. 등산매체 기자 출신인 김모씨는 대학생 때던 2001년 설악산을 매주 가다시피 했다. 그의 산행 코스는 거의 같았고 희운각대피소와 양폭대피소를 지키던 산장지기와 친해지게 되었다. 당시는 이 산장들이 관리공단이 아닌 사설로 운영되던 때였다. 김씨는 산불방지 입산금지 기간 하루 전날 희운각대피소를 찾았다. 산장지기 형은 그에게 "내일부터 경방기간이라 손님도 없을 텐데 일주일만 산장을 봐줄 수 있냐?"고 물었고, 설악산에 푹 빠져 있던 김씨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산장지기 형은 "너 말고 세 명 더 있다"고 말하고 내려갔다. 그는 다른 손님이 세 명 더 있다는 것으로 이해했으나 인기척이 없었다고 한다.



↑ [월간산]'이야기 속으로'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터뷰를 한 박영래 기자

↑ [월간산]'이야기 속으로'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터뷰를 한 박영래 기자

김씨는 "날짜도 아직 잊지 않았다. 10월 17일이었다"고 한다. 해가 질 무렵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나타나지 않는 세 명의 손님 때문에 불을 끌까 말까 고민하다 잠이 들었는데 누가 문을 흔드는 것이었다. 바람 소리인가 했지만 문이 흔들리는 와중에 "똑똑똑" 하고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느낌상 문을 열면 안 될 것 같았다고 한다. 어젯밤 함께 술을 마시던 산장지기 형이 "누가 문을 두드려도 열어 주면 안 된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불 끄고 다시 잠들었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눈을 뜨니, 사람 세 명이 방 안에 떠다니는 거예요. 근데 이상하게 무섭지 않았어요. 다들 등산복 차림이고 제 얘기를 하는지 뭐라고 자기들끼리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일주일 후 산장지기 형이 다시 올라왔고, 그는 "세 명이 그분들이었어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형이 "너도 봤냐?" 며 얘기해 주었다.

예전에 설악산에서 사망사고가 나면 주로 희운각대피소 매점 앞의 시멘트단에 시신을 뉘였다고 한다. 아마도 그때 산에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 몇이 하늘로 가지 못하고 남았을 것이라 추측했다. 산장지기 형은 산장을 찾은 다른 산꾼들도 심심찮게 이 귀신들을 보는데 사람을 괴롭히거나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아마도 설악산을 너무 좋아해서 아직 떠나지 못한 게 아니겠냐고 얘기했다.

이 사건 이후에도 김씨는 계속 설악산을 찾아 길게는 열흘 동안 머물기도 했다. 한 번은 산불방지 입산금지 기간에 부식 전달을 위해 양폭대피소를 찾았다. 양폭의 산장지기 형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여기도 있다"며 "1층 가운데 방에 여자 귀신이 나오는데 손님 중에 그걸 본 사람이 꽤 있다"고 일러 주었다. 입산금지 기간이라 손님이 아무도 없었고, 그날 밤 김씨는 1층 가운데 방에 들어갔다. '귀신이 뭐가 무서워'하는 오기가 들었다고 한다. 이미 희운각대피소에서 귀신을 보았기에 무섭지 않았고, 설악산이 너무 편안하게 느껴졌다.



↑ [월간산]'이야기 속으로'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터뷰를 한 이태영씨.

↑ [월간산]'이야기 속으로'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터뷰를 한 이태영씨.

그는 어둠 속에서 헤드랜턴을 켜고 벽에 기대 책을 읽다 잠이 들었다. 한기가 들어 문득 잠에서 깨었는데 눈을 뜰 수 없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어 눈을 떴을 때 그는 까무러치게 놀랐다. 얼굴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여자가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가까워서 얼굴 전체가 보이진 않았지만 얼굴 윤곽이 아직도 기억나요. 너무 놀라서 소리도 못 내고 있는데 여자가 얼굴 근육을 조금씩 움직이더니 '꺄아아아아악!' 하고 비명을 지르곤 사라졌어요."

여자가 사라진 이후에도 그는 몸이 굳어 가위에 눌린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대청봉에서 야간산행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의 소리가 밖에서 들렸고 그제야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희운각의 등산복 귀신과 달리 여자귀신은 "정말 무서웠다"고 한다. 이후 양폭대피소를 다시 찾았지만 그 방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속초의 설악산 구조대원들 중에서도 양폭대피소에서 그 귀신을 보고 혼비백산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산장을 새로 지어 옛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설악산엔 관세음보살과 산신령이 산다

1970년대 후반부터 설악산 수렴동산장지기로 40여 년을 살다 은퇴한 이경수(74) 산장지기의 얘기도 있다. 설악산은 그에게 집이고 마당이기에 귀신 따위는 얘깃거리가 못된다고 한다. 그가 꼽은 신비로운 경험은 관세음보살과 산신령을 만난 것이다.

"관세음보살을 15번 봤어. 항상 스님 한 분과 처사 한 명을 데리고 다녀. 처음에 나는 관세음보살님인 줄도 모르고 따뜻한 방에 모셔서 사과를 대접했지. 한밤중인데 간다고 해서 플래시를 주겠다고 하니까 필요 없다며 그냥 사라져 버리는 거야. 방에 와 보니 내가 먹은 사과 흔적만 있고 나머지 사과는 그대로 있는 거야. 그후로 보살이 가끔 나타났어. 산신령은 할머니인데 머리카락이 하얗고 허리까지 길렀지."



↑ [월간산]예전의 양폭산장. 1층 가운데 방에서 처녀귀신을 본 사람이 심심찮게 있었다.

↑ [월간산]예전의 양폭산장. 1층 가운데 방에서 처녀귀신을 본 사람이 심심찮게 있었다.

청계산의 피란민과 연인산의 조난커플

본지 취재산행에 여러 번 동참한 안명선(대한산악연맹 대외협력위원)씨도 그런 경험이 있다. 지인들과 서울의 청계산 형제봉 밑에서 야영을 하고 있었다. 밤이 깊어 다 잠들었는데 사람들 소리가 들려서 깨니, 하얀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피란민처럼 보따리를 짊어지고 두 줄로 걸어가고 있었다. 당황하여 어쩌나 싶은데 젊은 남자가 멈춰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서워서 침낭을 뒤집어썼다가 귀신이 쳐다보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해 "왜 보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배고파" 하고 답했다. 텐트 앞에 음식이 있으니 먹으라고 했는데도 그는 배고프다며 먹을 걸 달라고 했다. 그렇게 얼마간을 앞에서 버티다 사라졌다.

연인산 정상에서 비박을 할 때는 잠을 자는데 인기척이 나서 보니 등산복을 입은 한 남녀 커플이 물을 찾고 있었다. 처음엔 야간 산행하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일행이 꺼내 놓은 물이 있는데도 마시지 않고 계속 산을 내려갔다가 반대쪽에서 다시 올라와 "여기 어디 물이 있을 텐데" 하고 같은 말과 행동을 반복했다.

밤새도록 울린 기이한 꽹과리 소리

등산매체 사진기자인 주민욱 기자도 특이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2006년 심마니들을 동행 취재하기 위해 화악산에 들었을 때의 일이다. 심마니들을 따라 비등산로를 헤쳐 계곡 언저리의 어느 터에 갔다. 심마니들은 익숙하게 나무를 잘라 텐트 폴처럼 뼈대를 세우더니 비닐을 씌워 텐트를 뚝딱 만들어냈다. 오후 한나절 심마니를 따라 산을 헤매고 되돌아와 그날 밤 비닐천막에서 편집기자와 함께 잠이 들었다.



↑ [월간산]리모델링 전의 희운각산장.

↑ [월간산]리모델링 전의 희운각산장.

시끄러워 눈을 뜨니 꽹과리 소리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산길도 없는 이 깊은 산에 무슨 꽹과리 소리일까 궁금했지만 '등산인들과 다른 심마니들의 무슨 의식이 있나보다'하고 억지로 눈을 감았다. 아침이 되어 꽹과리 소리 때문에 한숨도 못 잤다고 하자, 편집기자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며 심마니들에게 그런 소리를 들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지역의 한국심마니협회 지부장을 맡고 있는 이가 "이 터가 예전에는 무당 굿터였다"고 알려 주었다.

위기의 순간 도움 준 조상귀신

해외원정에서 독특한 경험을 한 이들이 있다. 모 산악회의 남성은 2009년 티베트 탐험을 갔다. 인가가 없는 장거리 산길을 걸어 해발 5,400m 고도의 고개를 넘어가는 코스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폭설로 운행이 더뎌져 하루에 4km도 못 가는 상황에 처했다. 식량이 모자라 며칠을 굶다시피 하여 운행했지만 결국 예정된 길을 포기하고 되돌아 내려와야 했다.

그때 환청이 들렸는데 "저기서 물 먹고 가야지", "뒷사람 챙겨야지"하는 도움을 주는 얘기들이었다. 여간하면 환청이라 생각했을 텐데 목소리가 너무도 선명해서 그럴 수 없었다고 한다. 다만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준 것들이라 자신을 지켜 주는 조상의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한다.

에베레스트 최단시간 등정을 도와준 등반가의 혼령들



↑ [월간산]과거의 수렴동산장. 지금은 새로 지어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 [월간산]과거의 수렴동산장. 지금은 새로 지어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네팔의 셰르파 중에서도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 에베레스트 최단시간 등정 기록을 세운 펨바 도르지(Pemba Dorge)는 2004년 5월 에베레스트 남동릉을 통해 8시간 10분 만에 정상에 올랐다. 그는 최단시간 등반을 하던 중 이상한 체험했다.

펨바는 에베레스트 정상을 목전에 두고 악천후를 만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돌더미에 앉아 준비해 온 차를 마시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자신 외에 주변에 아무도 없고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지만 침착하게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눈앞에서 무언가 어른거리듯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무엇이 움직이나 유심히 쳐다보았다. 문제의 사물은 자신을 말없이 쳐다보는 사람의 형상이었다. 펨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인사하려고 했으나, 문제의 인물이 한 명이 아니고 여러 명이며 그들이 다리를 움직이지 않고 미끄러지듯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 보았다. 그는 크게 놀랐다.

온 몸이 검은색이며 투명했던 그들이 귀신이라고 생각한 펨바는 그들을 쳐다보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귀신들은 펨바에게 다가와 차를 좀 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펨바는 마음속에 있던 공포심이 사라지며 그들이 과거 에베레스트에 도전했다가 숨진 산악인들 중 일부의 혼령일 것이라 짐작하게 되었다. 혼령이 된 그들이 아직도 정상을 맴돌고 있는 것이 무척 측은하게 느껴졌다.

펨바는 혼령들에게 진심을 담아 깊은 애도를 표했다. 그러자 혼령들이 손을 내리면서 하나둘씩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먼저 간 이들을 위해 더욱 힘을 내 정상을 등정했다고 한다.

세계기록을 세우고 하산한 펨바는 축하하러 온 많은 사람들에게 귀신 목격 사실을 말해 주었다. 또한 그들을 위한 천도재를 지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펨바의 말을 들은 각국의 산악인들은 잠시 어리둥절해 했다. 그러나 펨바가 소속된 네팔산악협회 회장은 그의 뜻에 따라 에베레스트 등반 중 숨진 산악인들을 위해 위령제를 지내 주었다. 펨바 도르지 셰르파는 그 혼령들이 자신이 세계 신기록을 세우는 데 도와주었다고 믿는다. 또 그들의 사연을 펨바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천도의식을 통해 이승을 떠나기를 원했다고 믿고 있다.



↑ [월간산]최단 시간 등정 기록을 세우며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펨바 도르지.

↑ [월간산]최단 시간 등정 기록을 세우며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펨바 도르지.

지금까지의 얘기들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산꾼들의 술자리에 심심풀이 안주처럼 오르내리는 그런 얘기들이다. 하지만 이런 얘기들이 떠도는 데는 그만큼 많은 산악인들이 등반 도중 고귀한 생명을 잃었기 때문도 있다. 또 산악지형이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특성상 민중의 삶이 산과 연관되어 있고, 6·25전쟁의 격전지 역시 산이었다. 우리 산하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사람들의 넋이 후손인 우리들에게 과거의 아픔을 잊지 말라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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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media.daum.net/life/magazine/list/newsview?newsId=20140901183408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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