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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이병도 식민사관론을 지지하는 분들께 묻겠습니다.
게시물ID : history_87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ILoveCarrier
추천 : 12/7
조회수 : 893회
댓글수 : 24개
등록시간 : 2013/05/02 23:53:28

일단 본문 전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인용에 대해.

 

조선사편수회에서의 〈조선사〉 편찬작업은 앞서 정해진 골격을 대부분 유지하는 선에서 진행되었다. 첫째, 시대구분에 있어서 앞서의 제1·2·3편을 제1편 신라통일 이전, 제2편 신라통일 이후라고 정정하여 모두 6편으로 했다. 둘째, 한국인 위원이 강력히 주장한 건국전설(단군·기자 신화)을 편년적으로 본문에 넣는 것에는 반대했으나 제4편 고려 공민왕 24년 폐왕 원년조에 단군기사를 넣도록 했다. 셋째, 편수의 범위와 관련하여 시대구분의 시작을 신라통일 이전, 마지막을 갑오개혁으로 하는 것과 발해사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대한 반대의견이 나왔으나 결국 수렴되지 않았다. 넷째, 최남선이 지적한 〈삼국유사〉의 석유환국(昔有桓國)을 석유환인(昔有桓因)이라 개찬한 사실에 대하여 아무런 답변도 없었다. 이와 같이 조선사편찬작업에 참여한 일부 한국인 학자들은 일제가 〈조선사〉를 편찬하는 명분을 높이는 데 기여했을 뿐, 자기 의견을 거의 반영하지 못했다. 결국 조선사 편찬사업은 한국인들로부터 자기 역사연구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은 것으로서, 서술의 중심은 한국민족의 주체적 역사발전을 서술하기보다는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며 사대주의로 일관했다거나 중국과 일본보다 역사와 문화가 뒤떨어져 있다는 데 두어졌다. 즉 일본의 한국 침략과 강점의 합법성을 입증하기 위한 사료의 취사선택·왜곡을 자행했으며, '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의 목적에 이용하려 한 것이다.

 

브리태니커 사전의 '조선사편수회' 글이군요.

그러면 이건 곧 이 뜻 아닙니까.

[이병도 같은 일부 한국인학자들의 의견은 조선사에 반영되지 않았다.]

 

뭐, 말송보화의 증언에 브리태니커까지 나오면 이야기 끝난 거 아닌가요.

 

그건 그렇고 '이병도는 식민사학자'라고 주장하시는 분들께 다음과 같이 묻겠습니다.

 

1. 조선사편수회에 참가한 사실(실질적인 활동은 없었다는)만으로 그를 식민사관자로 볼 수 있습니까?

2. 만일 조선사편수회에 참가한 것이 곧 친일의 증거라면, 그는 친일파이므로 곧 식민사관자이다- 하는 논법에 논리의 비약이 없음을 자신할 수 있습니까?

3. 이병도가 식민사관 단체인 조선사편수회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했음을, 정황상이 아닌 사료상으로 증명해낼 수 있습니까?

4. 조선사편수회 외의 이병도가 식민사학자라는 증거를 또 제시하실 수 있습니까?

 

 

솔직히 역게 올비분들이 불편하실까봐 '리볼버오셀롯'님의 리플 이후로는 최대한 글을 쓰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보다보다 답답해서 글을 씁니다.

 

 

PS> 수정하는 김에 자료 몇개 첨부하려고 했는데, 그냥 올려도 되겠네요.

 

PPS> 방금 와서 제대로 분위기를 못 읽었습니다. 쓸데없는 닉언급 자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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