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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출처 : https://youtu.be/lG5mSHM1iBI
이상국, 산그늘
장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나에게 젖을 물리고 산그늘을 바라본다
가도 가도 그곳인데 나는 냇물처럼 멀리 왔다
해 지고 어두우면 큰 소리로 부르던 나의 노래들
나는 늘 다른 세상으로 가고자 했으나
닿을 수 없는 내 안의 어는 곳에서 기러기처럼 살았다
살다가 외로우면 산그늘을 바라보았다
박형준, 벽지
눈보라가 방문을 열어젖힌 후
고아처럼 뜯긴 벽지 아래 몸을 웅크린다
산등성이에서 눈을 만나
초가집 몇 채 가는 연기를 따라
들아온 빈집이다. 방금 전까지
창호지 문으로 내리는 밤눈을 보며
내외가 가만가만 이야기를 나눈 듯하다
흔들리는 벽지 아래 자리 잡고 있으니
온기가 묻어 있는 따뜻한 침구 같다
내외의 숨결이 숨 쉬는
뜯긴 벽지의 이음새를 세어보니
모두 여덟 겹이다
자식들이 태어날 때마다
새로 도배를 하며 내외는
풀비 지나간 흔적마다
꽃을 피웠으리라
길 잃은 등산객의 언 손과 발을 녹이며
집은 눈보라 속에서 마지막 숨을 쉬고 있다
김석, 부부
비 오는 날
길을 걸으며 알았다
구멍이 난 신발
밑창 사이로 물은 스며들고
젖은 양말 속
발가락이 말랑말랑하다
비가 고인 물 덤벙 지나
바닥을 뜷고
올라온 질퍽질퍽한 물과
딱딱한 발이
하나가 되어 촉촉하다
길을 걸으며
구멍이 난 줄 모르고 산
날들의 밑창은 새고
서로가 젖어 있다는 것을
눈물은 상처를 적시고
상처는 눈물 속에 스며들어
하나가 된다는 것을
비 오는 날
길을 걸으며 나는 알았다
이영록, 홍시
늘 짓궂은 태풍에 당하기만 하다
올 가을
두고 보라며 어금니 깨물었다더니
마음뿐이었던가
그저
뼈끝까지 가난하고 씨름만 하다
말라비틀어진
제 꼭지 하나 남기고
밤새 한마디 기별 없이
머언 세상으로 훌쩍 떠나 버렸다
잘 익어 씹을 것도 없이 물러 터졌던
그 친구
이향란, 양팔 저울의 비애
두 눈 두 귀가 있듯이
두 입 두 가슴도 차라리 있었다하자
본디 그러했는데 닳거나 진화된 거라고 치부해 버리자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깊은 것에게는
입과 가슴 하나씩 더 달아주어 통증을 덜어주자
어느 곳으로 새어나가든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지든
그것은 오로지 두 입과 두 가슴의 평형을 위한 것
더 이상 잴 수 없는 생의 질량을 끌어안기 위한 것
안으로 파고드는 마음과
밖으로 나가려는 마음의 충돌을 어루만져
당연히 그러하다는 듯 충분히 이해된다는 듯
양팔이어서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음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듯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그러나 섞일 수 없음이 비극이라는 듯 희극이라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