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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길을 걸으며 나는 알았다
게시물ID : lovestory_871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5
조회수 : 45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3/15 12:02:57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lG5mSHM1iBI






1.jpg

이상국산그늘

 

 

 

장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나에게 젖을 물리고 산그늘을 바라본다

가도 가도 그곳인데 나는 냇물처럼 멀리 왔다

해 지고 어두우면 큰 소리로 부르던 나의 노래들

나는 늘 다른 세상으로 가고자 했으나

닿을 수 없는 내 안의 어는 곳에서 기러기처럼 살았다

살다가 외로우면 산그늘을 바라보았다







2.jpg

박형준벽지

 

 

 

눈보라가 방문을 열어젖힌 후

고아처럼 뜯긴 벽지 아래 몸을 웅크린다

산등성이에서 눈을 만나

초가집 몇 채 가는 연기를 따라

들아온 빈집이다방금 전까지

창호지 문으로 내리는 밤눈을 보며

내외가 가만가만 이야기를 나눈 듯하다

흔들리는 벽지 아래 자리 잡고 있으니

온기가 묻어 있는 따뜻한 침구 같다

내외의 숨결이 숨 쉬는

뜯긴 벽지의 이음새를 세어보니

모두 여덟 겹이다

자식들이 태어날 때마다

새로 도배를 하며 내외는

풀비 지나간 흔적마다

꽃을 피웠으리라

길 잃은 등산객의 언 손과 발을 녹이며

집은 눈보라 속에서 마지막 숨을 쉬고 있다







3.jpg

김석부부

 

 

 

비 오는 날

길을 걸으며 알았다

 

구멍이 난 신발

밑창 사이로 물은 스며들고

젖은 양말 속

발가락이 말랑말랑하다

 

비가 고인 물 덤벙 지나

바닥을 뜷고

올라온 질퍽질퍽한 물과

딱딱한 발이

하나가 되어 촉촉하다

 

길을 걸으며

구멍이 난 줄 모르고 산

날들의 밑창은 새고

서로가 젖어 있다는 것을

 

눈물은 상처를 적시고

상처는 눈물 속에 스며들어

하나가 된다는 것을

 

비 오는 날

길을 걸으며 나는 알았다







4.jpg

이영록홍시

 

 

 

늘 짓궂은 태풍에 당하기만 하다

올 가을

두고 보라며 어금니 깨물었다더니

마음뿐이었던가

 

그저

뼈끝까지 가난하고 씨름만 하다

말라비틀어진

제 꼭지 하나 남기고

 

밤새 한마디 기별 없이

머언 세상으로 훌쩍 떠나 버렸다

잘 익어 씹을 것도 없이 물러 터졌던

그 친구







5.jpg

이향란양팔 저울의 비애

 

 

 

두 눈 두 귀가 있듯이

두 입 두 가슴도 차라리 있었다하자

본디 그러했는데 닳거나 진화된 거라고 치부해 버리자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깊은 것에게는

입과 가슴 하나씩 더 달아주어 통증을 덜어주자

 

어느 곳으로 새어나가든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지든

그것은 오로지 두 입과 두 가슴의 평형을 위한 것

더 이상 잴 수 없는 생의 질량을 끌어안기 위한 것

 

안으로 파고드는 마음과

밖으로 나가려는 마음의 충돌을 어루만져

당연히 그러하다는 듯 충분히 이해된다는 듯

양팔이어서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음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듯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그러나 섞일 수 없음이 비극이라는 듯 희극이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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