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영, 두 마리 치킨
사거리 한복판, 오토바이가 날아 올랐다
트럭과 얼핏 스친 것 같았는데
치킨 두 마리는 양계장에서 신작로까지 거침없었다
노릇한 다리 한쪽은 중앙선을 넘고
왼쪽 날개는 횡단보도를 훌쩍 건너
우림농협의 유리문 앞에서 함께 착지했다
치킨이 이렇게 멀리 비상하긴 처음이었다
살면서 작고 초라해져 어둠만이 겹으로 다가올 때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우연히
한껏 비상하는 삶이 있다
길가의 은행나무에 몇 점 가슴살이 얹히기도 했다
오토바이 소년은 홰에서 닭이
내려오듯 낙하했다
신기하게도 툭툭 털며 절름거리며 일어났다
열다섯쯤 됐을까, 닭 조각을 주워
꿰어 맞춰보면 한 마리도 채 안 돼 보였다
금간 콜라병에서 눈물이 거품처럼 흘러내렸다
언젠가는 저 부서진 오토바이에서도 날개가 돋을까
나무에 새살이 돋고 옹이가 박히듯이
닭은 달걀을 낳고 병아리는 자라 도시로 팔려왔다
주말 오후 전화벨이 울리면 어김없이
병아리는 깜짝 두 바퀴에 몸을 실을 것이다
예약을 맞추려 홰를 칠 것이다
가끔씩 거짓말처럼 또 날아오를지도 모르는
이력서에는 열아홉이라 우겨 써놓은
미성년 배달부의 불안한 꿈이
지금 사거리 한복판에서 부릉거리고 있다
오정국, 오래가는 봄날
흐린 물에도 내 얼굴이 비치니
나는 살아 있는 것인가
너는 죽고
목캔디 하나를 녹여먹는 동안
돌 하나 깨어지고
너는 무슨 갈증으로 시집을 읽고
무슨 갈망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느냐 그렇게
차에 튕겨 출렁거리느냐 날개도 없이
날개를 잃고 팔을 내린 채
날이 지나가고
흐린 물에도 내 얼굴이 비치니
이렇게 입을 틀어막고 울어야 하는가
목캔디 하나를 녹여먹는 동안
봄날은 죽어가고
나무들이 흐느껴 우는가, 내가
울고 웃는 것인가 흐린 물에도
내 얼굴이 비치니
기차가 달리고, 기차가 지나가고 나면
터널이 텅 비워지고
배정웅, 그런 날
바깥에 나가
아니 거리에 나가 말을 많이 한 날은
시를 잃어버린 그런 날이라고
김규동 시인이 말씀하신 것을 전해 들었다
나 오늘
집 바깥에서
참, 말을 많이 했구나
나는 내 안
시의 고방에서 종자를 제법 많이 퍼서 없앤 것 같다
두어 말 두어 됫박쯤은 족히
문정희, 시이소오
어둠이 내려오는 빈 공원에서
혼자 시이소오를 탄다
한쪽에는 내가 앉고
건너편에는 초저녁 서늘한 어둠이 앉는다
슬프고 무거운 힘으로 지그시 내려앉았다가
나는 다시 허공으로 치솟는다
순간에 나는 맨땅으로 굴러 떨어진다
어둠은 한 마리 짐승 같다
푸른 피 흐르는 상처를 안고 뒹구는 나를
시이소오는 숨을 헐떡이며 곁에서 바라본다
나는 다시 시이소오를 탄다
추락은 예비되어 있고
불안한 훈장처럼 상처는 수없이 따라 왔지만
나는 혼자 시이소오를 탄다
어둠이 내려오는 빈 공원에서
슬프고 무거운 힘으로 지그시 내려앉았다가
다시 그 힘으로 허공으로 치솟는다
김동희, 하루 중 잠깐 쓸쓸하다
비 온 뒤 하루나 이틀쯤 지난
흙을 밟아 본적이 있다
햇살에 뒹구는 먼지처럼 아이들은 분주해도
막 시작된 봄같이 가벼운 웅성거림조차
흙이 있는 낮은 담의 경계를 넘지는 않았다
전나무 잎들은 어떤 힘으로 내려와 앉았는지 모를 일이다
흙은 조용했고
나도 조용히 밟았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처음 그를 본 날도
비 온 뒤 하루나 이틀쯤 지난
흙 같은 기억이 아니었나 싶다
사랑하는 동안 그가 해준 것은
옆에서 밥을 먹고
이야기 할 때 내 눈을 들여다 본 것뿐, 고작
이제 사랑은 저만치 강물처럼 흘러가서
저녁, 나는 혼자 밥을 먹고
혹 텔레비전을 본다
창을 닫는 낡은 손등으로 어둠이 미끄러지는
지금이 하루 중 가장 쓸쓸한 때라는 걸 안다
그도 나를 사랑하는지
흙을 밟았을 때의 느낌처럼 쓸쓸한 이때
하루 중 잠깐 그럴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