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미, 허공의 악기
허공을 연주하여 소리를 낸다
허공을 눌러 연주하는
저 손가락들
현이나 구멍도 없이 소리를 낼 수 있는
테레민처럼
보이지 않는 허공의 악기를
나도 한때 가지고 있었지
허공의 음계는 놀라워라
먼 공중에서 천천히
깃털이 내려오네
높게 떠 있거나 살며시 내려앉는
저 음계들
다정한 손이 쓰다듬는
나지막한
숨결에 숨결이 더해지는
허공의 악기를 가졌던 그때
내 손은 자주 심장 위에 얹혀 내 숨소리를
듣고 있었지 가만히
너의 심장을 어루만지듯
나뭇잎들, 허공을 연주하는 내 손을
오래도록 쓰다듬네
이현우, 분수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이별이구나
둘이 되어 돌아서도
하나로 다시 솟는
불멸의 사랑
박일만, 등
기대오는 온기가 넓다
인파에 쏠려 밀착돼 오는
편편한 뼈에서 피돌기가 살아난다
등도 맞대면 포옹보다 뜨겁다는
마주보며 찔러대는 삿대질보다 미쁘다는
이 어색한 풍경의 간격
치장으로 얼룩진 앞면보다야
뒷모습이 오히려 큰 사람을 품고 있다
피를 잘 버무려 골고루 온기를 건네는 등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두 다리를 대신해
필사적으로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준다
사람과 사람의 등
비틀거리는 전철이 따뜻한 언덕을 만드는
낯설게 기대지만 의자보다 편안한
그대, 사람의 등
이진흥, 꽃
저기 저
허공에 걸린 상처
아름답다
어둠의 장막을 찢고 나온
투명한 손이 어루만지는
고통의 숨결
들릴 듯 말 듯
홀로 견디는
김연대, 배추밭
누구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했는데
나는 오늘 흙으로 나비를 때렸다
나비는 팔랑팔랑 하늘로 날아가고
참 못난 내가 거기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