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났을때 우리 둘의 생일이 같다는걸 신기해 했었지.
우리 어머님의 산고의 고통이 지난 후
정확히 7번의 겨울 후에 네가 태어난게지.
단순히 음악 취향이 같다거나, 취미가 비슷하다거나, 유머코드가 비슷하다거나 하는 정도를 떠나
점이 있는 부위, 발 모양, 그리고 두상이나 차마 말할 수 없는 부분,
심지어 주로 사용하는 비밀번호마저 같았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우리의 만남을 신기해하고,
이 사람이 내 사람인가 하는 어설픈 운명적 합리화 마저도 나는 믿었던 것 같다.
남들이 뭐라해도 아직도 너를 잊지 못하고
아직도 너와의 행복했던 기억들을 되뇌여보고
네가 남기고 간 작은 화장품 통과 칫솔을 버리지 못한다.
함께한 여행의 추억이나 네가 가고 싶어했던 곳의 기억이 없는 것에
당시의 내 물질적 무능력함과 정서적 메마름과 귀찮음이 한몫했음을
후회하고 부끄러워한다.
네가 저지른 일로 내가 느낀 저열한 배신감보다
내가 느낄 너의 빈자리가 더욱 크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더라면.
그 저열한 배신감의 원인이 결국은 나에게 있었음을
내가 그때 알았더라면.
아니, 내게 원인이 있었음을 일백퍼센트 인정하고 네 소중함을 놓치지 않았더라면.
내 농담에 큭큭거리는 특유의 웃음으로
재치있게 받아치는 네 표정과 다정한 미소,
함께 운동을 할때 남들보다 훨씬 빠르고 잘하는
네 씩씩함을 내가 사랑했음을.
팔이 부러져서 그 뼈를 맞출때도 이를 악물고
내 손이 부서져라 꽉 쥐던 그 작은 손과 울지 않던 눈을 보고
너를 사랑하게 되었었음을.
정확히 1년전에 네게 선물받은 지갑을 잃어버린 후
'이걸 찾게 된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다시 너를 찾겠다.' 라고 생각하고
거짓말처럼 지갑이 내게 온전히 돌아왔을 때
용기를 내어 다시 연락한 네게서 돌아온 차가운 반응에
조금 발끈하기도 하고 주눅들기도 해서 다시 숨어버린 내 모습.
그리고, 지갑을 분실하고 다시 찾는 것은
내 자신의 의지가 아닌 같은 불수의인 사건임에도
그 결과에 내 미래를 맡긴 마음 자세.
그 두가지에 또 한번 부끄러워한다.
너는 말했다.
모든 것을 다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나는 목젖 너머로 내 말을 씹어 삼킨다.
모든 것을 다 하지 못해서 후회가 너무나 많다고.
아무것도 없던 나를 사랑해준 네게 해주지 못했던 일들.
이제는 다 해주고도 남을 만큼 힘이 생겼는데 너는 내 옆에 없다.
남들 앞에서 웃고 떠들면서도 잊지 않고 있는데 너는 내 옆에 없다.
술 한잔과
이 곳에 마련된 숨은 게시판이
이 내 작은 고백을, 아니 고해성사를 하게 해준다.
너에 대한 내 마음을 다시 한번 선명하게 반추하고 반추한다.
우리 둘의 신분증을 복사해서 오늘 오유에 올리고 베스트라도 가보자던 그 약속.
커플이니까 반대만 먹고 데이터베이스 저편으로 사라질거라던 그 얘기.
결국 지키지 못했다.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겠지만 미안하고, 사랑한다.
그리고 생일 축하한다.
너의 생일을. 그리고 나의 생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