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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첫 눈
작별이다
몸부림 한 점 없는 최후의 만남이다
부스러기를 태우며
빈손으로 돌아온 저녁
길은 안인리에서 끝나고
저문 들마다 허수아비가 죽는다
잘 가라
엇갈린 세상을 접고 또 접어
동면하는 삼라만상
돌아보면 우린 모두 걸인이었다
연기처럼
땅에서 하늘로
연기처럼 피어올라 가루가 된 소망이
다시 모여 쌓이는
여기
끝 모를 심연에도
생명은 더없이 아름다운 것
낯선 거리를 떠다니다가
뿌리째 마르다가
한 아름 맞이하는 축제의 등불
꽃잎 지듯
꽃잎 지듯 날아 앉는다
한유미, 어떤 꽃
무모하게 피는
꽃을 만날 때가 있다
물 한 모금 빨아올리는 것이
가능할까 싶은 마른 땅
산비탈에 피어 있거나
햇볕 한 줌 못 받을 것 같은
그늘진 구석이거나
제 철이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어린 꽃잎을 세상에 내놓거나
어쩌면 철없이 핀 무모한 꽃을
만나고 돌아설 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 날 때가 있다
이게 네 사랑이냐 하고
그래도 괜찮은 것이냐 하고
물으며 눈물 날 때가 있다
최병숙, 너는 날마다 조금씩 사라진다
너는 날마다 조금씩 사라진다
날마다 닳아지며
조금씩 소모되는 네가
거울 앞에 선 나의 지루한 얼굴과 손바닥 위
때때로 피워 올린 무지갯빛 거품은
너만의 사랑법일까
견고하던 너의 생각과 몸뚱어리는
날마다 무르고 물러져 간다
세상의 바람을 등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의 먼지 묻은 우울의 손을 씻어 주고
권태의 가슴을 씻어 주었던
네 안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가진 생각들
둥글게 둥글게 원만한 모습으로 깎이고 다듬어지며
결국엔 너의 몸은 닳고 닳아져서
지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 빛깔과 향기로운 몸뚱어리는 어디로 갔을까
너는 서로 안쓰러운 등 비벼대며 살다가
사라지는 황홀한 거품인가
흔적 없이 사라진 빈 비눗곽에 넘쳐나는 서늘한 그늘
아직도 지독한 허무의 거품들로 남아서
내 가슴속에서 안개처럼 서성거리고 있는 너는
문정영, 열흘 나비
내가 알지 못한 생을 살았다는 이유로 나의 별에서 추방당했다
사흘은 저장된 양분으로 별의 가장자리를 날곤 했다
처음 날아본 하늘은 제비꽃 냄새가 났다
서투른 날갯짓이 개여울 울음소리 같았다
내 날개에 언뜻 핏자국이 보이다가 사라졌다
다시 선명한 대동맥 같은 날갯짓 소리
나는 칠월의 토마토처럼 햇빛에 터져버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 이미 날개 한 쪽은 기능하지 못하였고, 칠일을 버틴다는 것은 무리였다
하늘에서 레몬에 담근 각설탕 태운 냄새가 났다
책을 읽으면 그 책의 빛을 가져오고 싶은 때가 있었다
그 빛이 사람의 그림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나비는 죽기 전에 날개를 모은다
날아보지 못한 세상을 그 안에 담는다
내가 살다간 열흘은 그 별에는 기록되지 않았다
아무 냄새도 없었다
성선경, 폭포
절벽에 귀나 하나 세워둬야겠네요
밤새 물소리나 들으라고
떡하니 벽에 귀를 붙여두고
물이 넘치면 귀나 씻어라 말해줘야겠어요
돌아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보름이 지나도 차지 않는 달 같겠지요
귀나 씻으라는데
물은 자꾸 평형을 이루고
귀는 어떻게 할까요
바다로 가면 더 파랄 텐데
파랗게 눕혀둘까요
파랗게 세워둘까요
저기 귀 하나 서 있네요
오직 한 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