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규, 이제 막 눈이 녹으려 할 때
무장무장 때로 몰려 내려오는 함박눈 송이송이는 한 마음
한 뜻으로 작정하고 뛰어내려서
한빛이다
아니다, 수많은 눈송이들 하나하나가 다 다른 생각으로 뛰어내려서
한빛이다
분분이 한빛이다
밤 새 내린
고만고만한 생각들이 서로 어께 팔 다리 걸고 부둥켜안은 채
골똘한 아침
생각해보니, 딱히 살자고 내려온 건 아니었다
고광헌, 빈 집
저 산에
홀로 피어
발길 붙드는 꽃들
이쁘다
저 빈집에
홀로 피어
발길 붙드는 꽃들
눈물난다
오영록, 고등어자반
좌판에 진열된 간고등어
큰놈이 작은놈을 지그시 껴안고 있다
넓은 바다를 헤엄치던 수많은 인연 중에
전생이 부부였던지 죽어서도 한 몸이다
부부로 함께 산다는 것이
고행임을 저들은 알고 있는지
겹으로 포개진 팔 지느러미로
고생했다고, 미안하다고
가슴을 보듬고 있다
죽어 이제야 온전히 이룬 부부의 연을
묵묵히 받아내는 모습이다
눈동자엔 푸른 파도가 출렁였지만
배를 열어보니
아내처럼 텅 비어 있다
마지막까지 온전히 보시해야
열반에 드는 것인지
소금사리
와스스 쏟아진다
강영란, 말하지 마라
백년에 한 번 핀다는 꽃이 있고
죽을 때 단 한번 운다는 새도 있고
말하지 않아도
꽃이 피고 새가 우는데
그러느라 백년을, 일생을 가는데
그러니 말하지 마라
그대에게 가느라
내 몸에도 꽃이 피고 새가 운다
김윤현, 달
한 보름은
오른쪽부터 슬슬 줄이며 산다
또 한 보름은
왼쪽부터 슬슬 불리며 산다
한 달을 그렇게 산다
일 년을 그렇게 산다
영원히 그렇게 산다
달은
좌와 우를 맺었다가 풀었다가
우와 좌를 비웠다가 채웠다가
삶이 참 둥글다
그 달빛 비친 곳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좌우가 서로 달달 볶아 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