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했던 소치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할 줄 아는 동계스포츠가 없던 탓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동계올림픽이지만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심정으로 여자피겨스케이팅 정도만 시청했다. 하지만 마치 거액의 미술커넥션처럼 여자피겨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버렸다. 우승자는 뒤바뀌어 버렸고 전세계가 분노할 일이 생겨버렸다.
한 해외사이트에서 벌인 서명운동이 200만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피겨의 전설들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며 러시아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나 역시 그런 광경을 보기 위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것이 아니었기에 분노하고 억울해 했다.
하지만 나의 분노는 연아의 미소를 보는 순간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이내 생각했다. "누가 봐도 완벽한 연기였고 연아 역시 그걸 알고 있다. 그거면 된거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김연아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흔적들이다.
우리나라와 미국 등 해외 언론 등은 여자피겨스케이팅이 끝나자 일제히 러시아의 편파판정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상 가능하게도 러시아는 "공정했다"고 반박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많이 본 그림이다. 마치 정치권에서 잘못했다고 추궁하는 시민들과 "그런 일 없다"고 잡아떼는 비리 정치인의 모양새다. 아마 러시아는 끝까지 잡아뗄 것이다. 자국선수를 보호하겠다는 일념에서라도 물고 늘어질 것이 뻔하다. 왠지 진흙탕 싸움이 뻔히 보이는 형국이다.
내가 불쾌한 부분이 여기에 있다. 17년 동안 요정으로 내려와 여왕이 된 김연아의 마지막 작별인사를 불쾌한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가고 싶지 않았다. 그 마지막 작별인사는 아름다운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불쾌한 진흙탕 싸움에서 눈을 돌렸다.
혹자들은 말한다. "김연아의 완벽한 연기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게 억울하지 않느냐?" 누가 정당한 평가를 하지 않는가? 러시아의 일부 심판들? 일본의 일부 혐한들? 그렇다면 묻겠다. 서명운동을 한 당신은 연아의 연기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가? 적어도 내 마음 속에 김연아는 아름다운 꽃이었고 여신이었다. 그리고 난 알고 있다. 그녀의 연기를 본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는 걸. 그건 나 뿐 아니라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 알고 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본다. 이미 십여개나 가진 금메달, 하나 더 늘어난다고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이미 그녀는 금메달을 초월한 어느 한 지점에서 작별인사를 보냈는데...
그리고 이 진흙탕 싸움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 건 그녀의 갈라쇼에서 확고해졌다. 제 아무리 꼴보기 싫은 사람조차 자애롭게 안아줄 것 같은 여왕의 미소, 그와 함께 울려퍼지는 'Imagine'. 그렇게 차디찬 얼음 위에 따스한 꽃이 되어 온 몸으로 노래한 평화, 그런 김연아의 마지막 메시지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얘기해보자. 흔한 국민인 내가 아무리 속상하다 한들 김연아와 그의 가족들보다 속상할까? 그런 그들이 의연하게 넘겨버렸는데... 적어도 그녀를 사랑한 팬이라면 그런 마지막 뜻을 존중해줘야 하지 않을까?
소트니코바와 러시아는 메달에 대한 탐욕으로 금메달을 가져갔다. 하지만 김연아는 그런 자들조차 자애로운 미소로 포옹하며 여왕의 칭호에 걸맞게 자신의 가치를 높였다.
김연아와 그녀의 스케이팅을 사랑한 흔한 국민으로써, 그녀의 뜻을 존중한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몸짓을 떠올리며 1g이라도 평화의 가치를 아는 사람으로 살 것이다. 이 어린 소녀는, 마치 큰 스승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