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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경원, 철길
굳이 만남이 없으면 어떠랴
혼자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내가 있어 네가 있듯이
네가 없으면
나조차 없는 것을
만남이 없으면 어떠랴
만남은 결국
이별을 안겨 주는 것
처음 시작하는 순간부터
더는 갈 수 없는 그곳까지
한 번의 포옹마저
없으면 또 어떠랴
나는 네 곁에
너는 내 곁에
늘 같이 있다는
그것만으로 행복한 것을
김언, 말
나무 한 그루 만들지 않고 숲이 되는 방식을
손 한번 잡지 않고 애인이 되는 방식으로
피 한번 섞지 않고 형제가 되는 방식에서
눈 한번 주지 않고 경치가 되고 풍경이 되는
그 기특한 방식과 더불어
풀이 자라는 방향으로
꽃망울이 터지는 방향으로
하늘보다는 땅에 가깝게
좀 더 축축하게
가라앉는 그 문장을
모조리 끌어올려
새로 태어나는 나무
하늘보다는 땅에 가깝게
뿌리보다는
좀 더 뿌리 밑으로
나무가 자라는 방향으로
말은 퍼진다
하늘인가 땅인가
이 방향인가
저 방향인가
나뭇가지가 퍼지는 모양으로
하늘보다는 땅에 가깝게
뿌리보다는
좀 더 뿌리 밑으로
풀도 나무도
숲도 모조리 끌어올려
말은 터진다
몸 한번 섞지 않고
나해철, 황태해장국
아침 식사
독상
시장 골목 입구
해장국집
일인용 내 자리
몸을 위할 뿐
마음은 더 헛헛한
날마다 아침 식사
또
저녁 식사
광막한 우주와 겸상
길상호, 눈의 심장을 받았네
당신은
새벽 첫눈을 뭉쳐
바닥에 내려놓았네
그것은
내가 굴리며 살아야 할
차가운 심장이었네
눈 뭉치에 기록된
어지러운 지문 때문에
바짝 얼어붙기도 했네
그럴 때마다
가만히 심장을 쥐어오던
당신의 손
온기를 기억하는
눈의 심장이
가끔 녹아 흐를 때 있네
조연향, 바비인형
오른쪽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내게도 오른팔이 있었다는 걸 안다
나, 혹 무잡배처럼
누구의 오른팔이 된 적도 있었고
심장과 가장 가까운 푸른 팔손이인 양
사랑하는
너의 따귀를 후려친 적도 있지 않았던가
오른쪽이 하는 짓은
늘, 똑바른 일이라고 믿었지만
주로 내 먹이와 일상의 문장에게 바쳐진, 알량한
욕망의 쇠스랑이었을 뿐이었다
폭력과 거짓 앞에 순종하면서 순수한
네 마음을 오른손으로 받아주지 못한
그런 죄, 밤마다 시퍼런 가시로 찔러댄다
오른쪽이 옳지 않다는 걸, 그 말씀 쓰리고
깊다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가고
발가벗겨진 채 버려져 있는 바비인형처럼
팍팍한 관절의 문장 속에서 헤맬 뿐
오른쪽에 숨겨진 비밀의 힘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