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 종이 위에 연필 스케치, 48X38cm, 서은경
정수리 탈모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속'이 없다는 걸.
내가 내 앞만 보고 있는 동안
아내는 내 안을 보고 있었구나.
푸른 숫자만큼 화려했던
머리칼을 생각하면서
내가 거울 앞에 서서
멋을 내는 동안
아내는 '소갈머리'없는 나를 보며
얼마나 고소했을까.
내가 폼 잡는 일에 몰두할 때
폼은 폼일 뿐이라며
아내는
내 머리 위에 있었구나.
거울 앞에서
다시 손거울을
정수리까지 올려야
비로소 보이는
정수리탈모.
내가 내 세월을 모르는 동안
아내는 내 세월을 알고 있었구나.
우리들은 삼삼오오 만나면 대화를 합니다.
친구들끼리 이런저런 대화하는 것처럼 즐겁고 살맛나는 일은 없겠지요.
마음의 긴장을 해소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유대감을 돈독하게하기도 합니다.
귀한 정보 얻을 뿐더러 힘든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대화는 여기서 쉬 멈추지 않습니다.
서로 만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번집니다. 소위 뒷담화를 하는 거지요.
뒷담화가 위험한 것은 그 자리에 자기는 없고 남만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격려하고 축복하는 말은 쉽지가 않습니다.
대부분 흉을 보거나 남이 알면 상처가 될 비밀이거나 질투를 하는 내용 대부분이지요.
뒷담화는 무척이나 재미있기까지 합니다. 자기의 이러한 태도나 상황을 투사해서
자기는 흉도 없고 상처도 없으며 남에게 질투를 살만한 행동도 하지 않는다는
증명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입에서 나온 말은 입으로 돌아오게 할 수 없지요. 입 때문에 불행하게 된 사람은 아마도 많을 겁니다.
이런 뒷담화 돌고 돌아 다시 자기에게로 오게 되지요.
이 때 느끼는 낭패감과 어이없음과 배신감과 자괴감은 말할 수 없지요.
뒷담화를 많이 하는 사람들일수록 내면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고 자아가 약합니다.
그러니 자기의 약점보다 남의 약점이 먼저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아내는 나에게 머리칼이 빠진다고 했습니다.
나는 젊어서부터 머리숱이 많아 내가 탈모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요.
그것도 그럴 것이 정면으로 거울을 보면 탈모 현상은 없었어요.
아내가 괜한 트집을 잡는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던 중 이발을 하는데 이발소 아저씨가 탈모 예방에 관심을 가지라는 거였지요.
처음에는 남에게 말을 하는 줄 알았지요. 이발소 아저씨가 둥근 거울을 올려 내 정수리를 비칠 때 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탈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남은 나를 아는데 나는 정작 나를 모르고, 흉인데도 자랑이라고 생각하는 '소갈머리 없는' 일을 얼마나 했을까요.
ㅡ아내는 아직도 내 '소갈머리 없음'을 고소하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누가복음 (6:14)》에 있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