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방창(方暢)
산벚꽃 흐드러진
저 산에 들어가 꼭꼭 숨어
한 살림 차려 미치게 살다가
푸르름 다 가고 빈 삭정이 되면
하얀 눈 되어
그 산 위에 흩날리고 싶었네
황영숙, 선풍기
홀로 앓는 열병이
바람이 된
너의 날개는 오늘도
안타깝다
아무도 허락할 수 없는
사랑의 굴레 속에
줄 수 있는 건 오직
흔적 없는 바람뿐
돌면서 젖어 가는
돌면서 무너지는
아무리 날개가 커도
너는 갇힌 새다
서화, 조율
놀이터에서 아이가 넘어지자
울음이 몸 밖으로 확 쏟아져 나온다
엄마 품에 안긴 아이
꼭 아코디언 같다
오래전 불안의 연주에 울어 본 기억이 있다
집을 묻고 엄마를 묻고 이름을 묻던 불안의 한때를 기억한다
그 후 미아가 되기도 했으나
그 많던 불안들은 다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다
온몸을 맡기고 싶은 울음이 없어졌다
아이의 몸 안으로 울음을 넣어주는 엄마
얼룩으로 번진 울음과 흐느낌을 토닥거려
몸으로 다시 들여보내는 저 조율의 한때
불안한 음이 가득 들어 있는
유년의 중심은 발이 너무 가볍다
비스듬히 기울어 있는 나무들에게서 바람이 쏟아진 후
다시 잠잠해진 가지들
지상의 사물들도 모두 조율의 시간을 갖는다
공중에서 퍼지는 물줄기와 온갖 소음들이
오후의 놀이터를 조율하듯
어둑한 한기가 몸에게 시절을 묻고 있다
김환식, 보석
어둔한 망치질로
내가 내 발등을 찍은 것이다
상처는 늘 꽃자리처럼 흉하다
가끔은 발을 씻다가도
티눈처럼 굳은 상처를 만져보는 것이다
사소한 상처도
상처를 만든 사람은 모르고 산다
상처를 입은 사람은
이력 하나를 밀봉하듯 앙가슴에 새겨놓는 것이다
우연처럼
내 상처들을 어루만져 본다
곳곳에 단단한 뿌리가 박혀 있다
상처라고 다 같은 상처가 아니다
발뒤꿈치처럼
쉽게 보이지 않는 곳에도
상처의 부스러기들은
보석처럼 은밀하게 숨어 있는 것이다
김호진, 생강나무
생강나무 잎을 문지르면 생강냄새가 난다
이른 봄 산수유보다 한 뼘 먼저 꽃을 피운다
산수유 보다 한 움큼 더 피운다
지나가던 바람이 내 가슴을 문지른다
화근내 진동을 한다
지난 겨울 아궁이보다 한 겹 더 어두운
아니 한 길 더 깊은 그을음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