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북섬 무리와이비치(김용국 시인 촬영)
너무 머물렀으니
너무 머물렀으니 떠날 때가 됐습니다.
바람이 방향을 다른 곳으로 틀고
햇살의 기울기에 따라 계절이 바뀌니
나도 떠날 때가 된 게지요.
그대로인지가 얼마나 되었는지요.
먼지가 무쇠 같은 덮갭니다.
장롱이나 책장, 돌침대처럼 내가 무거워지기 시작하면
떠날 때가 된 게지요.
그냥 있다는 것은
익숙함에 어깨동무를 하는 것인데,
그것은 모든 것의 늪입니다.
변주도 없이 흐르는 긴 음악 같은
지루함이지요.
떠날 때가 된 게지요.
먼저 나를 옮기고 당신을 옮깁니다.
내 주변의 사물들을 옮깁니다.
그리고
두렵지만 낯선 길로 첫발자국을 찍어봅니다.
위험하지만 설렘이지요.
집안에 여러 가지 물건들을 봅니다. 하나하나 물건들이 그때는 정말 필요했고
그것이 없으면 안 될 거라는 생각으로 다 구입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지금 사용하는 것은 몇 개입니다. 대부분은 전혀 필요치 않은 것입니다.
시효가 지난 것들이지요. 그 갈급하게 구입했던 물건들조차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나를 빤히 보고 있습니다. 버려야 할 것이 된 겁니다.
우리네의 삶속의 사랑도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사랑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던 불 같던 사랑도 세월이 지나면
왜 그랬나 싶기도 합니다. 오히려 후회로 남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랑도 이렇게 낡고 꿰꿰하고 차가워집니다.
마냥 한 자리에 있는 일은 자신을 굳히는 일입니다.
타성에 잠겨서 한 발자국도 저쪽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을 살아있는 주검이라고 합니다. 삶이, 사랑이 불필요한 물건처럼 될 때 우리는 떠나야 합니다.
떠나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떠나야 합니다. 떠났다 다시 돌아오더라도 일단은 떠나야 합니다.
너무 익숙해지고 지루함에서 멀어지고 벗어나야 새로운 게 보입니다.
그 떠남이 두렵더라도 설렘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만남과 새로운 태어남과 새로운 사랑을 경험합니다.
모든 위대한 자들은 떠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위태로운 방황을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최초로 새로운 것을 만났던 사람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