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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굉, 물의 방향
대체 몇 굽이를 돌아 흐르는 물길입니까
출렁거리며 흘러가는 푸른 문장입니까
내 인생의 허전한 기슭을 적시며
어느 낯선 곳으로 접어드는 유정한 강물입니까
자호천 기슭 여뀌꽃 자욱이 핀 곁에 앉아
내 꽃 피운 것 무엇이었나 헤아립니다
강물은 비와 바람과 구름의 길이며
무너지고 일어서고 무너지고 일어서면서
땅 위에 새기는 어떤 기록이 아니겠는지요
뒷물이 앞물을 밀어 끝이 없는
이 강 기슭에 서서 부르는 당신의 이름
당신, 지금 어느 생의 물가에서
내가 보내는 그리움의 물결
그 물 위에 적은 내 마음을 읽고 계시는지요
신현정, 고슴도치는 함함하다
나는 고슴도치가 슬프다
온몸에 바늘을 촘촘히 꽂아놓은 것을 보면 슬프다
그렇게 하고서 웅크리고 있기에 슬프다
저 바늘들에도 밤이슬 맺힐 것을 생각하니 슬프다
그 안에 눈 있고 입 있고 궁둥이 있을 것이기에 슬프다
그 몸으로 제 새끼를 끌어안기도 한다니 슬프다
아니다 아니다
제 새끼를 포근히 껴안고 잠을 재우기도 한다니
나는 고슴도치가 함함하다
강은교, 아무도 몰래
이런 날에는 아무도 몰래 그 떨림을 만지고 싶네
빛을 향하여 오르는 따뜻한 그 상승의 감촉
이런 날에는 아무도 몰래 그 떨림의 문을 열어보고 싶네
문안에 피어 있을 붉은 볼 파르르 떠는 파초의 떨림
이런 날에는 아무도 몰래 그 떨림에 별똥별 하나 던져 넣고 싶네
닿을 듯 닿지 않는 그 추락의 별똥별을, 추락의 상승이라든가 추락의 불멸을
이런 날에는 아무도 몰래 떨리는 추락의 눈썹에 빗방울 하나 매달고 싶네
그 빗방울 스러질 무렵이면
돌아오는 귀이고 싶네
오인태, 포옹
그
등을 서로 어루만져 주는 일
이송희, 겨울, 안부를 묻다
미닫이 문틈으로 겨울바람 쏟아진다
얼어붙은 창마다 눈발들이 다녀갔나
추억은 바람막이 비닐
창문을 감싼다
누군가 기다리며 문을 닫아걸었던가
어둠에 대고 속삭이듯 너의 안부를 묻는다
소복이 쌓인 눈밭에
그림자 긴 가로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