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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폭설이다. 하루 종일
게시물ID : lovestory_866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63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12/17 14:27:43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j03KVYkGgaM





1.jpg

박완호커브처럼

 

 

 

그냥 변화구를 던져 줘라는 말보다

내게 커브를이란 말이

훨씬 매력적이란 걸

 

곧장 당신에게 달려왔어요라고

바로 들이대는 것보다는

어딜 좀 들러 오느라...하는

머뭇거리는 얼굴이

내 맘 더 깊이 파고든다는 걸

 

커브하고 말할 때면

어딘가 살짝 비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자꾸 빙빙 도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지쳐

잠시 쪼그리고 앉아 쉬는

네 흔들리는 숨결들

 

커브라고

내게 커브를 던져 줘라고 말할 때

네 혀끝에 걸려 있던 바람이

어느 순간 나를 향해 밀려오듯

 

그렇게 내게로 와 줘

어디로 꺾일지 모르는

마음의 둥근 궤적을 따라

커브로커브처럼그렇게







2.jpg

이영광녹색

 

 

 

녹색은 핏방울처럼 돋아난다

온 세상이 상처이다

 

먼 들판에 시내에 눈 녹는 숲에

연록의 피가 흐른다

 

당신 가슴이 당신을 찢고 나오려 하듯이

당신이 항거를 그치고

한 덩이 심장이 되고 말듯이

 

녹색은 온 세상을 제 굳건한 자리에서

터질 듯 나타나게 한다

온 세상이 다시 온 세상을 정신없이

찾아내게 한다

 

녹색은 녹색이 죽은 땅을 지나 여기 왔고

폭설의 계엄령을 뚫고 여기 왔고

녹색이 죽은 땅을 선 채로 해방시키고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어디에도 없지만

당신의 아픈 대지를 흐르는 건

모두 새로 난 것들이다







3.jpg

신덕룡동지

 

 

 

폭설이다하루 종일

눈이 내려 집으로 가는 길이 지워졌다

눈을 감아도 환한 저 길 끝

아랫목에서 굽은 허리를 지지실 어머니

뒤척일 때마다 풀풀시름이 날릴 테지만

어둑해질 무렵이면 그림자처럼 일어나

홀로 팥죽을 끓이실 게다

숭얼숭얼 죽 끓는 소리

긴 겨울밤을 건너가는 주문이리라

너무 낮고 아득해서

내 얇은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눈 그늘처럼 흐릿해서 들여다볼 수 없다







4.jpg

함기석검은 구두

 

 

 

공원 벤치 밑에 구두 한 짝

새처럼 잠들어 있다

벤치 위엔 남자

신문지를 덮고 잠든 둥근 둥지

 

죽은 걸까꿈꾸는 걸까

검은 구두 속에서

하얀 물감 빛깔의 새벽이 흘러나와

남자의 몸을 수의처럼 감싸고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들 겨드랑이 사이로 샘물이 밀려와

한 방울 한 방울 신문지에 떨어지고

어린 꽃들이 단발머릴 흔들며 웃는다

 

누구의 입일까 검은 구두

구두 속에서 흰 말이 날아오르고

밤사이 대기가 흘린 꿈이

남자의 입술 끝에 투명한 핏방울로 맺혀 있다







5.jpg

유안진노랑말로 말한다

 

 

 

신문이 빈 벤치에 앉아 자꾸 손짓한다

 

가 앉아 펼쳐드니 은행잎들 떨어져 가린다

 

읽을 건 계절과 자연이지

시대나 세상이 아니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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