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살리스의 개인 침실 안에서는 이전의 몸집으로 변한 셀레스티아 공주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의 앞에서 잠들어있는 루나 공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갈기는 아직 무거웠다. 하지만 몸집은 원래대로 돌아온 상태였다.
루나 공주의 결단을 믿지 못하는것은 아니었지만, 살려낸다고 해도 포니들에게 어떻게 할 지 모르는 크리살리스에게 목숨을 바치고 살려내겠다는것은 셀레스티아에게 포니들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크리살리스가 깨어난다면 언제든 자매를 끈적끈적한 고치에 가둬버릴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셀레스티아는 루나의 치료가 끝난 뒤, 루나를 데리고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무슨일인지 루나가 쓰러져버리고, 마법으로 들어올리려고 해도 들여올려지지 않았다. 지금 셀레스티아는 루나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으으음....."
크리살리스의 목소리였다. 크리살리스가 잠에 덜 깬 눈으로 셀레스티아와 눈이 마주치자 셀레스티아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흐음...셀레스티아. 왜 그런눈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군. 난 너희 자매를 해치지 않겠다고 맹새했다. 게다가 정말로 오랫동안 빌어오던 평화로운 꿈을 꿨어. 루나 덕이지."
크리살리스가 조용하게 말했지만, 셀레스티아의 눈은 바뀌지 않았다.
"그 루나가 지금 깨어나질 않고 있어, 크리살리스! 단지 너를 위해서 루나가 희생된다면, 나는 가만히 있지 않겠어."
"하아..그래서 내가 치료를 거부했었지. 기억나지, 셀레스티아? 그녀는 내 목숨을 소중하게 생각해줬어. 나도 지금 저 루나의 모습에 당황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좀 기다리는게 어때? 내가 차를 내오지."
크리살리스는 가벼워진 몸을 확인하고 잠깐 날개를 퍼덕인 뒤, 방 옆에 나있는 작은 동굴로 들어갔다.
크리살리스에게 뭐라고 할 수 있지 않다는것은 셀레스티아도 잘 알고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루나가 이번 일로 목숨을 잃는다면, 셀레스티아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몸집이 작아진 지난날들에서 루나를 도와주지 못했던 것이 계속 눈에 밟혔다. 오히려 그것때문에 민감해져 제대로 된 판단조차 내리기 힘들었을 때도 있었다. 이제는 여행을 다시 떠날 수 없었던걸까? 이제 여행은 옛날의 일인 걸까..? 눈에서 눈물이 나오는 것 같았다.
"오, 셀레스티아. 그렇게 걱정 할 것 없어. 잘 될거라고 믿어봐. 루나 공주는 나를 그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구해냈어. 왜 그렇게 루나를 믿지 못하는거야? 이전에 봤던 너같지 않아."
셀레스티아는 차를 가져온 크리살리스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아까보다는 많이 누구러진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크리살리스는 가져온 차 세잔 중에서 한 잔을 셀레스티아에게 넘겨주었다. 셀레스티아는 그것을 받아 마시며 계속 생각에 잠겼다. 한참동안 조용히 하던 크리살리스는, 질렸다는 표정을 하며 셀레스티아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셀레스티아. 잠깐 걱정은 그만 하고, 우리들끼리의 이야기도 좀 해보는게 어때? 내가 보기엔 루나는 그냥 잠에 든 것 같은데."
"뭐라고?"
"우리끼리의 이야기말이야 '티아.' 나는 너희 자매에게 빚이 있고, 그걸 갚고싶다는거야. 우리 체인즐링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한에서."
셀레스티아에게는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빚을 졌다'니....?셀레스티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뭐지, 크리살리스?"
"내 생명을 너희 자매에게 빚을 졌지. 특히 루나에게. 그 빚을 갚고 싶다는거야. 그리고 협상에서는 루나보다는 니가 더 잘 할거라고 생각이 들거든. 또,우리 체인즐링의 발전을 위해서는 너희들과 관계를 맺어두는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는 이전까지 너희 포니들이 잔혹하고 위험한 마종인줄 알았지. 그래서 그렇게 큰 세력을 유지한다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너희 자매가 나에게 이런 고생을 해주는걸 보니 꼭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일단 빚은 우리가 졌으니 너희들에게 우선권을 주겠어."
크리살리스는 조용하고, 또 진지하게 말했다. 정말로 진심인것 같았다. 셀레스티아는 재빠르게 마법으로 자신의 가방 안에 있는 깃펜과 종이를 한장 꺼내왔다.
"알겠어, 크리살리스. 협정을 맺도록 하지. 셀레스티아 공주와 크리살리스 여왕간의 협정. 첫째, 서로는 서로를 공격하지 않는다."
"당연하지. 왜 그러겠어?"
"둘째, 체인즐링들은 포니들의 동의 없이 사랑을 뺏어가서는 안된다."
"사랑은 내 사랑만으로 충분해. 알겠어."
"셋째, 추후 외부의 침략이 있을 시 서로가 서로를 보호해준다."
"음. 좋아. 더 없어?"
"일단 없어. 하지만 나머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어, 크리살리스. 그리고....니가 나에게 개인적인 빚을 갚아주기는 해야겠어."
'개인적인 빚'이라는 말에 크리살리스는 잠깐 움찔했지만, 표정을 유지하며 계속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내 업무를 니가 좀 맡아줬으면 해. 변신하지 않고....그리고, 켄틀롯에서 협정서를 같이 읊어주어야겠지."
"협정서를 읊어주는건 부담되긴 하지만 이해할수 있어. 그런데 왜 니 업무를.."
"그게 정말 '개인적인 빚'이라고 생각해. 협정서를 읊는건 우리에게 당연한 일이고."
"하지만 니 업무를 해주는 대신, 무언가를 해주었으면 해. 여기 올때까지 체인즐링에게 겁주고, 못되게 굴려고 했던었던건 잊지 않았겠지?"
이번엔 셀레스티아가 약간 움찔했다.
"그쪽의 지식을 우리 체인즐링한테 가르쳐주었으면 해. 우리 아가들에게."
셀레스티아는 잠깐 생각에 잠기다가, 결연한 눈으로 크리살리스에게 발굽을 내밀었다.
"좋아."
"그래, 좋아."
서로 발굽을 흔들고, 서로의 서명을 협정서에 적었다. 그 협정서를 가방에 넣자 마자, 뒤쪽에서 밝은 붉은 빛이 루나가 있던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오...이런....루나..안돼.."